영화 <조한>과 <화이트칙스>
주말 저녁,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를 뒤적였다. 길었던 한 주의 피로를 날려버릴, 그저 실없이 웃고 싶은 영화가 필요했다. 진지한 드라마도, 머리 아픈 스릴러도 아닌, 팝콘이나 와인과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두 편의 영화, 바로 '조한'과 '화이트 칙스'였다. 포스터만 봐도 왠지 모를 유쾌함이 뿜어져 나오는 두 영화에 이끌려 우리는 홀린 듯 재생 버튼을 눌렀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조한'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대테러 요원, 조한. 그는 화려한 격투 실력과 여심을 사로잡는 매력을 겸비한 슈퍼스타다. 하지만 정작 그의 꿈은 평범한 헤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 가짜 죽음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뉴욕으로 건너온 조한은 꿈에 그리던 미용실에 취직하지만, 그의 특별한 과거는 자꾸만 그의 평범한 삶을 방해한다.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한 그의 기상천외한 헤어 스타일링과 숨겨진 능력 발휘는 상상 이상의 코믹 상황을 연출하며 예측 불가능한 웃음을 선사한다. 아담 샌들러 특유의 능청스러운 코미디가 절정에 달하는 작품이다.
'화이트 칙스' (White Chicks, 2004)
능력은 뛰어나지만 언제나 사고를 몰고 다니는 FBI 요원 마커스와 케빈 콥 형제. 이번에는 백만장자 상속녀 자매인 윌튼 자매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자매의 얼굴에 상처가 나고, 상황은 꼬여만 간다. 결국 이들은 기상천외한 변장술로 윌튼 자매로 위장해 사교계에 잠입하게 되는데… 거구의 흑인 남성인 콥 형제가 백인 여성으로 완벽하게 변신(?)하여 벌어지는 소동은 그 자체로 배꼽 잡는 코미디의 연속이다. 인종, 성별, 그리고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재치 있는 풍자가 돋보이는 영화다.
'조한'을 보면서 우리는 아담 샌들러의 무한한 코미디 에너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는 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기발한 대사와 행동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조한이 헤어 디자인을 하며 보여주는 '특기'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유쾌함으로 우리 부부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니, 저게 된다고?"라며 키득거릴 정도로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복잡한 생각 없이 킬링타임용으로 최고였다.
하지만 '조한'에서 더욱 인상 깊었던 건, 전직 특수요원이라는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미용사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조한은 언제나 자신의 꿈에 대해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쳤다. 부모님의 반대와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잠시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다. 결국 미용사의 꿈을 이루고 진정한 사랑까지 찾아내는 모습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꿈을 좇아 꿋꿋하게 나아가는 조한의 모습에서 저 역시 제 꿈을 꼭 이뤄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샘솟았다. 때로는 주변의 시선이나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망설여질 때가 있는데, 조한처럼 긍정적인 자세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제 꿈도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화이트 칙스'는 '조한'과는 또 다른 종류의 웃음을 선사했다. 두 거구의 남자가 섬세한 백인 여성으로 변장한 모습 자체가 시각적인 코미디였고, 그들의 서툰 행동과 말투, 그리고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오해들은 연신 폭소를 유발했다. 특히 옷이나 화장품, 패션 아이템 등을 두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실제 여성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더욱 큰 공감을 얻었다. 단순히 외모 변장에서 오는 웃음뿐 아니라, 스테레오타입을 비트는 풍자 코미디가 더해져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다. '조한'이 육체파 코미디였다면, '화이트 칙스'는 상황과 캐릭터에서 오는 코미디가 돋보였다.
그런데 '화이트 칙스'에서는 그 웃음만큼이나 새롭게 다가왔던 건, 그들이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장면들이었다. 윌튼 자매로 변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콥 형제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코믹한 상황을 넘어, 상대방을 대하는 데 있어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저 또한 누군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때로는 저의 잘못을 인정하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두 영화 모두 깊은 메시지나 예술적인 성취를 기대하고 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실없이 웃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으로 틀었던 영화였지만,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한 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는 웃음과 함께 땀처럼 흘러내리는 듯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아마도 각자의 머릿속에는 방금 본 영화 속 황당하고도 유쾌했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넷플릭스 덕분에 발견한 보물 같은 두 편의 코미디 영화는 평범한 주말 저녁을 특별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 비우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화 한 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밤이었다. 다음에 또 아내와 실없이 웃고 싶은 날이 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넷플릭스를 켤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웃음보따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