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소식 Jan 24. 2021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의 노래들

<일곱 해의 마지막> 작가의 말 중에서

맨 오른쪽이 백석. 화가 이인성(백석 왼쪽)씨 아들이 한겨레에 제공한 사진.
김계옥 - 눈이 내린다

기행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 때마다 들은 건 연변 출신의 연주자인 김계옥이 옥류금으로 연주한 <눈이 내린다>다. 이 곡은 원래 가곡이었는데, 문경옥이 옥류금 변주곡으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평양음악학교의 피아노 선생이었다가 해방 뒤 레닌그라드음악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작곡가고 명예로운 일생을 마쳤다. 소설 속 피아니스트 경의 모델인 이분은 1979년에 죽었다.

아와야 노리코 -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또 자주 들은 노래는 일본 가수 아와야 노리코의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다. 구혼에 실패한 백석이 함흥에서 영어 선생으로 지내던 시절, 학생들은 종종 그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다고 했다. 유행가 가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고, 청춘의 고뇌도 마찬가지다. 백석보다 다섯 살 많았던 아와야 노리코는 말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99년에 죽었다.

[가사]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눈물도 감추고 웃으면서 이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눈물 마르고 몸부림치는
이 괴로운 짝사랑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야속한 그 사람


저먼 브라스 -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곡은 저먼 브라스가 관악기로 연주한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었다. 자료를 찾다가 두 장의 사진을 본 뒤로 그 선율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나는 1957년 재건 지원을 위해 함흥에 체류한 동독인 러셀이 촬영한, 폭격으로 파괴된 서호의 수도원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1932년 함경도 덕원신학교 축제 때 관악기를 든 학생 악단을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공포로 미쳐버린 중국 남자가 부른 노래.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는 말.



"예. 당신 노래 그 겨울 내내 얼어 있다가 봄이 되자 노래가 녹았고, 골짜기마다 울려퍼졌어요. 굿 나잇, 아이린. 굿 나잇, 아이린."

"봄이 올 때까지 노래가 얼어 있었다고?"

"예. 당신 노래. 얼어 있던 노래. 봄이 올 때까지."

"당신 노래, 당신 노래라고 말하는데, 그럼 나는 누구요?"

"당신. 이미 죽은 사람.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으니까. 하지만 봄에 내가 분명히 들었어. 당신의 노래." (213쪽)


[가사]
아이린,
편히 주무세요,
꿈에 당신과 만납시다.
때로 나는 시골에 살고,
때로는 도시에서 살지요.
때로는 강물 속에 뛰어들까 하고도 생각하지요.
나는 아이린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느님도 그것을 알고 계시지요.
바닷물이 마를 때까지 사랑해요.
그녀가 나를 버린다면,
몰핀을 마시고 죽어버리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에 정착해서 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