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 장 자크 루소> 리뷰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본질을 떠나서 참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을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은 인간을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행복은 고생을 알고서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육체가 너무 편안하면 정신은 퇴폐한다. 고통을 알지 못하는 자는 인간다운 사랑의 감정이나 따스한 연민의 정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감동할 줄도 모르고 사람들과 사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동료들 간에도 괴물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제2부, 어린이기>
인간을 알게 되려면 그에 앞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가! 그러므로 인간 연구는 현인들의 마지막 연구과제이지 어린이의 최초의 수업 주제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제3부 소년기>
리뷰 >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겠다.
몸이 움직이는 활동을 먼저 가르치겠다.
어린 나이에 책을 읽게 하지 않겠다.
어린이와 친구가 되지 않겠다.
나의 결심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면 반드시 에밀을 읽어보라.
이상은 자신을 목표로 두는 것을 원치 않으며 단지 방향이 결정되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이상이 도착지인 양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해버린다. 이내 좌절하며 현실만을 추구하는 속물이 된다. 루소가 바란 자연주의적 삶을 진정 이뤄낼 수는 없는 걸까.
당신은 이상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속물이 되어 애써 피하려고만 하는가. 어째서 아이들 숲에서 키우지 못하고, 추상을 주입하고, 오로지 지식만을 향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아이도 키워보지 못한 자가 왈가왈부 떠드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루소는 다섯 아이를 버렸고, 에밀을 남겼다. 그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경험주의를 주창한 루소조차 몸소 경험치 못한 이상을 마음에 담았다. 삶의 모순과 끊임없이 싸워온 그의 생애, 고뇌에서 비롯된 그의 말이 교육론의 이상으로 남지 않았는가.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이론뿐일 거라 이미 못 박아버리는 당신이기에 원초적 고통이 고스란히 후대에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어찌 그렇게 이상을 의심하는가. 어째서 열 번 스무 번 숙고하지 않는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현실적으로. 신물 나는 소리다. 속물에게 이상은 한낱 개소리일 뿐. 이상에게 속물은 연민의 대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다. 현실만을 추구하는 삶에 행복은 없고 쾌락만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자식을 이상적으로 기를 수 없는 사회와 환경. 거대한 틀에 과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났다. 앞서 이러니 저러니 지껄였지만 말이다, 그 어떤 교육방식을 채택한 모든 부모는 위대하며 존경받아 마땅하다. 사랑에서 말미암은 고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제가 어떤 결심을 하게 되었냐고요? 선생님이 키워주신 인간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이며 자연과 법이 나에게 준 자유의지 이외에는 다른 어떤 속박도 더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 속에서 그들이 하는 일을 검토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독립하려는 지나친 욕망 때문에 스스로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과, 자유를 확보하려는 지나친 노력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5부 결혼기>
자문자답 >
Q. 당신의 아이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운동을 먼저 가르치고 싶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르친다기보단, 그것에 흥미를 느끼고 성장하며 자연스러운 행위임을 깨닫게 하겠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려서 먼저 배운 건 책걸상에 익숙해지는 법이었다. 수많은 활자를 읽어내야 했기 때문에 같은 위치에 오래도록 묶여있어야 했다.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자유로이 신체를 움직이는 일을, 나의 작은 사회가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의 세상은 너무나 좁은 것. 정신의 크기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내 정신은 작은 몸과 그 반경에 그대로 적응해버렸다. 작은 몸에, 좁은 틀에 갇혀 크게 성장하지 못한 작은 인간이 거대한 세계에 부딪혔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움직이는 법을 잃어버린 생각은 이리도 저리도 가지 못한 채 뼈만 남아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였다. 그리고 매번 외부의 힘에 버티지 못하고 숨어버렸다.
육체는 정신의 그릇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뻗쳐나가려는 그릇을 담기 위한 그릇은 단단해졌다가도, 부드럽게 변해야 한다. 정신을 담기 위한 특수한 틀이 있어야 한다면, 육체는 정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신의 몸부림을 받아내기에 좋은, 고무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지녀야 한다.
이를 위해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긴다. 넓디넓은 땅을 뛰어노니고, 냄새를 맡게 하고, 종일 땀이 흐르는 바쁜 몸을 지니게 하겠다. 나보다는 이상에 조금 더 가까운 삶을 살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