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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May 24. 2022

단편, 허구를 읽는 일

<회색 인간 / 김동식> 리뷰

이 단편집이 웹소설을 기반으로 엮인 책이라는 것도, 김동식이라는 작가에 관한 것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읽었다. 


개연성을 마련하기 위한 세세한 정황과 근거를 과감하게 제낀 그의 서사에 감탄했다. 그리고 재밌는 사색에 빠질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면’ 넌 어떨 것 같니- 라는 가정을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꽂아 넣는 듯한 이야기가 이 단편집의 매력이다. 정확하게 들어온 그 공을 칠지 말지 고민하게 하는, 재미난 선택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때문이었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 아마 김동식 작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글이 ‘이전에 없던 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김동식 작가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국문학이나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기는커녕 대학에도 진학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오염되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거침없이 그리고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물론 이런 논리는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존의 법칙을 무시하고 나타난 새로운 시대의 작가, 어쩌면 ‘천재’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한 사람이, 수줍게, 내 앞에 앉아있었다. <추천의 글_ 김민섭>


편집자의 말처럼 ‘오염되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거침없이 그리고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힘과 의지는 어디에 기반한 것일까 궁금했다. 아무런 타이틀도 달지 않았던 그가 소설을 쓰고 글을 남겼던 이유가 궁금했다.  수개의 작품 뒤에 놓인 편집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스스로 엎으린 자를 일으켜 세우며 그가 천재라고, 그를 봐달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편집자의 말에 코가 울렸던 것이다.


작가라는 정체성을 감추고 글쟁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할 만큼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부터, 사유 없이 복제된 격언이나 명언 따위를 습관적으로 내뱉는 사람들까지. 나를 포함해,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해당 분야에 깊이 들어갔다는 증명은 반드시 필요할까. 근근한 삶을 지내는 사람에게 타인의 인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까라는 물음부터 시작해, 그 인정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의 세계를 포함해 타인의 세계까지 침범하게 되는 그런, 무자비한 양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읽었던 책들을 통해 느꼈던 것. 스스로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을, 머릿속에 일어나는 경이로운 현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인정욕보다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가 그들을 바삐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때로 무의식이라는 손쉬운 해석으로 묽어지고는 하지만, 설명될 리 없는 무의식조차도 부단히 정리정돈함으로써 세계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이 애처롭기도 하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상소설이라는 허구. 소설을 허구의 무엇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소설이 있을 ‘법’ 한 일을, 서사란 프레임을 바탕으로 제작된, 거짓 이야기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프고 괴롭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 그래서는 안된다라는 일종의 소망이 어쩔 수없이 담기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걸까.


나는 왜 문학을 읽고 있는 걸까. 읽어야만 하는 이유, 스스로 당위를 부여하기 위해 최면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 읽어야만 한다, 스스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둔다는 점에,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하다는 것에 알 수 없는 이물감을 느낀다. 정말 재미있어서, 흥미로워서 읽는 것일까. 그것을 읽어보았던 자와의 상호 공감을 위해서일까. 작 중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서사에 나는 진심으로 공감하고 싶은 걸까. 일 번, 이번, 삼 번. 읽는 이유에 대해 당위가 차곡차곡 정리되고 적립된다는 것은 과연 괜찮은 일일까. 그냥, 자연스럽게 손이 문학에 손을 내밀 수는 없는 걸까.


최근 단편 여럿을 읽었다. 젊은 작가가 쓴 단편부터 시작해, 유명한 저자가 남겼던 것까지. 이러한 짧고 강렬한 서사에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어쩌면 문학을 읽는다는 건 알기 위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아프고 괴로운 것에 눈을 내리깔게 되고, 즐거운 것에 환희하는, 반자동적으로 나오는 내 몸의 반응, 그 감정에 감응하는 모습이 스스로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내가 요사이 문학에 손이 가는 ‘현상’라고 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딱딱하고 경직된 마음가짐으로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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