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차 Jan 17. 2023

뉴질랜드 기행기

0일 차 - 

댈러스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라운지에서 음식을 쉴 새 없이 입에 때려 넣다 보니 배가 부르고 등이 따숩다. 

나는 지금 뉴질랜드로 가고 있는 중이다. 여름 이후로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니... 열흘이 지나면 오늘의 이 글도 아마 한 폭의 기억으로 자리 잡아 있겠다. 


"퍼스트 러브"라는 일본 드라마를 시작했다. 첫사랑과 함께 머나먼 나라로 도피해 그곳에서 끝사랑을 이루는 것.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사라지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제는 M과 커피를 마셨다. M과 해산하고 그 애의 인스타에 올라온 스토리를 봤는데, 왠지 낯익은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니 옛 애인 Y와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였던 것이다. 

우리가 뉴욕에 놀러 갔을 때 숙소를 제공해 줬던 친구. 내 첫사랑을, 그리고 나의 푸르던 시절을 지켜봤던 친구.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멀어진 시간들을 반추해 본다. 


1일 차 - 

오클랜드 공항은 향수와 함께 나에게로 찾아온다. 다소 소박한 내부, 물이 4분의 1밖에 안 올라오는 변기통,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은 터미널... 불가리아의 공항과 닮은 구석이 있다. 

생각해 보니 나의 청춘은 불가리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내재된 기시감 - 그 기시감은 항상 소피아 공항에서 내디딘 첫걸음, 그 매혹적인 낯섦에서 시작된다. 


여행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매혹적인 낯섦을 찾기 위한 여정, 그리고 그 낯섦 안에서 익숙함 몇 조각을 획득해 귀환하고자 하는 마음. 그러나 그 배후에 있는 또 다른, 더욱 진한 이유. 

삶에서부터 멀어지기 위해.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멀어졌기 때문에 더욱이 잘 보이는 것들. 잘 보이며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들. 예컨대 

우리가 헤어진 이유,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한 이유. 

오클랜드 공항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 익명의 공간에서 나는 내 시계추를 비틀어보고자 한다. 


2일 차 - 

내가 여행을 다니는 것은, 

훗날 만나게 될 당신을 위해 미리 답사를 하는 것이다. 

지금 내 옆에 당신이 앉아 있다. 한도 초과의 평화를 마음껏 만끽하면서. 

허정허정 걸어오는 오리들에게 오직 신(神)만이 볼 수 있는 눈웃음을 보이면서. 그런 상상을 하며 나는 테'아누의 벤치에 앉아 오리가 되는 꿈을 꾼다. 


Y라는 히치하이커를 차에 태웠다. 이스라엘에서 여행 온 40대 남성. 점잖으면서도 자기 소신을 주저 없이 말하는 사람. 나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사람. Y를 차에 태움과 동시에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지만, 만남은 언제나 한 걸음 앞서 마음을 쟁취한다. 

1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는 그를 테'아누 부둣가에 내려준다. 우리는 짧은 악수와 함께 아무 말 없이 헤어진다. 동일했던 시간이 서서히 엇나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 서로 함께 지낸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 보르헤르트


4일 차 - 

번지 점프를 하려 기다리고 있는 도중 누군가 말을 건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애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번지 점프 장소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난간 아래로 내려다보니 느끼는 아찔함. 

한 발짝만 앞으로 가면 허공에의 질주다. 그 짧은 순간동안 머리는 어지러워지면서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마치 위기 상황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광인처럼... 

나와 허공. 이 둘 밖에 없기에. 내가 허공을 껴안을 수 있는 기회다. 신에게 목숨을 맡기고 발을 떼니 

얼굴로 피는 쏠리고 마치 혜성이 된 것처럼 바닥으로 치닫고 

그때 떠오르는 얼굴은 아무도 없었다. 


번지 점프 이후엔 일전에 친해진 여자애와 글레노치로 운전을 갔다. 가던 도중 그 친구는 자기 고향인 말레이시아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운전을 한다. 절반은 애틋한 마음으로, 절반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절반은 사랑으로, 절반은 증오로. 동어반복의 단어들이 차 안을 헤집어놓는다. 

"내가 여기 오래 남아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복잡해졌을까?" 

"그랬을 수도." 

그 무한한 가능성만 남기고, 

24시간과 4시간 만을 남기고, 나는 그녀를 정지 신호판까지만 바래다주고 

이내 뒤돌아 걷는다. 


5일 차 - 

하루살이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는 철저히 미지의 세계라 상정하고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 현재에만 몰두하고 현재가 지나면 연소되는 사람들. 

그 들은 미래가 두려운 것일까, 정말 미래를 모르는 것일까. 

하루살이 사람들은 비장함으로 가득 차있다. 자아를 세분화시키지 않고 오롯이 하나의 시간대 - 현재 - 에서만 존재한다. 

선분의 시간을 맹신하고 원형적 시간을 배척한다. 그들의 비장함 이면에는 알지 모를 절망 또한 스멀거리고 있다. 짙은 슬픔으로 둔갑한 절망. 

나는 조금 많이 겁을 먹고, 조금 덜 절망하기 위해 미래지향적 인간이 되었다. 

하루살이의 삶은 전성기를 누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운명이기에, 그게 무서워서 나의 존재는 시간적 이원론을 척도 삼아 연명한다. 


사랑을 왜 하느냐고? 그건 말이야... 사랑은 연극 같은 거야. 네가 잘 나가는 연극배우라고 하자. 매 공연마다 좌석 매진. 최절정의 인기. 하지만 그것도 한 철이지. 시간이 지나면 너는 남루 해질 테고, 다른 더 멋진 배우들이 판을 칠 것이고, 관객들의 호응과 시선은 이제 다 그쪽으로 쏠릴 테고, 너는 주름 진 얼굴과 늘어난 뱃살을 이고 가장 한가한 시간인 오후 3시에 허름한 소극장으로 향하지. 부서진 조명과 삐그덕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가 너의 초라한 1인 연극을 펼치지. 그때, 관중석 쪽으로 비치는 조명, 그리고 환해지는 너의 얼굴. 네가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늘도 아무도 오지 않는 너의 연극을 보러 왔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1인 연극의 유일하고 영원한 관객이 되겠다는 다짐인 거야. 나는 너를 보고, 너도 나를 보고, 우리는 시선 안에서 마침내 고요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을 하지." - 보르헤르트


6일 차 - 

P와 L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떨어진 농가에서 식을 올렸다. 

L이 입장하자 P의 얼굴이 떨리기 시작한다. 나는 L을 본다.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가 낯설지만 잘 어울린다.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교환학생 동아리에서 만난 L과 함께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외면할 수 없던 마음도 생겼었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던 너를 보니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둘이 만났던 고속터미널 카페가 생각난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속삭이던, 뭔가 그르치는 일을 하는 것 같았던, 그렇지만 내 앞에 네가 앉아 있다는 게 행복했던, 순수하면서도 복잡했던 그 시절의 마음. 


사실, 6년 전에 너를 만났을 때부터 나는 조용히 너를 좋아했어.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 오늘 너를 보니 새록새록 떠오른다. 너와 함께 다녔던 서울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어. 너의 긴 생머리, 찡긋하며 웃던 모습... 지금도 참 예쁘다. 우리 참 근사하게 잘 컸다. 

네 곁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궁금하긴 해. 혹시나 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너도 일말의 마음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제는 다 부질없는 것이겠지. 어떤 진실은 영원히 유페됨으로서 진실성을 획득하지. 

L! 너와의 만남이 이렇게 나를 뉴질랜드로 오게 했어. 추억으로 짙어진 시간이지만 그 시간 속에 너는 언제나 희끄무리하게 모습을 보일 테야. 이제는 P와 함께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길!


마지막날 - 

시간은 언제나 가장 일찍 출발해서 가장 늦게 도착하는 친구처럼, 

나의 뉴질랜드 기행기도 하루만 지나면 끝이 난다. 

시간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포개진다. 접선을 따라 접히는 시간. 평면의 시간은 오리가미처럼 어느새 우리가 원하는 모형으로 접혀 있지 않을까. 

시간의 벌판에서 우리는 뛰어놀았다. 그 누구도 할 것 없이. 얼굴을 사라지고 웃음만 남고 

너와 나는 웃음만으로 살게 되는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항상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어떤 거대한 삶의 해답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귀환해야 된다는 부담이 동반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포만감을 한 번 느낀 마음은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포만감 자체가 지혜이고 행복이기에. 

뉴질랜드는 좋았다. 잔치와 고독.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혼자서 보낸 시간. 여행의 끝에서 여행의 출발을 바라보는 눈은 제법 멀리 마중 나온 가족처럼 애틋하다. 

삶의 범주에서 이탈한 시간은 언제나 좋다. 언저리에서 보낸 시간들이 제일 사랑스럽다. 


"꿈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 안에 내가 없다고 슬퍼져서는 안 된다." - 하재연

작가의 이전글 11월 7일 - 11월 14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