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책을 볼 때 느끼는 절망감. 하지만 절망은 이내 상상의 날개를 달고 회한의 영역으로 날아간다. 절망과 회한이 동심원을 이룰 때 피어나는 일말의 희망. 하지만 희망은 수증기처럼 우리 눈앞에서 증발한다.
삶 - 아파하고 싶은 욕망과 아픔의 쓰라림을 아는 어린이가 충돌하는 현장.
사랑 - 진부함을 넘어서고자 하는 고통의 감미로움. 하지만 대다수는 그 감미로움에 도취되어 다시 진부함으로 전락한다.
21세기의 최대 난제는 집중과 몰입의 차단에 있다. 몰입을 못하는 주체는 시간을 단품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주체이다.
외로움은 생각회로가 오작동할 때 느끼는 답답함에서 시작된다. 닫힌 회로는 너를 고독의 방으로 데려갈 것이며, 무기력해진 너는 순순히 따라갈 것이다.
관념은 그 관념에 걸맞은 형식을 만나야 현상된다. 형식 없는 관념은 그저 망상이다.
멀어진다는 건 일부러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A와 그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B의 얼굴이다.
중요한 건 자세 - 포즈이다. 진실이 유배된 세상에서 모든 행동과 사상은 포즈이다. 그럼 가장 진실된 사람은 가장 그럴싸하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다.
불안을 보잘것없는 것에 할애하는 게 안타깝다. 불안은 그런 용도로 쓰라고 나에게 주어진 게 아닐 텐데.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선 심연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구덩이를 파야한다. 펜이라는 삽으로 여백이라는 땅에 구멍을 낸다.
6시. 정신의 죽음. 우리는 매일매일 크디큰 숨과 작고 작은 죽음으로 연명한다.
혼돈의 상태와 혼잡한 상태의 구별법. 그것은 내가 주체인지 객체인지를 인식하는 바에 달려있다.
시간은 반드시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자본주의는 시간을 뭉개트리고 말았다. 너와 나의 시간은 그렇게 뭉개져버렸기에...
비련의 시간이 찾아온다.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너는 크레타 섬의 미로에 수용된 죄수가 될 것이다. 의미부여는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는 행위다. 동굴의 입구에서 동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너는 갈 길을 가면된다.
기억해라 - 지금 느끼는 너의 감정은 오래전 네가 겪어본 감정이며, 지금 느끼는 너의 괴로움 또한 지나치게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너는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너는 행복하다.
그리움의 증폭 후에 흘러나온 이미지들을 어떤 식으로 배열할 것인가.
경험을 밑천으로 현재를 살겠다는 의지만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경험은 그 시간 속에만 사는 것이다. 시간을 벗어난 경험은 재현 불가능하다. 결국엔 시들고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