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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차 Dec 12. 2022

한 그루의 나무

세상에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존재한다면 

그 주변엔 매듭짓지 못한 약속들만 가득하겠지 

슬피 우는 사람과 멍한 얼굴의 사람은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 사람처럼 껴안는다 

뒷모습만 보면서 

뒷모습만 보이면서 


단 한 그루의 나무는 멍한 표정을 짓고 

그가 사랑했던 나무를 기억한다 

푸름 이전의 잿빛 

잿빛 이전의 어둠 

우리는 푸르게 어두웠던 입술과  

어둡게 푸르렀던 눈빛을 시간 옆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당신의 표정은 또 어떤가 

가끔은 멍해지고 싶은 심정, 하지만 

항상 시간을 지울 만큼 슬퍼지고 싶은 심정 

허공에 떠다니는 기억을 건져 올려 

너와 나의 푸른 어둠에 제물로 바치고 싶어 

멍한 얼굴로 

슬픈 얼굴로 

그리고 마침내 

지워진 얼굴로 


단 한 그루의 나무 아래 

내 새끼손가락에 걸었던 너의 새끼손가락이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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