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쓴 두 편의 시

by 유자차

압정


압정으로 고정해놓은 시곗바늘이

어젯밤 제 멋대로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정이 되면 사라지므로

너는 6시에 이불을 덮고

나는 3시에 바닷가로 나갔다

왜 하필이면 고갈된 감정이

우리가 향했던 최선의 예의였는지


6시를 지나 7시에 가보면

가녀린 몸의 클레르가 서있다

환상 속 세계를 꿈꾼이들 모두가

이제는 시끄러운 고독에 갇혀

째깍거리는 시곗바늘만 응시할 뿐

7시의 클레르는 맛있게 스펀지케이크를

먹고 있을 뿐


아, 나는 세상에 쓰인 모든 걸

다 써 보았어 나는 다 쓰여졌어 이제는

죽음을 기다리는 일 밖에 없어

불길에 타오르는 원고들 사이에서

시곗바늘에 찔린 우리의 얼굴들

우리의 쓸쓸한 얼굴들


얼굴을 압정으로 고정해 놓는다


---------------절취선---------------------------------------------


노곤 노곤한 9월의 어느 날

그는 사는 게 너무 퍽퍽하다며

시를 쓰며 긴장을 이완시키곤 했다

강력한 항우울제 같은 그의 글씨체와 함께

기억은 밀물처럼 정신을 뒤덮고


기억의 끝에는 항상 가을이었다

그날도 노곤하고 그날도 시시했지만

나중엔 그 시시한 날들이

까마득히 먼 남극의 별들 위로

부표처럼 떠오르듯


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5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자

너는 내 손을 더 꽉 잡았고

마치 흘러내리는 물을 움켜잡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은 언제나 투명에 가깝겠지

그 순간은 시간을 파괴하고

시간의 정면에 너와 나 둘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을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겠지

그 문 뒤에서 웃고 있는


노곤 노곤한 9월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