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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하게 박희도 Feb 27. 2024

박희도 일상 에세이 15편

'아버지와 케이크'


내가 무척 어릴 때였다.


아직 세상의 빛이 가득 차지 않았고

흐릿흐릿한 몇몇의 기억 속에

그저 하루의 행복과 재미를 찾는


그 8살 무렵의 아이 때의 일이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무슨 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겨울이니만큼 크리스마스 때가 아니었나 싶다.


줄곧 아버지는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시기 때문에

주로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날도 보통 때처럼 어머니와 함께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언제쯤 집에 돌아오냐는 전화였다.


어머니는 한 7시쯤 돌아간다고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여유롭게 말할걸 그랬다 싶다.


아버지는 원래 혼자 쉬는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밖에서의 일정이 길어져도 크게 개의치 않다가

결국 저녁 10시가 다되어 들어갔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버지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다.


반갑게 우리가 다가가자

기분 나쁜 티를 내셨다.


늦게 돌아와서 그런가 싶어

일단 짐을 정리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케이크와 샴페인이 들어있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것을 사 오지 않았었기에

더욱 놀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날 불러

냉장고에서 아버지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케이크와 샴페인을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추운 날

그 특별한 날을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빵집에 들러

케이크와 샴페인을 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고

큰 이벤트를 준비한 것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도 없이 오지 않자

준비해 두었다 케이크와 샴페인을 다시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이다.


어른이 되고나서 생각해보니

그 날은 아버지에게 힘든 일이 있었나보다 생각도 든다.

우리가 힘들때 돌아갈 사람에게 무언갈 사 들고 가듯이.


그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내가 애교 섞인 장난을 하며

분위기를 풀고 함께 초를 불고 케이크를 함께 먹었다.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생각했었는데


곱씹을수록 그 단맛이 비로소 드러나는

그런 기억들이 있다.


지금은 그 기억이 무척이나 그립다.


추운 겨울날 집과 거리가 있는 빵집에 들러

우리가 어떤 케이크를 좋아할지 고민했을 아버지의 모습과

평소 마셔보지 못한 샴페인을 보고 좋아했을 어머니를 상상하던 그 아버지의 마음과


그런 따뜻한 가족 속에서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렸을 아버지의 그 감정이

무척이나 힘든 지금의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


요즘도 가끔 떠올린다.

그 작은 집 거실에서

작은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놓고


세 가족이 모여

투박한 생크림케이크를 먹던 기억이

3인칭의 시점으로 보이는데


아버지의 당시 큰 이벤트가

아직까지도 큰 울림을 보는 것을 보면

그때 그 이벤트는

비록 시간은 늦어지긴 했지만 

무척이나 성공적인 이벤트였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집이 넓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사랑만 잃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행복한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알려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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