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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 Jan 08. 2021

이목만 끌었구나

위대한 쇼맨(2017)

 

영화'위대한 쇼맨' 스틸컷

실존인물 바넘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위대한 쇼맨’.

17년 말에 개봉한 영화로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이었고 해당 영화의 개봉 소식을 내무반에서 접할 수 있었다. 뮤지컬 영화 장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당시 ‘위대한 쇼맨’을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3년의 시간이 흘러 볼만한 영화를 찾던 중 내 눈에 우연히 띄었던 제목 ‘ 위대한 쇼맨 ’. 나의 옛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였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영화를 다운로드하였고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불을 끄고 팝콘을 준비하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외부 소음을 최대한 막았다. 3년에 걸친 내 한풀이 의식을 정성스레 준비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기 위한 준비를 속전속결로 마쳤고 떨리는 마음을 앞세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내 강렬한 발 구름 비트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목을 끌었던 위대한 쇼
영화'위대한 쇼맨' 스틸컷

영화 내용처럼 영화는 한 편의 서커스 공연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 콘텐츠들이 영화라는 예술 채널을 통해 구현되어왔다. 마술이 그리하였고 연극도 그러하였으며 이번엔 서커스다. 영화‘위대한 쇼맨’은 엄밀히 따지자면 서커스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또한 영화예술과 결부되어 꽤나 흥행에 성공해왔다. 대표적인 뮤지컬 영화인 ‘레미제라블’과 ‘라라 랜드’는 한국에서 각각 590만 그리고 360만의 흥행성적을 내며 대중들에게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는 뮤지컬 영화 장르가 대중들에게 꽤나 익숙해졌고 하나의 주류 장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위대한 쇼맨도 뮤지컬 영화의 성공 흐름을 이어받으면서 많은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위대한 쇼맨을 시대 흐름의 무임 승차자라고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영화는 뮤지컬 영화 장르에 서커스라는 새로운 예술 분야를 접목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훌륭한 사운드 트랙은 덤이다. 영화 관람을 마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영화의 ost 멜로디를 아직까지 흥얼거리고 있다. 영화의 음원 트랙은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에 이름을 올렸고 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을 수상하였으며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ost 음원이 영화‘위대한 쇼맨’의 흥행 열쇠였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마음을 울리기엔 부족했던 플롯. 플롯을 숨기기엔 부족했던 영상미
영화'위대한 쇼맨' 스틸컷

그러나 기대가 워낙 컸던 탓일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쯤, 나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혼자서 읊조린 단어는 ‘과유불급’. 너무 많은 메시지를 짧은 러닝 타임에 담고자 하다 보니 과부하가 온 듯 보였다. 볼거리가 풍성한 것에 비해 영화의 각 메시지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각 메시지를 연결하는 연결고리 또한 부실했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화려한 볼거리들 주변에서 어설프게 겉 돈 느낌이었다. 그 불편한 느낌은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동일 맥락에서, 플롯과 감정 선들이 탄탄하지 않다 보니 뜬금없이 나오는 노래들이 좋기는 하다만 왜인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소위 말해 ‘오글거렸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가 메시지와 플롯에 집중하는 작품이 아니다' 라고 혹은 '그냥 볼거리를 눈과 귀로 즐기면 충분한 영화'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설픈 메시지와 플롯 구성이 용서될 정도로 볼거리들이 참신하고 충분했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볼거리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볼거리를 프레임에 담는 방식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방식에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서커스적인 요소를 영화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조금은 과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영화는 서커스라는 것이 언제든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이고 눈을 어디에 둬도 즐거운 예술임을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한 생각 아래 영화는 다양한 구도에서 다양한 프레임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해당 구도들의 집합체는 산만하게 느껴질 뿐, 일관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다양한 구도의 다양한 화면을 담는다고 해서 영상미가 다채롭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무질서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의 보이지 않는 질서가 인지될 때이다. 산만함만으로는 관객들의 즐거움을 이끌 수 없다. 조금 더 절제되고 정제된 촬영, 편집, 연출을 통해 서커스의 현장감을 깔끔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위대한 쇼맨’이 어느 한쪽에 대한 온전한 선택과 집중을 수행했다면 이를 감안하고 영화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이 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제작 단계에서 플롯과 볼거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쳤던 것이 아닐까.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감히 서두에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도 양보될 수 없는 것.
영화'위대한 쇼맨' 스틸컷

영화를 통해 다른 예술분야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영화라는 채널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면 작품 자체가 붕 떠버리게 된다는 것을 '위대한 쇼맨'이 잘 보여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의 기본 본질은 플롯을 의미한다. ‘위대한 쇼맨’을 보며 느꼈던 안타까움을 다양한 차원에서 서술하긴 했지만,  플롯의 부실함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나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의 플롯은 다른 예술의 플롯들과 그 역할이 다르다. 영화는 프레임의 선택과 편집을 통해 플롯을 형성하고 프레임들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을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채워 넣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플롯은 관객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고 각자의 담론을 만들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의 플롯이 갖는 힘이다. 영화 플롯의 힘은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한 데 묶을 수 있었던 울타리였으며 많은 영화들의 목표가 되어왔다. 물론 영화의 기본 본질을 거슬러 호평을 받은 작품들도 많았다. 허나, 해당 작품들이 고평가를 받은 이유는 플롯을 압도할만한 혁신적 시도가 존재하였거나 참신한 시도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어서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기본 본질을 거스르는 것이 훌륭한 영화 작품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작품들이 존재하였다고 해서 영화 플롯이 갖는 힘이 사라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플롯에 대한 최소한의 정리와 정제가 없다면 아무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였어도 사람들은 그 볼거리 안에 그들 스스로를 온전히 맡기지 않는다. 위대한 쇼맨은 이 기본적인 원칙에 다소 소홀했던 것 같다.     


임수연 평론가는 네이버에 ‘평론가보다는 관객이 좋아할 것 같다. 극 중 바넘의 쇼처럼’이라고 위대한 쇼맨을 평가하였다. 나 또한 평론하는 입장에서 영화를 관람하였기에 위대한 쇼맨이 선사한 서커스 현장에 초대받지 못하였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즐길 줄 몰라서였을 수도 있고 서커스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것은 여전히 영화에 대한 여운이 아니라 영화의 ost 멜로디뿐이었다.




□ 영화'위대한 쇼맨'은 실존 인물 바넘의 일대기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화는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 다양한 분야의 예술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때 영화는 다른 장르의 예술을 화면을 통해 보여줄 뿐이지 그 자체로 해당 장르 예술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당 영화들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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