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Brainwashing)
왜 누군가는 세뇌를 당하는가?
종종 신문이나 뉴스에서 상식적으론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자신을 구타하는 남편에게 매달리는 아내, 성범죄를 저지르는 종교인을 옹호하는 신도들, 본인이 애용하는 기업에 이상하리만치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 등등.... 가스라이팅이니 그루밍이니 하는 심리 용어들이 유행하는 시대다. 그런 시대인 만큼 심리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 집단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기선 '상대방의 주체성을 박탈하고, 환경 및 심리적 조작으로 인해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세뇌라고 통칭한다. 그리고 세뇌당하는 사람들의 사례와 세뇌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저마다 심리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 어떤 사람은 타인을 돕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타인을 이용해 이익을 도모하는 걸 즐긴다. 세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심리적 경향성은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세뇌에 취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만이 세뇌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올곧은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 의존성이 강화되어 세뇌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고, 집단적인 조작이 가해지는 경우에는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어느샌가 그들에게 순종하게 되기도 한다. 아래의 사례들은 세뇌의 피해자들이 정신적으로 나약하다거나, 그런 종류의 범죄가 피해자 탓이라는 내용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누구나 상황 조건에 따라 세뇌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과, 각 사례들에서 사용되는 세뇌의 공통 원리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모든 종교가 앞장서서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 하물며 모든 종교인이 범죄자인 것도 아니다. 종교 관련 인물의 개인적인 일탈이 그 종교의 개별적인 특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가혹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 범죄란, 종교인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해당 계열의 신도나 타 종교인에게 행하는 범죄 행위를 일컫는다. 종교 내의 범죄는 도덕적 관습 내에서 부당하게 여겨지는 행동들을 그들 나름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기제가 자체적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근절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의 종교 범죄는 사기나 폭력, 성폭행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데, 이중 강력범죄에 한해 성폭력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혐오의 양상'으로 해석하는 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는 시도다. 종교인이 유달리 활발한 성욕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보단 종교 체계 안의 폐쇄적 구조, 권력자와 일반 신자 간의 수직적 관계, 맹목성을 조장하는 교리의 성격을 짚어야 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위계가 확립되어 있다. 해당 종교적 교리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사람과 적게 아는 사람, 오래 다닌 사람과 비교적 최근에 귀의한 사람, 조직 계열도 내에서의 신분 차이 등을 근거로 종교는 사람들을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계층의 사람은 자신보다 하위 계열에 속한 이들에게 사실상 절대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종교의 핵심은 순응과 믿음인데, 이는 구성원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고, 그들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 종교 공동체에 대한 충성도, 조직적으로 요구되는 헌신에 따라 신도들은 상위 계열의 종교인들을 신의 대리자로 간주하게 되고, 또 범죄를 계획하는 종교계 권력자들 역시 피해자에게 그런 허위를 주입시킨다. 그럼으로써 구원을 약속하며 신앙심을 시험한다는 이유로 악질적인 시련을 조장한다.
많은 종교인들이 이러한 위험에 심리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믿음이 강조되는 종교적 특성상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만큼이나 신의 말씀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종교인들 역시 믿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의심은 죄악이고, 불신은 구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범죄 사실마저 시련과 구원의 예비 단계로 상정하는 몇몇 종교 공동체는 구성원들을 외부로부터 분리시키거나, 세간의 시선을 '극복해야 하는' 적대적 대상으로 인식시킨다. 그럼으로써 공동체의 폐쇄적 성격은 점차 증대되고, 내부 비판에 따른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심화된다. 종교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특히 성범죄)가 대개 다년간 지속되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다. 피해자는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한다고 해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해당 종교인을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침묵한다. 혹은 피해 사실을 알리려고 해도 주위에서 뜯어 말린다. 내부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말이다. 이렇듯 종교 범죄는 해당 공동체 내에서의 지속적인 억압과 심리적 압제,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을 강조하는 구조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강하다.
세뇌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지속적인 교류 안에서도 발생하지만, 집단이 나서서 개인, 혹은 다른 집단을 심리적으로 조종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신흥 종교를 꼽을 수 있다.
신흥 종교는 그 사회가 어려울수록, 즉 사회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성행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흥 종교는 공격적으로 신도들을 모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신도들의 충성심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도시에 갓 상경한 시골 청년들을 대상으로 접근하거나, 아니면 애당초 시골 지역에 자리를 잡아 마을 단위로 지속되기도 한다. 즉, 신흥 종교는 외로움 등의 이유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리라 간주되는 사람들, 관계를 중시하고 심성이 순박한 사람들, 의존적인 심리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다짜고짜 자신들이 여는 집회에 같이 가서 집단적 열광에 취해보자고 접근하는 이를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신흥 종교 역시 그렇게 저돌적인 방식으로 포교 활동을 하진 않는다. 그들은 대개 두 세명으로 짝지어진 소규모 단위로 포교 활동을 진행하며, 처음엔 종교에 관한 언급 없이 자연스레 접근한다. 그들은 우선 신도로 포섭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다양한 이유(설문조사나 사적인 관계 형성, 길을 잃어버렸다는 식)로 대화의 가닥을 잡고, 인간적인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다음 자연스레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인간적인 성격을 강조하며, 그곳으로 가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식의 미끼를 던진다. 앞서 언급했던 도시에 갓 상경한 사람들의 경우, 사회적 관계의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느끼고, 인간관계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이에 넘어가기 쉽다. 경우에 따라 성관계를 빌미로 유혹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집회에 참여하게 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서부턴 집단적인 심리 조작 기제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신흥 종교의 경우,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사랑합니다'는 식의 인사말을 건네며 그들을 환영한다.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이 같은 관행이 다소 작위적이고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그런 환경에 노출되면 사람의 심리는 고양되기 마련이다. 빈말이든 아니든 사람은 그 언어에 담긴 통상적인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되는데,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해석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이후 신흥 종교는 대부분 합숙 활동을 통해 신도의 정신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려고 든다.
이런 종류의 집단적 세뇌가 신흥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집단적 세뇌를 일상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업 신입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대학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에서, 군대의 신병 교육 과정이나 동아리 등의 사적 조직 내에서의 멤버십 트레이닝에서 우리는 집단 세뇌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초반에 정의했듯이, 세뇌는 주체성을 앗아가고 외부의 논리에 의존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내부 규율에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내맡기게 하는 과정 역시 일종의 세뇌다. 이런 일상적인 수준의 세뇌는 세뇌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한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교묘하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 자신에게 물리적·정신적 해를 가하는 대상을 사랑하고, 그에 의존하는 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세뇌의 관점에서 보면 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지속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데이트 폭력은 말하자면 가장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세뇌의 전형을 보여준다.
연인 사이의 세뇌는 보통 가스라이팅이나 그루밍과 같은 용어로 설명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다른 모든 인간관계를 통제하거나 단절시켜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의 말을 속삭임과 동시에 가학적인 태도를 보이며,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애정과 가학의 줄타기 속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정서적 혼란을 유지·가중시키고,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잇속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가학은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가해지며, 가해자의 통제욕과 사디즘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피해자는 정서적 혼란 속에서 이를 애정의 표현으로 왜곡하여 인식하거나, 혹은 범죄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의존, 가해 행위 이외의 애정 표현에 집착하여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데이트 폭력의 추이는 피해자의 의존적 성향에 좌우된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데이트 폭력은 대체로 사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발생하며, 처음엔 사소한 차원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한 시작은 연인 사이의 관대함을 악질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가해자에 대한 사랑은 피해자의 인식을 흔들어 객관적인 상황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가해자는 특히 그 사실을 이용해, 피해자의 감정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조작하려 든다. 세뇌의 단계가 발전할수록 피해자는 점차 심리적으로 매몰되어 가고, 가해자의 애정 표현과 그와의 관계에 집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단호하게 선을 긋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사실 관계와 그에 대한 해석 사이의 인지부조화가 발생해 상대방의 태도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에서의 피해자는 보통 불안정 애착을 가지고 있다. 불안정 애착은 폭력적이거나 냉소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랄 경우, 과거의 애착 관계 형성에 있어 어려움을 겪은 경우 애착 관계에 있는 상대방이 나를 떠날까봐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성향이다. 불안정 애착 상태에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애정을 갈구하며 확인하고 싶어 한다. 반대로 말하면 이 같은 요구가 충족될 시, 상대방에 대한 의존도가 지극히 높아지며, 그와의 관계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기에 가해자의 폭언 및 폭력에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며, 가해자의 위선과 기망에도 저항할 수 없게 된다.
세뇌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 집단과 집단 등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리 조작의 과정이다. 그 적용 범위는 대단히 넓으며, 각각의 개별 사례가 보이는 양상도 천차만별이어서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도출해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뇌가 발생하고 진행되는 과정은 대개 비슷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세뇌자 역시 일반적으로 공통된 성격 특질을 가지고 있다. 아래에선 이 같은 요소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는 가해 집단의 성격과도 연관이 되는데, 세뇌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면모를 보인다. 세뇌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타자의 심리를 조작해 해소하고자 하는 행동 양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존재고, 저마다의 한계를 직시하며 살아가야 할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타인에 대한 착취 및 그의 희생에 마땅한 정서적 반응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경우, 그 사람은 타자를 통제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전능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배한다는 쾌감에 사로잡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신흥 종교의 수장, 자기중심적인 연인 등이 있다.
능숙한 세뇌자는 다양한 심리적 기법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들은 상대방의 과거 감정을 부추겨 갈등의 정서를 확대하고, 그것을 현재의 세뇌자가 원하는 목표 대상에게 쏟아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극단적 성향의 정치 집회 주도자나 혐오 이데올로기를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사람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현재의 사회 문제나 이념적 양상과는 관련 없는, 타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오랜 감정을 끌어올린 뒤, 해소의 명목으로 표출 대상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이 감정의 전이 과정을 스스로 포착해내지 못한다면, 선동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념적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극단적인 주장을 공공장소에서 열광적으로 외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종류의 세뇌 피해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세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상대방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단적 세뇌가 실행되는 경우, 조직은 세뇌 대상자들에게 정보의 양을 극단적으로 조절해서 제공한다. 즉, 정보를 아주 많이 제공하거나, 정보 습득을 아예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심리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보의 과잉과 결핍은 인간의 정신을 건강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핵심 요인들이며, 전체주의 국가나 신흥 종교, 기업 세미나나 군대, 경우에 따라 연인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세뇌 기법 중 하나다.
인간의 뇌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습득할 경우, 주의가 산만해지고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뇌가 피로감을 느낀다는 건 이후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 및 평가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정보를 과잉 주입시키는 집단은 개인의 정신적 탈진 상태를 유도해, 이후 정말로 자신들이 각인시키길 원하는 핵심적인 사실들을 강요한다. 인간의 뇌는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 한계를 강제로 넘어서게 함으로써 정신의 기능성을 저해시키는 것이다. 기능성이 저해된 뇌는 이후의 정보를 판별하기엔 너무나도 피로해서, 그냥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세뇌의 예비 단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정보 과잉 상태에서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유도하는 프로세스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인터넷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의 홈페이지나 기사, 블로그 글을 읽다 보면 시선은 특정한 지점에 가 있지만, 시야 안에는 온갖 종류의 정보가 산재해 있기에 뇌는 피로를 느끼기 쉽다. 무수한 광고나 다음 기사 목록, 다양한 분류표에 따른 하이퍼링크 항목들, 클릭에 따라 열리는 여러 개의 창들, 시각 자료와 함께 첨부되어 있는 청각 자료, 상단의 메일이나 메신저(카카오톡 등) 알림, 날씨나 경제 지표 등등.... 현대인은 휴대폰 화면을 보며 스스로 정보 과잉 상태에 접어든다. 그럼으로써 일상적인 집중력이 저하되고, 정신의 멍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정보 차단을 통한 뇌의 결핍 상태를 유도하는 건 정보 과잉과 추구하는 결과는 같지만, 과정상의 차이가 있다. 감금이나 합숙 활동을 통해 세뇌가 진행되는 경우, 세뇌자는 세뇌 대상자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정신적 공백 상태를 유도한다. 새로운 정보에 대한 어떤 학습 조건도 주어지지 않게 되면 사람은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불안해지고, 경우에 따라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환각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사상 개조를 위해 세뇌 대상자를 감각 차단 탱크에 넣거나, 빛도 들지 않는 좁은 감방에 몇 달 동안 가둬놓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고립된 세뇌 대상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를 갈급하게 되고, 이 상태에서 뇌에 자극이나 정보가 주어지면 그것들은 아주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는 주로 집단적 세뇌 과정에서 작동하는 방식이지만,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을 제외한 인간관계의 단절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직·간접적으로나마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습득할 수 있는 사적인 정보는 가해자의 것으로 한정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세뇌의 핵심적인 요소는 자립과 의존의 줄타기다. 세뇌는 상대방의 심리적 자립 상태를 흔들어 놓고, 지속적으로 외부 대상에 의존하게 만들어 원하는 바를 얻는 조작적 과정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심리 상태에 대한 다양한 연구, 그 성질을 규명하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세뇌를 용이하게 만드는 장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정보 검색이 용이해진 지금 같은 시대에선 더욱 빈번히 발생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세뇌자들은 고전적 조건 반사 실험 결과를 세뇌 과정에 도입하기도 한다. 먼저 세뇌자는 대상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련의 사건과 방아쇠 역할을 하는 다른 종류의 사건을 조건화시킨 후, 세뇌 대상자에게 그 둘을 연결하여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이때 세뇌자는 '방아쇠'를 일정한 시간 간격에 따라 대상자에게 인식시키다가, 어느 순간 의도적으로 패턴에서 벗어남으로써 피해자에게 심리적 불안을 유발한다. 주기적인 연락을 하던 사이에서 갑자기 연락이 끊기거나 하는 경우의 예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관계의 패턴에서 무기력하게 제외된 세뇌 대상자는 불안감, 초조함 등을 느끼게 되고 심리 조작에 취약한 정신 상태로 유도된다. 집단 세뇌의 경우, 개인에게 친절히 대해주다가 갑자기 별안간 벌을 주는 방식으로 변덕스러운 행동 패턴을 실천함으로써 이를 유도한다. 핵심은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난 불규칙적 양상으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계속해서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가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거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
단순한 형태의 강화 학습을 응용하는 방식도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행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즉, 칭찬하거나 처벌한다. 이때, 세뇌자는 세뇌 대상자에게 긍정과 부정의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처리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피해자는 반복에 순응하게 되고, 비판적 판단보다는 가해자의 판단 형식에 의존하게 된다. 물론 처벌의 방식이 극단적일 경우, 피해자도 이상함을 느껴 그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세뇌 과정은 보통 대단히 미묘해서, '어찌 돼도 상관없는 부분'으로부터 사소한 네거티브─연인 사이에서 토라지는 모습을 보인다던가, 세뇌 집단에서 가벼운 체벌을 가하거나 조롱 대상으로 삼는 등─를 부여하는 형태로 시작된다. 그러다 점차 통제와 처벌의 범위가 확대되고, 피해자는 어쩔 도리 없이 가해자로부터 긍정적인 보상을 받는 행위에 집착하게 된다. 많은 가정이나 교육 환경에서 응용되기도 하는 이 방식은 아이들의 주체성을 훼손하고, 무비판적인 경향성을 강화하는 폭력적인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 교육자나 부모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좋은 의도로 활용된다고 해도 세뇌는 세뇌다.
우리는 여기서 세뇌의 사례와 그 작동 방식에 대한 보편적인 특징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람들은 다른 범죄에 비해 '사기'의 경우,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조롱하는 경향성이 짙다. 피해자가 멍청해서 사기를 당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신흥 종교에서의 범죄나 세뇌로 인한 정신 조작의 사례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세뇌에 취약한 정서적 특징이 존재하긴 하지만, 세뇌의 대상은 특정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상황 조건에 따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사실 피해자를 비웃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 무언가에 세뇌당한 채로 살고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세뇌를 일삼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과 그 방식을 숙지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