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아나키즘을 지지할까?
우리나라에서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에 대한 인상을 테러나 무질서, 혼돈과 유아적인 수준의 자유를 추구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아나키즘은 모든 형태의 중앙집권적 정부, 즉 '국가'를 거부하고 비판하긴 하지만, 그것이 아나키즘의 전부는 아니다. 아나키즘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모든 국가는 사라져야 한다'는 그들의 일반적인 주장 속에 어떤 맥락과 대안이 숨어져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원리 및 실천적 대안
다른 현대의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아나키즘 역시 다양한 형태와 각각의 이론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아나키즘이라고 불릴 만한, 즉 건전한 방식의 주장을 견지하는 아나키스트라면 모두가 동의하는 몇 가지 원칙, 핵심적인 주장이 있다. 여기선 그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이해를 추구함과 동시에, 그 같은 개념들이 현대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념들과 어떤 구별점을 가지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 나는 모든 종류의 권위에 반대합니다 : 평등과 자율 추구
아나키즘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권위에 대한 반대'이다. 그들이 공격하는 대표적인 권위 체계는 국가이며, 그 외의 교육 제도, 형벌 제도, 군대나 공권력, 공무원을 필두로 한 관료제 등 특정 계층이나 사람에게 부여되는 권위에 따라 작동하는 모든 시스템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권위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독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에 따라 개인들의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권위에 따라 재편된 사회는 각 개인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특정한 방식으로 발현되도록 유도한다. 권위적 체계의 윗단에 서있는 자들은 그들이 옳다고 믿거나, 혹은 그들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사회적 권력을 조정 및 분배하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에 복속하도록 교묘한 공작을 진행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중 하나는, 아나키스트들이 부정하고 비판하는 '국가'는 '사회'랑은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아나키스트는 모든 종류의 조직에 반대하진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연합 형태의 조직을 장려하며, 가입과 탈퇴의 권리가 완전히 자유로운 '연맹' 또한 지지한다. 아나키스트는 개인주의적이며 고유한 인간의 자율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 사회적 연결망 형성 등에 관해선 긍정적이다. 단지 그들이 주장하는 건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조직에 중앙집권적인 권력 체제가 형성되어선 안 되며,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을 독점하거나 획일적인 도덕관 등의 교육을 통해 대중을 선도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권위에 그렇게까지 부정적인가? 이를테면 대의 민주주의처럼 대중이 몇몇 개인에게 권력을 '일임하는 방식'으로 합의된 권위를 산출하면 되지 않는가? 아나키스트의 주장을 접한 이들이라면 충분히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이에 아나키스트들은 역사적인 맥락과 권위에 대한 합의의 기만적 성격을 지적한다.
당장 생각해봐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 권위적 조직을 내세운 집단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소외 계층을 대변한답시고 일어난 모든 정치적 조직은 권위가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예외 없이 타락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적 재산을 독점하고자 했고,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소외 계층에게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권위를 내세웠다. 인간 개개인은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삶을 영위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때 자신의 긍정적인 신념을 관철하고 능동적인 태도로 환경을 구축해나갈 수 있다. 반면 권위적 성격의 집단에 포섭된 인간들은 모두 내재적 권위에 굴복하기 마련이며, 나아가 집단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 같은 권위에 굴종하기를 강요하게 된다. 이 경계에서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이념적 판단과 자신 및 집단의 사익 추구를 혼동해, 말도 안 되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단순히 비관적인 전망이나 자조가 아닌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모든 국가는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지니며, 종국에는 국민의 삶과 사회적 시스템을 지배하려고 든다.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의 순기능이라며 이 같은 정치 제도가 권위 및 권력의 독점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아나키스트들은 대부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투표 행위의 기만적 성격을 지적한다. 국민들은 자신의 사익이나 스스로 옳다고 믿는 대의, 혹은 정당의 성격이나 그들이 추구하는 공익의 형태를 지지하며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 투표 행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들이 산출되리라 믿는 정치적 사익, 정치적 대의, 정당의 행보나 이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정치 체제가 특정한 방향으로 설정해놓은 맥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판단이며, 자신을 과장되게 꾸미고 본격적으로 기만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정치 조직에 대한 순진한 믿음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예로 보건대, 정치적 관심을 표방하는 어떤 사람들은 서로 반대 진영의 '정당'이나 '정치인'을 욕하지, 그들의 '이념'을 비판하지 않는다. 원색적인 비난이 오고 가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만이 깨어 있는 온전한 시민이고, 다른 가치 판단을 내리는 '다른 진영의 사람들'을 '계몽시켜야 할 미성숙자'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에게 이로운, 혹은 옳다고 세뇌당한 권위를 위해 헌신할 뿐, 진정한 의미의 자신을 돌보지도 않을뿐더러, 인간 존재로서의 자율을 발휘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권위에 따른 정치 체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맥락 가운데, 사람들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집단적 독단, 자신만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는 권위적 특권 의식, 주관과 자율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독점적 폭력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권위가 한 데 어우러진 현대의 모든 국가에 반대한다.
│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이다. 모든 권위가 부정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주체성과 자발적 연합의 형성, 상호 보존과 자율의 원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 체계는 특히 경제적 영역에서 부각된다. 일반적으로, 아나키스트는 사유재산의 배타적 독점에 반대한다. 물론 개인의 집이나 농업 활동에 종사하기 위한 땅이 마련될 순 있지만, 거시적 규모의 자본 이동이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은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띠지만, 모든 사회주의자가 아나키스트인 건 아니다. 하물며 일반적인 아나키즘이 공산주의적인 이념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아나키스트는 생산 수단의 국가적 독점에도 반대할뿐더러, 권위적 성격을 가지는 노동자 집단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아나키즘의 이론적 체계 하에서, 자발적인 노동자 조직 및 연맹은 긍정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스스로 일할 능력이 있는 자들, 노동을 신성시하고 그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자들이 모여 서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노동 조직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 조직이다. 아나키스트가 비판하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착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개인의 노동이 그의 바깥에 있는 외적 논리와 체계 하에 탈인간적으로 강요되는 관계이다. 계획되고 지시되는 노동은 인간을 생산라인의 부품으로 격하시키며, 그의 행위를 기계적인 장치의 활동으로 여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주체성은 폄하되고, 그의 인격은 근본적인 차원의 모욕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사람이 거시적인 힘에 의해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간주되어 체계의 부분으로 작동하는 것, 이는 권위가 개인에게 감행하는 근본적인 모욕이라고 아나키스트들은 주장한다.
오늘날 아나키스트가 비판하는 사회 체계는 대체로 민주주의이고, 그들이 비판하는 경제 체제는 대체로 자본주의지만 이들 각각의 체계가 그들이 반대하는 유일한 대상은 아니다. 앞선 두 가지 형태의 정치, 경제적 양상이 현대 사회를 이루는 지배적인 방식이기에 주요 비판 대상으로써 도마에 오르는 것이지, 완화된 형태의 권위적 사회주의나 계급 혁명을 추종하는 권위적 노동자 집단에도 그들은 비판적이다. 물론 그들은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가 단지 퇴보된 형태의 사회상이라거나, 과거의 왕정 체제와 똑같은 수준의 독재를 감행하고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사회적 모습이 지금의 차원으로 변화된 것이 일종의 진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특정한 권위에 기대어 국가라는 집단을 존속시키고 있는 한, 인간 사회에 만연한 불행과 부정을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류가 '국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허구적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 개인과 대중에 대한 믿음 : 자생과 자발적 협동으로
스스로 소위 '지식인'이라고 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중'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사람들의 우매함을 꼬집거나 개개인의 편협함을 일깨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 분석과 인간에 대한 통찰에 전제되는 '대중'은 도대체 무엇인가? 각각의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인간 집단이라는 게 있는가? 혹은 대중이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각각의 사회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두드러진 공통 특성이 정말로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공통 특성은 단지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수준의 사실을 요구하며 꼬투리를 잡기 위해 언급한 개념이 아니다. '일반적'이라거나, '보편적으로'라거나, '일반 대중'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존재의 집합은 실존하는가?
국가 제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같은 권위적 집단이 사라질 시, 사람들의 삶이 크게 불행해질 것이고, 그들 사이의 어떠한 조율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국가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들은 대중이 우매하고 이기적이며, 법이나 권위 없이는 어떤 도덕도 스스로 준수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착각이야말로 엘리트주의적 권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국가가 사라진다고 해도 사람들은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국가주의적 사회관에서 비롯된 다양한 문제, 정치적 독점이나 경제적 불평등, 획일적인 교육 체계 속에서의 집단적 편견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산출하고 있는(그들의 내재적인 모순과 해악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범죄자나 정신이상자를 위한 교정 시설 역시 불필요해질 것이며, 종국엔 폭력적인 관계 조율이 필요치 않게 되리라고 그들은 말한다. 기존의 사회 속에서 억압되어 온 개인은 새로운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내적인 자질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개개인은 서로 간의 연대를 통해 지역 사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확장되면 개인의 자율과 평등이 보장되는, 어떤 종류의 권위 의식도 찾아볼 수 없는 국제 연맹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탁상공론을 즐기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비롯된 발상이 아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사회 해방을 위한 투쟁의 장소에서 언제나 선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나키즘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행동과 신념을 실천하길 요구하는 사상이자, 모든 형태의 권위와 독재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의 일종이다.
우리는 아나키즘의 이론에 대한 개론적인 논의를 통해 왜 어떤 이들이 아나키즘을 지지하는지 살펴보았다. 아나키스트들은 그들의 이론이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 창조성을 지지하는 탈권위적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위 글에선 다소 암시적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자본주의와 국가 민주주의의 대안으로써의 사회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나키즘을 지지한다. 그들의 대안적 사회상이란 단적으로 말해 노동이 자율화된 사회이며, 개인과 개인이 탈퇴와 가입이 자유로운 자발적 연맹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이며, 고유한 주체로서의 인간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내적인 소질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는 사회이다.
* 본 글은 학술적인 차원에서 주제를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기에, 문제 인식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나 실태, 참고 논문명 등을 따로 기재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