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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 Oct 10. 2022

정체성을 왜곡하는 기술적 매개들

#41. 기억


  스마트폰의 발달 때문인지, SNS 기능의 발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열정적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아름다운 정경을 발견했을 때,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때 사람들은 그 순간들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사진은 저장장치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으니까. 또한 기술에 의해 보정된 사진 속 모습은 현실의 일시적이고 덧없는 순간들에 비해 더 멀끔하고, 영원하니까.


  독특하다면 독특한 것은, 많은 사람이 그러한 순간들을 만끽하며 사진 속에 박제해두는 걸로 모자라, 그걸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를 가장 잘 파고든 게 인스타그램일 것이다.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행복한 순간들을 찍어서 전시한다. 그들만의 추억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이 확인하고 수긍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혹은 적어도 이미지로 구현된 나의 경험, 기억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상업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머나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걸 보증해주는 가장 직관적인 수단은 '기억'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고유한 기억의 배열에 근거해 구성한다. 즉, 내가 남들과 다른 한 명의 특별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내가 다른 누구와도 궁극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기억의 집합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런 맥락에서,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신경적 문제로 기억을 점차 잃어간다는 건 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점차 상실해가는 것과 비슷하다. 퇴행성 신경질환에 걸린 사람들의 말로는 대개 비슷한 양상이다. 그들은 자신을 잃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저주다.


  기억이 이렇게 중요한 요소인 만큼, 많은 사람이 좋은 기억력의 비결을 알고 싶어 한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추억하고, 느끼고, 되새기고,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주의집중이다. 당신이 뭔가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면, 그것을 마주한 순간에 주의력을 끌어 모아야 한다. 우리의 뇌는 주의력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들을 그냥 지나친다. 많은 집중력이 투입되지 않아도 잠깐 동안의 작업을 위해 표면적으로 맴돌 게 할 순 있지만, 어쨌든 주의집중이 없다면 그것들을 뇌 안 쪽에 새겨 넣을 순 없다.


  어떤 대상이나 상황, 사건 같은 것들이 당신의 주의집중을 받아 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면, 우리의 두개골 속 물리적 뇌는 실제로 해부학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즉, 새로운 사실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는 건 그것을 저장하기 전과는 '실제로' 다른 뇌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저장된 정보를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해부학적 연결은 더더욱 강화되어, 분명히 뇌에 저장되어 있긴 하지만 자주 떠올리진 않는 다른 정보들에 비해 회상하기 쉬워진다. 요컨대,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 무언가를 기억하고 싶다면, 당신은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살면서 많은 기억이 우리 자신의 뇌를 변화시켰다. 그러한 변화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 이런 맥락에서, 기억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내가 살면서 거쳐온 장소와 시간, 경험한 사건들과 느끼고 생각한 결과물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뇌에 다양한 해부학적 변화를 일으켰고, 지금의 형체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기억은 당신이 중요하게 여겨온 것들의 흔적이며, 당신이 의미를 부여고자 했던 것들의 총합인 셈이다.




  여기서 기술의 저주라면 저주인 것이 개입한다. 오늘날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 정돈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다. 즉, 현대인들은 점점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우리는 맛있는 식당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 아프게 집중할 필요가 없다. 휴대폰 갤러리를 뒤져보거나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되니까. 우리는 친구와 여행했던 기억을 되뇌기 위해 인상을 쓸 필요가 없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던 사진들을 찾아보면 되니까. 사람들은 주의집중을 동원하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를 상기할 수 있다. 기계가 대신 기억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정보를 도출하는 결과값은 비슷할지언정, 그 과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기억을 우리의 뇌에 저장하는 것이 해부학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더 많은 것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더 촘촘한 뇌신경 구조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 신경 세포 간 연결은 더 튼튼해지고, 다양한 정보들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만약 이 해부학적 변화를 위한 주의집중의 노력을 건너뛰고, 내 바깥에 있는 데이터를 그저 확인할 뿐이라면 뇌는 점점 더 느슨해지지 않을까?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기 힘들어지고, 원하는 어휘를 발음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지 않을까?


  기억은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억은, 앞서 말했듯이 사진과 동영상 같은 형태로 저장되어 타인과 공유된다. 즉, 그것은 내 안에 위치하지 않고 내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눈에 띄는 형태로 전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전시물을 관람하며, 마치 그것들을 실제로 자기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느낀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인의 정체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되고, 섞이며, 혼잡해진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 우울 같은 신경증적 증세가 유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나만의 고유한 기억 체계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것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가? 그 방법은 간단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 순간을 만끽하며, 주의집중을 동원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풍미를 즐기며,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것들을 즐겨야 한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낼 때면, 스마트폰이나 사진기를 내려놓고 좋은 느낌을 공유해야 한다. 더 많이 웃고,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해야 한다. 모든 순간들에 몰입하고, 집중하여, 그것들이 내 뇌 속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예쁘장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 대신 말이다. 필터와 보정은 그저 현실을 얄팍하게 만들 뿐이다.





  머나먼 과거의 사람들을 상상해보라. 그들에겐 사진도, 동영상도, SNS도 없다. 그들이 현실의 모든 순간에 취할 수 있는 태도란 그저 그 순간들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뿐이다. 그러한 삶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얼마나 생생하고 강렬할까? 그들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얼마나 명료하고 또렷할까? 안타깝게도 우린 그 천연의 정서를 체험할 수 없다. 이 시대는 시각적인 모든 것을 스크린으로 매개하고, 청각적인 모든 것을 이어폰으로 매개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콘서트에 가서도 동영상을 찍는다.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은 그 순간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박제해놓는 수단이다. 우리의 기억은 저장의 기능뿐 아니라 망각의 기능도 수행한다. 망각이 우리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중요한 걸 떠올리지 못할까봐, 그걸 끝내 잊어버릴까봐 걱정할 필욘 없다. 당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뇌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적절한 때가 오면 다시금 떠올라, 그때의 기분과 세부사항들을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순간에 주의집중을 동원했고, 진정으로 몰입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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