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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Jun 16. 2024

그럴싸한 주말

 작년 11월, 직장을 옮긴 뒤로 나의 주말은 분주해졌다.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해야 하는데 하루는 기본이요, 1박 2일 일정도 자주 있다. 외로운 서울생활, 반강제적으로라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재미있지만서도 가끔은 나의 주말을 되돌려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오늘 같이 무료한 주말이 주어지면,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귀하디 귀한 오늘을 어떻게 하면 잘, 그럴싸하게, 있어 보이게 보낼 수 있을까. 집에만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나를 다그친다. 특히 늦은 잠에 일어나는 일요일이라면 더더욱.


조급한 마음에 카카오맵을 켜보았다. 빼곡히 박힌 즐겨찾기 목록. 당장 떠나려고 하면 어디든지 나를 받아줄, 이미 알고 있는 공간들이 너무나도 많다. 식당, 카페, 소품가게 등등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 표시들  훑어본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한창 더울 시간. 북촌이나 합정을 가기에는 애매하다. 내일이 월요일이라 시간을 크게 할애할 수 없기에 집과 가까운 잠실을 기준으로 화면을 확대해보았다. 성수/서울숲은 어제도 갔었고, 평소에도 너-무 자주 방문해서 넘기고. 강남은 시끄럽고 혼자 가기엔 무리인지라 제외해보았다. 두 발이 갈곳을 잃어 괜히 서러웠다. 길 오늘 하루를 가치있게 보내야 하는데.. 다음 주는 또 일해야 하는데… 나는 왜 오늘 늦게 일어 났을까. 어제 새벽 괜히 영화를 틀어 본 내가 너무 싫었다. 새벽 3시에 잠들지만 않았어도, 더 긴 주말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탓할 사람도 탓할 대상도 나 뿐이라 자책은 그만 두기로 한다.


 스스로를 재촉하는 마음, 멈출 수 있는 방법은 포기하는 것 뿐이다. “그래 갈곳이 없다면, 안 가는 것도 방법이지” 합리화 버튼을 켜보기 시작한다. 꼭 그럴 싸한, 흔히 말하는 감성있는 카페를 가야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여태 살아온 방식대로 아무 길을 걸어 본다. 20분 정도 걸렸을까. 집 근처에 있지만 가본 적 없는, 주택지와 낡은 상가 사이의  처음 보는 카페로 향했다. 볕이 드는 곳에 가방을 내려두고, 에어컨 아래에서 시끄러운 햇살을 받아 들였다.  해를 받아들인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따뜻한 먼지를 일으킨다. 다른 표현은 떠올릴 필요도 없이, 그저 좋았다. 오늘을 기록하다가 카페를 빠져 나왔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할일이 꽤 많다. 


2주간 미뤘던 집안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어야지. 4일 정도 걸어놔서 아주 빳빳하게 말라 있겠구나. 또 내일 점심에 먹을 도시락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 한 달 정도 해보니.. 반찬에 한계가 찾아 왔다. 이왕이면 새롭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어떤 게 있을까. 이걸 핑계 삼아 엄마에게 전화를 해봐야 겠다. 도통 전화가 없다며 서운해하시던 그녀는 어떤 음식을 추천해주실까. 이왕이면 간단한 거였으면 좋을텐데... 요즘은 여름 대비 다이어트 중이라 저녁은 삶은 계란과 바나나 쥬스를 마실 계획이다. 소금을 찍은 계란과의 단짠 조합이 질리지 않아 꾸준히 먹고 있다. 시간 남는다면 산책도 해봐야지. 그리고 월요일의 나를 위해 오늘은 일찍 잠에 들어야겠다. 꽤나 그럴싸한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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