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의 씨 자도 모르는 취준생이 영화과에 들어가게 된 이유 (1)
될성부른 외톨이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나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영화과에 진학했다. 당시 애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지인이 내가 영화과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 했다. 대학 시절 나는 씨네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인생 대부분의 시절을 영화에 문외한으로 살았다. 물론 지금도 영화라는 거대한 세상의 십 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 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랬기에 내가 영화과에 입학했다고 했을 때 가장 놀란 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물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응원해주었지만 여전히 ‘비담이가 영화과에?’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큼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영화를 만들겠다고 이 난리를 치고 있을까.
그 기원을 찾으려면 아주 아주 오래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 그 무렵의 나는 아주 아주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아이였다. 당시에 나는 영화라고는 주말의 명화조차도 알지 못 했다. 엄격한 아버지는 12세 딱지가 붙은 드라마조차 보지 못 하게 했다. 내게 허락된 것은 책 뿐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대부분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이고 책을 돌려 읽었다. 나중에는 엄마에게 <해리 포터> 영문본을 사달라고 해서 모르는 영어단어를 사전에서 찾아가며 책을 읽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꿈을 꾸거나 런던 기차역에서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당시 우리 식구는 통영에 살았는데, 집 앞에 작은 해변이 있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아도는 시간 동안 집 앞 바닷가에 멍하니 앉아, 수평선 너머엔 뭐가 있을지 공상하는 데 하루를 쓰곤 했다. 언젠가는 바다 저 멀리로 해적이 되어 떠나야지 다짐하곤 했다. 혼자서 이무기에 대한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성공하는 얘기였던가, 실패하는 얘기였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만화를 집 어딘가에 꽁꽁 숨겨 놓았는데, 어느 날에는 과외 선생님이 그 만화를 발견하고는 자그마한 아이가 품고 있던 열정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학교에서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하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나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잘 알지 못 했고, 게임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운동을 잘 하거나 재치 있는 농담을 할 줄도 몰랐다.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늘 겉돈다고 느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혼자 괴로워했다. 어쩌면 그랬기에 혼자서 공상하는 시간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와의 접점은 없어 보인다. 도대체 왜 갑자기 영화가 만들고 싶어졌을까?
그건 이후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