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레벌떡 계단을 올라온 판사는 복도에 서 있던 우리에게 짧게 눈인사를 건네더니, 따라오라는 듯 앞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가 알던 판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고동색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문을 밀치고 급하게 들어가자, 나와 직원들도 그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작고 어두운 방 안에는 습한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정오 무렵에야 출근한 판사는 역시 고동색 나무로 된 창문을 두 손으로 밀어젖혔다. 가운데가 갈라진 창문은 삐걱 소리를 내며 억지로 열리듯 양쪽으로 벌어졌고, 따가운 햇볕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방 안의 먼지가 일제히 떠올랐고, 햇살이 판사의 뒤통수에 내려앉자 그는 가려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한번 털어냈다. 눈부심이 가라앉자 비로소 그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키는 165cm에 조금 못 미쳐 보였고, 몸무게는 65~68kg 남짓. 30대 중반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네모난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 이름을 ‘만(Man)’이라고 소개했다. 베트남에서 자주 듣던 이름이라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영어로는 Man이지만 ‘사람’이 아니라 ‘가득 차다, 충만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의 충만함이 정의가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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