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산책하던 와중, 갑자기 서혜부에 통증이 밀려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멍이 든 것처럼 둔탁하게 아파왔다.
걸어야 하는데 다리를 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이 환상의 콜라보를 이루면서 두두두둑 나를 공격해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멀리 나오지 말고 집 근처에서만 산책할걸...'
임신 39주 0일차,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느릿느릿 거북이 같은 걸음으로 걷다 쉬다 걷다 쉬다 하면서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그대로 엉거주춤 침대까지 걸어가서 겨우겨우 옆으로 누웠다.
"어제 스트레칭을 너무 심하게 했나?"
임신 막달이지만 배 말고 이렇게 서혜부가 아픈 게 임신 증상이라고는 처음에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꼼짝 않고 옆으로 누워있었다. 자세를 바꾸거나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면 더 큰 통증이 느껴졌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서혜부 통증이 임신 막달 증상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정기검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치골 쪽이 아프냐고 물어봤었다.
'야호! 드디어 분만이 다가오는 건가?'
아프지만 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지난주까지 아이가 안 내려왔다고 했었는데, 드디어 아이가 내려와서 아픈가 싶어서 빨리 병원에서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서 누워있다 보니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현관까지 못 나갈 정도로 상태가 심해서 누워서 인사를 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양손에 저녁 먹을 걸 테이크아웃해 왔다. 우린 정말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엄마가 분만 일주일 전부터 아이가 내려와서 배를 붙잡고 엉거주춤 걸으셨었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 증상인가 싶기도 했다. 난 배는 괜찮은데 골반이 다 벌어진 것처럼 아파서 마음대로 못 걸으니 답답했다. 무난하게 임신산부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시련에 맞닿았다. 서혜부 통증과 근육이 땅기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는데, 손목과 손가락 통증은 나아져서 막 움직일 수 있었다.
임신 39주 막 진입하고 걷기 힘들 정도로 아팠던 서혜부 통증은 이틀이 지나자 그나마 걸을만할 정도로 완화되었다. 아직도 배가 내려간 느낌은 나지 않는다. 소화도 잘 되지 않는 게 아이가 그대로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키가 커져서 머리는 내려갔지만 발은 여전히 위에 있나 봐.'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이번엔 아파트 단지 내의 산책길만 걷는다. 멀리 갔다가 집에 못 오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된다. 걷다 보니 나무향기에 이끌려서 뒷산 가까이로 간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내 볼까?'
가볍게 산을 탄 한 입주민이 맨발로 흙을 밟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 나도 산공기를 마시고 흙과 나무를 더 느끼고 싶었다.
뒷산의 초입부에만 올라가야겠다.
거창한 등산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완만하고 작은 뒷동산을 오른 지 5분조차 되지 않았을 때, 오른쪽 뒷다리가 단단해졌다. 뭉치고 단단해져서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등산이나 조깅을 해도 한 번도 뭉친 적이 없었는데 오른쪽 다리가 뭔가 이상하다.
'혹시 쥐 난 건가?'
운동하다가 쥐 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별로 운동을 안 하고 살았던 나는 처음으로 운동하다가 쥐 난 걸 경험한 것 같다. 오른쪽 종아리 뒤쪽이 너무 아팠는데 근처에 벤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리를 숙여서 손으로 다리를 마사지했다. 핸드폰을 봤더니 남편이 퇴근한다고 메시지가 와있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서 남편 퇴근시간 맞춰서 빨리 얼굴 보고 싶은데 오른쪽 다리 때문에 절뚝절뚝 걸었다. 쥐 난 걸 다 풀고 가면 해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은 한쪽 다리로 걷고 나머지 다리는 지탱하는 식으로 걸어서 집으로 갔다.
현관에 남편의 신발이 있다.
"나 쥐 났나 봐요."
내 종아리를 보고 남편은 급하게 마사지를 해준다. 그리고 쥐 난 거 맞는 거 같다고 말한다. 살살 눌렀던 나와 다르게 남편은 안 세게 누르는 것 같은데도 압이 세다.
"진짜 혼자서 멀리 안 나가야겠어요.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산책해야겠어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만삭 임산부다.
출산이 임박해 온다.
아이가 이제 넌 다 컸어. 나와도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