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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민 Oct 24. 2023

운동화와 장대비



오늘은 방학하는 날이다.


 선생님께서 통지표와 탐구생활을 주셨다.


친구들과 일찍 마치고 집에 갈 생각에 조바심 내면서 기다리는데 


버스는 오지 않고 언제 올지도 모른다.


겨우 한 시간에 한 대 버스는 왜 이리 더딘지?


빨리 집에 가서 엄마에게 통지표를 보여드리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은데 


오늘도 어디서 또 버스는 타이어가 펑크 나서 기사 아저씨가 버스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양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에 친구들 마음은 점점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는 듯하고 달달한 아이스깨끼를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모두가 의논이나 한 듯, 친구 한 명이 문방구 앞 아이스깨끼 뚜껑을 열고 베시식 웃는다.

그러더니 하나를 꺼내고 버스비 10원을 문방구 할머니께 드린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일어나서 깊어만 하는 아이스깨끼 통을 바라보면서 하나씩 꺼내 물었다.


그렇게 모두 친구들 하나씩 입에 물고 환하게 웃었고 회색 하늘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이라도 물고 걸어가야 신나게 걸을 수 있다는 마음이 역력하다.


또 아이스깨끼가 먹고 싶을 때 간혹 버스를 타는 것이랑 얼음과자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버스


가 바로 올 시간인데도 그냥 세월아, 네월아 걸어가면서 4키로의 걸음과 바꿀 때도 있었다.



 덥기는 덥고 버스는 오지 않고 하늘은 시꺼멓게 구름이 모여 놀고 있어서 하늘은 더 꺼멓기만 했다.


 그렇게 모두 입속의 시원함과 달달함을 위안 삼아 걸었고 한여름 더위는 금세 아이스 깨끼를 입속에서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런 달달함은 오래가지 않았고 아쉬움에 심심한 입을 다시 열고 수다를 떨며 한참을 걸어가는데 예상대로 꺼멓던 하늘에서 억수 같은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준비도 없이 굵기가 일정하게 앞도 보이지 않았고 금방 신작로 물은 불어 땅은 파이기 시작한다. 


출처-헬로 마켓


 나는 통지 표가 혹시 젖어서 엄마에게 보여드리지 못할까?


 탐구생활 속에 통지표를 넣고 탐구생활도 런닝 속에 넣고 또 고개는 처마 끝 모양 숙이고 


 또 숙여서 막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옷 속에 있는 통지표가 젖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잉크로 통지표에 써주신 내 성적이 지워지면 안 되고 또 도장을 받아서 선생님께


제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도 방학도 했지만 계곡 물속에 들어가서 노는 것이랑 똑같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내리는 비를 즐기는지? 너무 즐거워했다.


 계곡물속에 들어간 듯 온몸이 흠뻑 젖으면서 달리는 기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기를 몇 분하고 어떤 친구는 재밌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가기도 했지만


난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막 뛰어갔다. 빨리 가야 비도 덜 맞고 옷 속에 탐구생활과 통지 표도 젖으면 안 되기에...,


그렇게 뛰었기 때문인지? 4킬로나 떨어진 집에 순식간에 도착했고 엄마는


방에서 바느질하고 계셨다.


 


살짝 웃으면서 옷 속에서 꺼풀이 젖는 탐구생활 속에서 통지표를 내밀었다.


 엄마는 언제나 동생에게만 관심이 많았는데 오늘도 별 내색 없이 


"니 방에 갖다 둬라."이렇게 말씀하시곤 갈아입을 옷을 내주고 밥을 주셨다.


그러시고는 바느질을 계속하신다.


밥도 먹기 싫었지만 뛰어 오느라 허기진 배에서 소리가 나서 밥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일만 하시는 엄마에게 짜증을 부릴 수는 없었고 어쩌면 내 짜증을 받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잘했다, 칭찬도 없이 아무 말씀도 없이....'

'동생은 못해도 늘 칭찬하고 개근상 겨우 받아 와도 5일장에 가서 액자 사서 걸어 놓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에 속상했지만 


 피곤한 탓인지? 책상 위에 통지 표를 한 번 더 보고 젖은 탐구생활을 말리려고


 방바닥에 펼쳐놓고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엄마가 저녁을 하시는지? 


부엌이 아닌 집 뒤편에 아궁이를 하나 만들어 뒀는데 거기에서 불을 피우신 모양이었고


하늘은 완전히 개였고 맛난 생선 굽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고 아궁이 앞에 가보니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젖은 운동화는 아궁이 옆 온기 때문인지 솔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마는 내가 잘 때 아마도 젖은 내 운동화를 씻어서 말려놓은 모양이었다.


통지 표도 제대로 보시지 않고 관심도 없는 듯해서 좀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엄마의 환한 미소가 내가 잠든 사이에 내 방에 와서 통지표와 탐구생활을 보신 모양이었다.


하늘도 개이고 엄마도 활짝 웃으시고 나는 그 바람에 


엄마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엄마의 사랑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서 그날따라 더 엄마 등 뒤


에서 신이 난 듯 조잘거렸고 아궁이 속 불꽃은 엄마의 사랑만큼이나 활활 타오르고 얼굴도 홍조 빛을 띠면서 나의 환한 미소는 비를 막으려고 숙였던 머리 밑에 걸렸다.


*어릴 적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써 본 글입니다.

추억이 새록 새록 일어나기도 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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