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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hine Nov 30. 2022

1. 인연의 시작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고양이를 싫어하셨다.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동물이라고. 길거리를 가다 보면 우리를 음산하게 쳐다보는 고양이의 눈빛을 보며, 나 역시 고양이를 싫어했다. 그런 내가 갑자기 고양이에 빠져들게 된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유튜브에서 고양이 동영상을 찾아보고, 포인핸드에서 버려진 고양이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으니까. 아내는 당연히 이런 나를 보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내는 나를 위해 고양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주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 딸(9세, 6세)은 병원으로 가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고, 나와 큰 딸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판정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3단계, 큰 딸은 무려 4단계. 안 될 일이었다. 나야 알레르기에 대한 약을 먹으며 버틴다고는 해도, 큰 딸이 고양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고양이 입양을 포기했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동네 길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만큼이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큰 딸은 나와 손을 잡고 동네를 걸으며 길고양이들을 구경하는 산책을 즐겨했다.     

아내는 이런 나와 큰 딸이 또다시 걱정이 되었나 보다. 결국 고양이를 입양해보자는 말을 꺼냈다.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 방 하나를 고양이에게 내어 주어 최대한 접촉을 줄여 보고, 알레르기를 줄여주는 사료를 사용하자고. 하지만 그래도 알레르기 때문에 큰 딸이 힘들어한다면, 좋은 곳을 찾아 다시 입양을 시켜주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나는 당시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해 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고양이를 파양하는 것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내의 의견이 우리 가족 입장에서 매우 합리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했지만, 길고양이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시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괜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는 없었기에, SNS에 입양 홍보를 하던 분에게 연락을 취해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결과는 뻔했다. 입양시켜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씁쓸했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고양이와 함께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물론 펫샵에서 품종묘를 구입해 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내 마음이 허락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다 운명을 믿지 않는 나에게 운명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큰 딸아이와 길고양이들을 둘러보는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빌라 밑에서 고양이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큰 딸아이와 나는 눈을 서로 마주치고는 그곳을 조심히 다가갔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눈에서 뭔가가 흘러내리고, 너무 안쓰러워 보이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이런 경우 이 고양이에게 뭘 해주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던 나는, 제주동물친구들이라는 단체에 인스타그램 DM을 넣어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곧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혹시 그 고양이 잡으실 수 있겠어요? 잡을 수 있다면 지금 잡아서 하루만 댁에서 데리고 계시다가, 내일 병원에 데리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볼 때, 그 고양이 감기가 너무 심해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할지도 몰라요."     

나는 황급히 큰 딸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다시 그곳으로 달려갔고, 고양이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가가자 가뜩이나 겁을 먹은 고양이는 좁은 곳으로 숨기 시작했고, 고양이를 손으로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나는 새끼 고양이에게 손을 뻗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상자를 옆으로 뉘어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밑을 내려다보니 고양이가 사라졌다. 분명 움직이는 것을 못 봤는데, 소리도 못 들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어디 갔을까. 고개를 돌려보다가 상자를 보니, 뉘어놓은 상자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됐다. 상자를 제대로 세우고, 뚜껑만 제대로 닫으면 끝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상자를 똑바로 세웠다. 순간 고양이가 상자에서 뛰쳐나왔고,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라 빠르지는 않았다. 나는 혹여나 고양이가 너무 겁을 먹을까 걸어서 쫓아가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어미 고양이로 보이는 성묘가 튀어나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는 다시 제주동물친구들에 전화를 넣었다. 기쁜 목소리로.      

"놓쳤습니다. 그런데 어미 고양이가 데리고 갔어요."

"그렇군요. 혹시 다시 잡을 수 없을까요. 치료하지 않으면 아이가 정말 실명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어미가 데려간 것이 다행 아닐까요? 일단 며칠 더 지켜보면서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볼게요."     

전화를 끊고서 괜히 찝찝했다. 어미가 데려간 것을 축복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찝찝한 마음을 강제로 눌러놓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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