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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hine Dec 07. 2022

5. 골골송(2)

집으로 돌아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를 왜 좋아했던가. 왜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쁘고 귀여워서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한쪽 눈이 감긴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구슬이는 과연 예쁘고 귀여울까? 참 한심하게도, 적출 수술을 하고 난 뒤의 고양이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는 예쁘고 귀여웠지만, 두 눈이 모두 빛나는 고양이가 당연히 더 예뻐 보였다. 다시 고민에 잠긴다. 그렇다면, 불쌍하고 가엾다는 이유로 동물과 함께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답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다시 길가에 내다 버리는 것이 옳은가. 아니오. 답이 쉽게 떨어진다.

구슬이와 처음 만났을 때를 다시 떠올려본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나고, 두 번째에야 구조에 성공해 우리 집으로 왔다. 만약 첫 번째 구슬이가 나에게 구조되었다면, 아마 구슬이 두 눈은 모두 멀쩡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슬이를 방사하거나, 다른 곳에 입양시키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선택지가 사라진 것은 구슬이가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독한 간택이다. 간택을 피하거나, 어찌할 방도를 모두 막아버린 상태로 구슬이는 나에게 온 것이다.

머리는 다시 단순해졌다. 어쩌겠는가. 아직 살아있는 시력을 살려보는데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걸. 안약은 총 4종류였다. 아침저녁으로 가루약을 먹여야 했다. 그루밍을 막기 위해 넥카라를 씌워야 했다. 하지만 구슬이는 너무 작아 넥카라도 맞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파일철을 자르고 청테이프를 붙여 넥카라를 직접 만들었다. 넥카라를 씌우면 밥도, 물도 먹지 못한다. 그러니 밥을 먹을 때는 넥카라를 풀어야 한다. 밥을 먹을 때 이외에 물을 먹지 못하니, 밥은 무조건 습식이어야 한다. 지인에게서 얻은 자동급식기는 일단 아웃. 눈에서 항상 나오는 눈곱은 계속해서 식염수로 세척하고, 시간 날 때마다 인공눈물도 놔주어야 한다. 사투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구슬이를 간호했다. 위에 이야기한 모든 것을 하루도 빼지 않았다. 병원도 2~3일에 한 번씩 계속 다녔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안압을 측정해가며 걱정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구슬이 눈에서 눈곱이 유독 많이 끼기 시작했다. 열심히도 그 눈곱을 씻어주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갔다.

"구슬이 오른쪽 눈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각막궤양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각막궤양이요? 그건 또 뭔가요?"

녹내장으로 충분히 지친 내게, 각막궤양이라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말은 다시 충격을 선사했다.

"각막이 벗겨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금 눈 전체적으로 각막궤양이 일어난 것 같고요. 지금 눈에 보이는 이물질은 각막이 벗겨진 흔적이니까 닦아내시면 안 돼요. 오히려 각막이 더 다칠 수 있어요."

"선생님. 저 이제 솔직히 힘듭니다. 일하면서 구슬이 돌보느라, 하루에 세 번 밥 주느라, 병원에 계속 데리고 오느라. 돈도 돈이고요. 저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아픈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을 뿐인데, 왜 제가 이 고생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죠? 저나 구슬이나 서로 힘든데, 적출 수술은 도대체 언제 할 수 있는 거예요? 서로의 고통을 줄여주려면 빨리 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요?"

무슨 얘기를 한참 더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물론 이 말은 나의 본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실은 내 머릿속에서 정말 충격이었던 것은, 각막궤양인 줄 모르고 무식하게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구슬이 눈을 씻어낸 것이었다. 내가 구슬이 눈을 더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고양이를 위해 희생하는 집사 이미지를 나에게 덧씌웠는지도 모른다.

일단 구슬이 눈은, 터질 수도 있단다. 아니 터질 확률이 높단다. 하지만 적출 수술은 구슬이가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또 걱정이다. 구슬이 눈이 터지는 것을 어린 딸아이들이 볼까 봐. 그렇게 충격을 받을까 봐. 이런저런 생각에, 나 역시 구슬이처럼 골골대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구슬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큰 딸이 구슬이를 보며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구 구슬아. 그러게 첫날 잡히지 그랬어."

큰 딸에게 물었다.

"구슬이 눈 한쪽이 없어져도 괜찮아?"

"응. 괜찮아. 내가 더 사랑해주면 돼. 아무 상관없어."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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