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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r 27. 2024

뿌듯함에는 차이가 없다

아이와 노인

우리 집 첫째는 참 말을 안 듣는다. 매일 아침 학교 보내기부터 난관이다. 부모 마음은 급한데 아이는 천하태평이다. 학교 갈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그냥 지각하자고 얘기하면 그건 안 되는 일이란다. 아침식사하고 세안과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싸서 등교하는 간단한 흐름이 초2가 된 지금도 척척되지 않는다. 결국 시간을 정해서 이때는 해야 하는지를 정해줄 수밖에 없다. 

"8시야, 이제 이 닦아!"

"8시 10분이다. 아직도 옷 안 입고 있으면 어쩌니?" 

시계를 가리키며 얘기하면 그때야 움직인다.


우리 주간보호기관의 어르신들도 말을 안 듣긴 매한가지다. 매일 배회를 하신다. 몇 번을 이따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하여도 소용이 없다. 누가 신발을 가져갈까 봐 센터 입구 신발장으로 본인 신발을 확인하러 가신다.

"어르신, 이제 1시 30분이에요. 율동하고 간식 먹으면서 두어 시간만 더 있으면 차 와요."

"어르신, 신발은 신발장에 잘 있어요. 제가 어르신 이름도 딱 붙여놨잖아요."

신발을 꺼내 들고 확인시켜 드려야 다시 생활실로 들어가신다. 그리고 잠시 뒤 또 확인하러 나오신다.


아이와 노인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첫째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귀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신얘기만 하면 쪼르르 아빠옆에 와서 떠나질 않는다. 화장실 갈 때도 꼭 문을 열어두고 어두운 곳은 혼자 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첫째 놀리기는 참 재미가 있다. 저녁이 되어 거실에 커튼을 치다가 첫째가 보이면 장난을 건다.

"커튼 한번 열어봐! 거기 귀신이 너를 찾더라!"

"아빠 장난하지 마. 귀신 없잖아!"

그러면서도 커튼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어제는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 어두운 입구를 통과하였다.

"귀신 오겠다. 빨리 가자!"

냅다 출입문으로 뛰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째는 아빠뒤를 쏜살같이 붙어 따라왔다. 

그러다 앞의 벽을 못 보고 코언저리와 윗입술을 부딪혔다.

"엉엉, 아빠가 무섭게 해서 이렇게 되었잖아! 엉엉, 아파~"

"천천히 오면 되지 왜 아빠 따라 뛴 거야~ 이건 아빠 잘못이 아니라 니가 앞을 잘 보지 않아서 부딪힌 거 아냐?"

우는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했지만 놀린 책임이 없진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만 놀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집에 돌아와 연고를 발라주니 아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윗입술이 부은 채 잔 아이는 다음날 아침에는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어르신들은 오후 간식을 먹고 나면 슬슬 집에 가고 싶어 하신다. 이때 옆에서 제대로 지켜보지 않으면 집에 가겠다며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신다. 한 어르신은 그렇게 혼자 입구로 나오다가 1달 새 2번이나 넘어졌다. 다행히 찰과상에 그쳤지만 어르신들의 낙상은 기관의 존폐를 좌우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요양보호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들도 오후 시간엔 시간을 정해 어르신 배회를 막기 위해 생활실에 상주한다. 노인과 아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회복력이다.


우리 집 둘째는 아직 기저귀를 차지만 변이 마려우면 "똥"이라며 표현을 한다. 막상 변기에 앉히면 장난만 친다. 다시 기저귀를 입혀놓으면 어디 구석에 가서 응가를 한다. 이 모습은 6년 전의 형아와 똑 닮아있다. 똥 묻은 기저귀를 벗겨 싸서 버리고 엉덩이를 씻어 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고추를 달랑 거리며 돌아다닌다. 시간이 없어 물티슈로 닦고 기저귀를 갈아주어도 비슷하다. 바지를 안 입으려고 침대로 도망간다. 매트리스 위에서 쿵쿵 뛰고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잡아서 바디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히면 그렇게 깔끔할 수 없다.


어르신은 변의와 요의를 표현하지 못한다. 매 시간마다 화장실에 모시고 가는데도 앉은자리에서 오줌을 싼다. 깔고 앉아있던 에어매트 볼록이 사이사이에 물이 흥건하다. 욕실로 모시고 가서 하체를 씻겨드리고 여분의 속옷과 바지를 입혀드린다. 이뿐만 아니다. 걸음은 성큼성큼 잘 걷다가도 어떤 때는 자박자박 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당장 잡을 것이 보이면 발은 나가지 않고 손부터 뻗으니 몸이 휘청한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잘 따라 주지 않는다.


아이와 노인 모두 우리가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는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불편한 부분을 보완해 드리고 기능이 떨어지지 않도록 훈련을 해드려야 한다. 두 존재 모두 손이 많이 가지만 함께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


아이들을 목욕시켜서 깨끗한 옷을 입히는 뿌듯함과 어르신 목욕날 깨끗이 씻겨서 깨끗한 옷을 입혀 드리는 뿌듯함은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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