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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로 떠난 주말 가족여행

거제도 가족여행 1일 차

by CJbenitora

비가 쏟아지듯 내리던 토요일, 우리 가족은 거제도로 떠났다. 주말마다 낮동안 아이들은 본가로, 아내는 일터로, 나는 사무실로 흩어지던 지난날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 만에 가족끼리 여행 가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우리 네 식구만 여행하는 것은 한참 되었네요."

엄마의 말에 아빠도 맞장구를 쳤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다음 주 준비를 금요일에 미리 해 두었다. 아내는 주말까지는 반납해야 할 아이들 책을 모아서 도서관에 반납했다. 첫째도 농구수업과 줄넘기학원에서 친구들과 하룻밤 자는 행사가 있었지만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여행이 없다면 이번 주말 역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을 우리였다.


거가대교 입구의 휴게소가 보였다.

"저기서 거제도와 대교가 보일 텐데 가볼까요?"

"가봐요. 저기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10년도 더 전에 아내와 사귈 때 통영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거가대교를 건넌 적이 있는데 그땐 하행만 이용하여서 휴게소는 들르지 못했다. 아내가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하니 들르기로 했다.


아이들까지 함께 들른 휴게소는 바다 경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듯하던 비는 잦아졌으나 아직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주변에 잔뜩 안개가 끼어있었다. 아쉬운 대로 거가대교 전시관에 들러서 실내에서 잠시 쉬다 나왔다. 나오는 길에 츄러스 하나를 샀더니 한 컵에 8개를 담아주었다. 첫째가 공평하게 한 사람 당 2개씩 나눠주었다. 하나를 먹으니 너무 달아서 남은 1개를 그대로 컵에 담아두었더니 첫째가 더 먹고 싶다고 하였다.

"아빠는 다 먹었어. 이거 더 먹어."

"아빠, 고맙습니다."

매번 시켜야 인사하고, 시켜야 고맙다는 말을 하던 아이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시점에서 스스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의례적인 말인 고맙다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니 나도 그런 말을 하는 첫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해저터널과 해상의 다리를 건너 거제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여기가 거제란 말에 신나 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외부활동보다는 실내 놀이를 하기로 했다. 거가대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리조트에 아이들이 놀기 좋은 키즈카페가 있다고 해서 들렀다. 점심때라서 리조트 식당에는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았다. 우리도 그중에 하나가 되어 돈가스, 오므라이스, 순두부찌개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배를 채우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어서 키즈카페에 들어가고 싶어서 엉덩이를 자꾸 떼었다.


식사를 마쳤다. 오기 전에 애엄마가 미리 인터넷으로 아이들 표를 예매했기에 당당하게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막아섰다. 이곳은 키가 1미터가 넘는 아이들이 노는 곳이라고 설명하던 그는 우리를 향해 물었다.

"저 아이 키가 얼마가 될까요?"

"한번 재볼게요."

최근에 집에서 둘째의 키를 잴 때 98cm였기에 잘하면 100cm는 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되지 않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이곳은 100cm 이상의 아이들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졸지에 쫓겨난 우리는 다시 계획을 세웠다.

"일단 둘째가 갈만한 다른 키즈카페를 먼저 찾아봐요."

아내의 말에 같은 층에 있는 뽀로로 키즈카페를 찾았다. 둘째가 밖에 세워진 뽀로로와 상어 모형을 좋아하길래 입장을 하려 했더니 직원이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이 정도 또래의 아이가 놀기에는 여긴 심심할 수도 있으니 한층 밑에도 한번 가보고 오라는 권유였다. 내려갔더니 큰 볼풀과 그물 놀이,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샌드아일랜드라는 키즈카페가 있었다.

"그럼 아빠랑 둘째가 여기서 놀 테니, 엄마는 첫째랑 아까 거기서 노세요. 다 놀고 우리가 그쪽으로 갈 테니 두 시간 뒤에 봐요!"


둘째는 첫 한 시간을 동물과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다음으로 볼풀 10분, 그물 10분, 모래사장 10분을 놀았다. 그리곤 다시 남은 30분을 장난감 놀이에 빠졌다. 아빠는 다양한 놀이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아이가 놀고 싶은 것을 직접 선택해서 주도적으로 놀게 놔두라는 육아전문가의 말이 생각이 나서 옆에 있어만 주었다. 다 놀고 위층 형아들이 노는 키즈카페 앞에 갔더니 마침 엄마와 첫째도 다 놀고 나왔다.


”재밌었어?"

"어, 집라인이 재밌었어."

첫째가 신나서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니 나이에 맞는 놀이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둘째대로 잘 놀았으니 키가 작아 입장을 못 한 것은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숙소로 향했다. 오늘 기거할 곳은 장승포항 앞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료칸이었다. 내일 아침 요기할 만한 것들과 짐을 방에 부렸다. 거제도에 살고 있는 친구네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해서 쉴 시간도 없이 이동했다. 친구네와 만나서 함께 이동한 식당은 오리구이 전문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어리고 매운 것을 잘 못 먹으니 간장 구이, 친구네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매운 것도 잘 먹으니 고추장 구이를 시켰다. 아이들은 서로 처음 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보기도 하여 서먹했지만 금세 까르르거렸다.


초등학생들은 요즘 그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캐릭터 이름 몇 개만 말해주면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부모들은 부모들의 세상,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상이 있었다. 식사를 잘 마치고 빵집에 들러 마카롱, 타르트, 식빵 등을 사서 친구집에서 후식을 먹었다. 오붓이 둘러앉아 같이 빵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과일을 먹고, TV를 보았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서 이런 풍경이 연출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아이 키우는 집은 저녁마다 이런 분위기이겠구나 싶었다.


9시가 넘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숙소는 다른 것보다 욕장이 넓어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좋아서 선택했다.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지금 놀지 않으면 아침에는 시간이 촉박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수영복을 입히고 물을 둘째 배꼽까지 받았다. 아빠도 엄마도 같이 발을 담그고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공간에 함께 했다. 11시가 가까워졌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달래어 욕장을 나왔다. 잠옷을 갈아입히니 둘 다 챙겨 온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조금 보다가 금방 고꾸라졌다.


하루 종일 내 시간이라고는 없었지만 뿌듯했다. 육아하는 아빠도 나의 소임이고 그것을 너무 잘 수행했다는 뿌듯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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