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처가 식구들과 갔던 부여여행이 좋았다.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부여까지도 갔는데 1년이 더 흐른 지금은 어디든 못 가랴. 그래서 선택한 곳이 목포였다. 목포는 5년 전에 동생과 처음 가보았다. 그땐 여름이 가까워 오는 봄이라 평화광장에 숙소를 잡고 해안로를 산책하며 음악과 조명에 취하였다.
목포여행은 역시나 식도락이 중심이었다. 호롱이, 낙지볶음, 연포탕, 생선구이, 남도정식, 스페셜 코스회 등 먹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목포 구시가지 사진관에서 처남네와 장인장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2박 3일의 일정동안 진도를 2번이나 갔다 왔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보고 명량의 무대가 생각보다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도 개테마파크는 추위와 비수기로 인해 공연이 없어서 아이들이 아쉬워했지만 강아지들이 올망졸망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평화광장 주변에 마련한 숙소는 내부에 키즈놀이터가 있고 온수가 나오는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정했기에 아이들은 자기 전까지 신나게 놀았다.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국도를 타면서 액셀을 밟아도 차의 rpm이 잘 오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있으면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괜찮을까'
불안했다. 이틀 전 울산에서 목포로 올 때 가속이 즉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한 번씩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진 것이었다.
우려 속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탔다. 아니나 다를까 변속이 되질 않았다. 1단에서는 rpm이 올라가는데 2단 이상으로 자동으로 변속이 안되었다. 어쩔 수 없이 수동모드로 바꿨다. 1단에서 올라가는 rpm이 2단, 3단으로 단수를 올리면 액셀을 밟아도 1500 rpm을 넘지 못했다. 경사지에서 급격히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조마조마했다. 내리막에서는 그래도 100km까지 서서히 가속했지만 또 평지나 오르막이 나오면 50km까지 속도가 떨어졌다.
그나마 시동이 꺼지지 않는 것, 천천히나마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보성을 지나면서 더 이상 이대로 갔다가는 고속도로에서 무슨 일이 생기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가장 가까운 기아등록 카센터를 검색했다. 벌교의 한 정비소가 떴다. 벌교 IC에서 내려 5분 거리에 위치한 그곳에 들렀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차에서는 아이들이 자고 있었고 그 아이들을 지킨다고 장모님이 옆에 함께 앉아있었다. 조수석의 아내는 대기실로 가서 기다리고 나는 정비사가 원인을 찾아내기를 기다리며 옆에 서있었다.
점화플러그 4개를 전부 갈았다. 불완전 연소가 된 것 같다고 했고 이전 점화플러그는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였다. 교체를 하고 시험 주행을 하는데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 현상이 여전했다. 기기를 꽂아 오류코드를 찾아보아도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한번 더 시험 주행 후에 리프트로 차를 들어 올린 정비사가 드디어 원인을 발견했다.
배기가스 필터 문제였다. 필터는 1차와 2차로 나뉘는데 두 군데가 연소 후 굳어서 쌓인 재로 꽉 찬 것이었다.
정비사가 이곳저곳 부품점을 수소문하는데 연락하는 곳마다 부품이 없다고 하였다.
"여가 시골이라 부품을 안 가지고 있네요~"
"그럼 순천은 좀 더 크니 거기에서는 구할 수 있을까요?"
"나가 전화를 해 볼텐게 쪼까 기다려보시요~"
정비사가 순천의 아는 정비소에 몇 군데 전화를 넣었다. 그는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던 어떤 곳과 몇 번의 시도 끝에 통화가 되더니 밝은 얼굴로 나를 찾았다.
"순천에는 부품이 있는 것 같으니 가보시요~ 얘기를 해놓을 텐게"
정비사는 혹시 내가 못 찾을 까봐 자기 핸드폰에 떠있는 정비소 전화번호까지 사진을 찍어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차는 고치지 못한 상황이고 점화플러그 교체에 7만 원 이상 쓰고 나왔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늘 안으로 울산에 가는 것이 중요했다. 국도로 20분 거리인 순천의 그 정비소까지 천천히 운행하였다.
순천의 정비소에 도착하니 젊은 정비사 2명이 나왔다. 자초지종을 간략히 설명하니 전화로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장모님과 아이 둘, 나와 와이프는 정비소 사무실 한편에 앉아 수리되기만을 기다렸다. 벌교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순천에서도 기약이 없었다.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틀어주는 영상에 빠져있고 어른들은 그저 앉아있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1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장모님이 잠깐 바람 쐬러 다녀오시면서 찐빵과 만두를 사 오셨다. 걱정에 배고픈지 모르고 있다가 만두를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아이들에게 찐빵 하나씩 물리고 만두를 허겁지겁 먹고 나니 애타는 기분이 좀 나았다.
리프트에 올려진 우리 차가 내려왔다. 정비사가 시험주행을 나갔다가 30분쯤 지나서야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어 창밖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정비사가 들어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재가 꽉 찬 1차 필터를 새 부품으로 교체를 하고 시험 주행을 다녀왔는데 현상이 여전하다고 했다. 2차 필터가 여전히 막혀있어서 자기도 도로에서 시동이 꺼져서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차를 다시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했다. 진땀 꽤나 흘렸을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어서 그는 2차 필터 부품은 자신들도 지금 구할 수 없어서 필터를 떼서 안에 있는 재를 그냥 전부 깨서 털어내 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울산까지 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는 그의 말에 희망이 보였다.
드디어 수리가 끝났다. 정비사가 2차 필터를 깨끗하게 하고 비용을 청구했다. 1차 필터 부품비 30만 원에 수공비 15만 원이 붙었다. 아까 벌교에서 쓴 비용과 합해서 세금포함 6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한나절동안 썼다. 그래도 순천에서 울산을 대중교통으로 5명이 이동하거나 순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정비소를 나와 주유를 하고 울산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3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를 100km로 달리는 것을 평소에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100km로만 달려도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새삼 느껴졌다. 출발할 때 예상 울산 도착시간이 오후 4시 반이었는데 실제로는 저녁 9시 반에 도착하였다.
총 5시간 동안 정비소에서 기다리면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조금 전까지 누리던 것도 조금 뒤에는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목포에서 울산으로 오는 길에 생긴 일들은 범사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의미의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