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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한창인 날 예산시장에 가서 든 생각

by CJbenitora

요즘 누가 시골장터에 가서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려고 할까? 유명한 요식업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니 이런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긴 한다. 인구 7만 6천8백 명의 시골동네 충청남도 예산은 10년이 넘게 공들여 마케팅해 온 사과와 한우보다 올 초에 본격적으로 리모델링하여 문을 연 예산시장이 더 유명해졌다.


예산시장은 요 몇 달 사이 유튜브와 SNS에서 진정한 핫플레이스였다. 상인들이 협심하여 재래시장 살리기에 앞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며칠뒤에는 일부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니, 주변 숙박업소의 숙박비가 2배가 넘느니 하는 실망스러운 보도가 나왔다.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예산시장 가서 찍는 콘텐츠가 유행처럼 번졌다.


마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2000년대 초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없을 수 있지만 40대가 넘어가는 사람들이라면 동네시장에 대한 추억하나는 있을 것이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 가득했던 기름방과 생선가게 바닥에 고인 비린내 나는 물, 설탕을 잔뜩 묻힌 꽈배기, 50원을 내야 이용할 수 있던 화장실 같은 거 말이다.


시장 주변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고 나서는 시장에는 통 갈 일이 없었다. 청소년기에는 동네마다 큰 슈퍼마켓들이 들어서 시장을 대신했다. 성인이 되니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소위 3대 마트들이 시내 곳곳에 포진하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낙후되고 불편한 시장보다는 마트로 몰렸다.


오랜만에 시장에 대한 추억도 되살릴 겸 예산시장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를 공용광장에 깔린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해보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오전 11시가 막 지나 예산시장 앞에 도착했다. 땡볕에 교통 도우미 어르신들이 군데군데 서 계셨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한 걸 보고 도로가에 주차했다. 아주 좁은 공간이었지만 경차라 욱여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오는 동안 차에서 자버렸기에 아내를 선발대로 보냈다. 아내는 나간 지 30분이 넘어 소금빵을 사서 돌아왔다. 배고픔을 빵으로 달래며 다녀온 얘기를 들었다. 아내가 가보니 시장 바닥의 자리는 예약해야 앉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며 빵 사는 동안 자기가 예약한 번호는 이미 지나갔다고 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지금 나가서 다시 예약을 걸기로 했다.


자는 애들을 하나씩 들쳐 매고 시장에 들어갔다. 입구는 옛 시장인데 안에 들어가니 컴컴한 아케이드 속을 황색 조명들이 은은히 밝히고 있었다.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지만 후텁지근한 공기로 인해 아이를 안고 있는 온몸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길을 한번 헤매고 들어가니 공터 자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앉아있었다. 터치형 모니터에서 예약을 다시 하던 아내는 뭐가 잘 안 되는지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안내원에게 갔다. 다행히 아까 예약한 번호가 아직 살아있어서 바로 자리를 안내해 준다고 했다. 안내원을 따라가서 안쪽 자리에 앉았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의자에 앉히니 이젠 먹을 것을 가게마다 가서 사 오는 게 문제였다. 내가 아이들을 보기로 하고 아내가 먹거리 쇼핑을 하러 일어섰다. 아케이드 내부는 찜질방이나 다름없었다. 선풍기는 한대가 있는데 바로 앞에 앉은 사람에게나 시원할까 없는 것과 같았다. 목마르다는 첫째의 말에 짐을 지키라고 하고는 둘째를 안고 차에 가서 물과 음료수를 챙겨 왔다. 아침에 냉장고에서 꺼내온 거라 아직 시원했다.


아내가 빨리 오길 바랐지만 각 가게마다 줄이 길다는 것을 아는 이상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역시나 가만있지 않았다. 온 장터 바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식탁을 치우는 아주머니들, 안내하는 삼촌들, 점심 먹으러 온 손님들 사이에서 종횡무진했다. 나는 또 첫째에게 짐을 지키는 임무를 맡기고 둘째를 쫓아다녔다. 19개월 된 아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대체로 귀엽게 봐주어서 망정이지 안 그래도 덥고 사람들 많은 데서 짜증지수 높은 사람을 만나면 곤란해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기다리기 지루했던 첫째까지 자기도 뛰어다니며 놀겠다고 선언하자 앞이 깜깜했다. 마침 옆 테이블에 강아지를 데리고 온 손님들이 있어서 두 녀석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고대했던 아내가 나타났다. 요즘 인기라는 연돈볼카츠와 잔치국수와 냉국수를 긴긴 기다림을 견뎌내고 사 온 것이었다. 냉국수를 헤집어 놓으며, 먹는지 장난치는지 알 수 없는 둘째와 배고픔에 잘 먹지도 않던 잔치국수를 후루룩 입으로 털어 넣는 첫째를 지켜보았다. 아이들도 나도 땀범벅이었다.


'안 되겠다. 일초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자!'


애들을 먹이면서 건성건성 식사를 하던 아내가 남은 국수를 권했다. 아이들이 물과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동안 남은 국수 국물을 한숨에 들이키고 일어났다. 뒷정리는 정리해 주는 아주머니들께 맡기고 들어올 때처럼 아이들을 하나씩 안았다.


사람을 뚫고 다시 땡볕을 뚫고 차로 돌아왔다. 에어컨을 켰다.


'아! 이제야 저길 벗어났구나'


이미 2000년대부터 한국의 전통시장들은 환자나 다름없었다. 정치인들이 수많은 전국의 시장상인들의 표를 의식해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들, 예를 들면 마트 전용버스 운행금지, 새벽 영업 금지, 격주 휴무제 등은 논란 속에 아직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예산시장에서의 점심은 '왜 우리가 시장을 가지 않는가?'에 다시 한번 정확한 답을 주었다. 같은 돈을 내고 대형마트에 가면 넓은 주자창에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 편리한 키오스크 결제, 차가운 정수기 물 마시기가 가능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시원한 실내에서 입을 거리와 먹거리를 큰 카트에 담아서 정찰제로 계산할 수 있다. 결제할 때 휴대폰 번호만 찍으면 회원임을 인식해 자동으로 할인도 해준다.


예산시장이 아무리 SNS마케팅을 통해 날고 긴다고 해도 여름에 에어컨과 선풍기를 제공해 줄 관의 협력이 없으면 찜통더위를 피할 수 없다. 그 엄청난 공간을 차게 식히기 위해 드는 전기세를 입점 업체가 십시일반 할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동선도 비효율적이다. 식당들 사이에 잡화점이 있는 건 예사이다. 식당가가 따로 모여있고 잡화점은 분류대로 모여있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욕심이다. 게다가 시장 내 건물은 전부 주인이 달라서 보증금도 임대료도 상식선에서 제어되길 바랄 뿐 적정하게 유지될 거라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9월 초부터 예산시장은 맥주축제를 한다고 또 떠들썩하다. 누군가는 온라인에 뜬 홍보영상을 보고 갈 계획을 잡고 있을 것이다. 통돼지 바비큐, 예산 특산품을 이용한 맥주 모두 좋다. 이를 통해 예산시는 다시 전국의 주목을 받게 되고 관광객도 많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부디 이번 축제 방문객들에게는 예산시장이 마트보다 더 편하고 즐거운 공간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전통시장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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