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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지 못한 새벽 3시

새벽 3시의 여름 운동장

by CJbenitora

잠이 깼다. 시간은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어제 아이들에게 밤 10시까지만 놀다가 자라고 말해두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많이 잡아도 4시간 정도 잔 것이었다. 다시 눈을 붙이려고 해도 한번 달아난 잠은 쉽게 다시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켰다.


유튜브로 구독해 놓은 세계 뉴스를 전해주는 프로그램을 한편 시청하고 이어서 추천해 주는 영상을 보다가 '달리기를 재밌게 하는 법'이라는 제목을 보았다. 2가지를 소개하는데 하나는 점차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빌드업 러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전력질주였다. 영상을 보면서 누운 채 스트레칭을 했다. '어제 새벽 조깅을 안 했으니 오늘은 조금 더 달려야 할 텐데 그러려면 지금 나갈까?'

몸은 이미 다 깨어 있었고 달릴 의욕도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워치를 찬 후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 대지는 식어있었고 칠흑 같을 거라 예상한 바깥은 가로등 불빛으로 환했다. 평소보다 가벼운 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속도는 일부러 내지 않았다.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면서 몸에 열을 내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호등이 점멸로 바뀌어 있는 도로도 비어있었다. 택시나 승용차가 어쩌다 한 대씩 지나가며 고요함을 깨뜨렸다. 1km를 넘게 달려도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상가 건물 사이사이 비어있는 공실의 임대라고 쓰인 스티커가 을씨년스러웠다.


운동장을 향해 있는 긴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앞에 반팔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청년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한밤중에 거리를 걷고 있을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그도 나를 보며 똑같이 생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새벽 산책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떨어져서 옆을 통과하였다. 조금 더 지나서 운동장이 가까워지자 아파트 쪽 방면에서 부부로 보이는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중년이 커플이 걸어 나왔다. '저분들은 새벽잠이 없어서 나온 건가?' 잠에서 깨고 나서 멀뚱 거리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 나왔을 거라 추측하며 계속 달렸다.


'평소 나오는 시간보다 2시간이 빠른 지금의 운동장은 어떤 모습일까?' 집 앞에서 출발할 때부터 궁금해하던 것의 답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착한 운동장은 트랙을 환하게 비추는 하이라이트는 꺼져있었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평소보다 많이 어둡긴 해도 트랙을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트랙을 한 바퀴 달리면서 사람 수를 세어보았더니 5명이었다. 아저씨 3명, 아주머니 2명으로 전부 나보다 한 세대정도 윗세대 분들이었다.


보통 트랙을 5바퀴를 돌고 운동기구에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오늘은 10km를 뛰기로 했으므로 운동장까지 오고 가고 거리를 뺀다 해도 11바퀴를 뛰어야 했다. 힘들면 속도를 줄이고 다시 에너지가 쌓이면 속도를 늘이면서 돌았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서 목표 거리를 다 뛰었을 즈음에는 트랙 안에 10명이 걷고 뛰고 있었다. 마지막 바퀴에 속도를 조금 내었더니 심장이 쾅쾅거렸지만 통증은 없었다. 다만 횡격막이 올라온 건지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어제저녁에 먹은 것들이 아직 전부 소화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트랙을 다 돌고 운동기구를 이용해 평소대로 몸을 풀었다. 그사이 새벽 4시가 되었고 운동장 안쪽 가로등이 꺼졌다. 운동장 입구 쪽 가로등은 꺼지지 않아 운동장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한참 운동장 안쪽에서 걷거나 뛰는 사람들은 아까보다 배는 어두워진 환경에서 운동을 해야 했다. 해가 아직 보이지 않은 시간에 가로등을 끄도록 세팅을 해뒀다는 것은 당연히 이 시간에는 운동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운동기구 쪽은 어두워도 문제가 없었다. 허리 돌리기, 종아리마사지, 거꾸리, 구름 달리기, 옆구리운동, 허리 들어 올리기, 턱걸이, 스쾃, 런지까지 스트레칭 및 보강운동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트랙을 한 바퀴 천천히 돈 뒤에 왔던 길로 다시 돌아 나왔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4시 언저리에도 운동장에는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운동에 빠져있었다. 어둠을 헤집고 집으로 돌아오니 4시 30분이 되었다. 아주 옅은 태양빛이 동쪽 산능성이를 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새벽이 오고 있었다. 집 앞에서 평소와 같이 마무리로 숨쉬기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확연히 밝아져 있었다.

'원래라면 이제 일어나서 조깅을 나갈 텐데...'

달리기를 다 끝내고 돌아왔다는 후련함이 밀려왔다.


오늘의 밤 달리기는 나와 상관없던 시간과 친해지는 경험이었다. 한밤중에도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더 일찍 뛰었기에 피곤하여 다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2시간쯤 자다가 일어나면 오늘의 운동은 꿈처럼 느껴지겠지만 조용히 어둠 속에서 뛰었던 시간은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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