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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동네잔치에 함께 어울리기

제18회 청도반시마라톤

by CJbenitora

우리나라는 각 지역마다 대표하는 축제가 있고 특산물도 많다. 요즘은 가는 곳마다 비슷한 구조물과 비슷한 콘셉트의 먹거리 마당들이 그런 특색을 뻔함으로 만들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고 있는 몇몇 시도가 있다. 그중 청도는 소싸움, 새마을 운동, 그리고 씨 없는 감인 반시가 유명한 동네이다.


얼마 전까지 울산과 청도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국도로 빙빙 돌아가야 해서 마음의 거리가 멀었다. 2020년 연말에 함양울산 간 고속도로 1구간이 밀양까지 뚫리면서 1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어 경주만큼 가까운 곳이 되었다. 대구의 배후지로만 여겨졌던 곳이었는데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이웃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 가을마다 열리는 반시마라톤이 18회째를 맞이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10월 말에 진행하는 마라톤이라 시원한 날씨가 예상되어 첫째와 참가하기로 하였다. 우리 첫째는 이미 지난봄에 외할아버지와 울산 태화강에서 5km 대회, 아빠와 울산대공원에서 5km 대회를 성공적으로 달려본 적이 있었다. 이번 청도반시마라톤은 가장 짧은 코스가 5.9km라서 1km 정도를 더 뛴다고 하니 용기를 낸 것이었다.


별도의 연습은 없이 평일날마다 1시간씩 줄넘기 학원에서 운동하는 기본 체력으로 마라톤을 뛰기로 했다. 아빠와 시간 맞춰서 5km 정도는 시험 삼아 달려보려고 했는데 바쁜 시기라서 둘의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 연습 한번 제대로 못한 것이었지만 대회에서 걷지 않을 자신은 있는 것 같았다.


지난주에 하프마라톤을 뛴 몸이 목요일쯤 완전히 회복된 아빠와 연습 한번 안 한 아이가 함께 새벽에 청도로 향하였다. 출발시간 2시간 전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차량이 몰려들고 있었지만 차 댈 곳은 곳곳에 있었다.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청도공설운동장으로 올라가니 마을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아이는 트랙을 돌며 몸을 푸는 사람들에 섞여 한 바퀴를 돌고 오고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이곳저곳 구경을 하였다. 각 마을별로 쳐 놓은 천막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어떤 곳은 벌써 막걸리 술상이 차려지고 사람들이 돼지고기에 김치를 싸 먹으며 하하 호호하고 있었다. 아이와 운동장 바깥쪽을 살짝 달려보고 운동장 안쪽 잔디구장으로 들어갔다.


기온은 생각보다 낮아서 입고 간 긴팔 옷과 바지는 벗지 않고 있다가 모두 모이라는 MC의 말에 모두 벗고 안에 입고 온 반팔, 반바지 복장을 갖췄다. 옷과 가방 휴대폰까지 전부 짐을 맡기고 나서 트랙 밖에 서서 출발선에 늘어선 하프 참가자들을 지켜보았다. 내빈 소개를 포함한 아나운서 멘트가 이어지다가 9시 정시에 딱 맞춰서 내빈들의 버튼 터치를 신호로 하여 하프주자들이 출발하였다. 2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가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는 10km 주자들이 다시 섰다. 그들도 9시 10분이 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는데 하프보다 참가자 수가 훨씬 많아 전부 사라지는데 4분 정도 걸렸다.


이제 우리 5.9km 주자들이 출발선에 섰다. MC의 멘트에 따라 하늘을 향해 함성을 내지르고 박수도 쳤다. 9시 20분을 조금 넘겨 출발하였다. 운동장 출구를 빠져나가서 한번 꺾으면서 내리막을 달렸다. 첫째는 사람들 사이를 신나서 뛰어다녔다.

"지금은 좀 늦다 싶어도 사람들 따라가자. 속도를 일정하게 해두지 않으면 금방 지쳐."

아이는 금방 아빠말을 알아듣고 속도를 낮췄고 같은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5.9km 참가자들은 느리게 달렸다. 기록칩이 제공되지 않는 대회라서 그런지 처음에 치고 나간 앞에 몇 줄 빼고는 일정하게 무리를 이루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처음에는 낄낄 대며 가다가 2km가 넘어가니까 말이 없어졌다. 벌써 걷다 뛰다가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첫째는 앞서가던 형아 누나들이 결국 우리보다 쳐지니까 재미있어했다.


절반쯤 지나자 읍내구간이 끝나고 강을 따라 이어진 시골길이 나왔다. 지금은 대회로 인해 사람들이 많지만 평소에는 한적할 길을 달리며 시골의 정취를 마음껏 느꼈다. 그에 반해 첫째는 꽤 힘든지 이렇게 말을 했다.

"아빠, 지옥이야!"

급수대가 보였다. "그럼, 물 좀 마시고 갈래?"

"아니, 괜찮아!"

아이는 목이 마른 것이 아니라 단지 힘이 들 뿐이었다. 나에게는 평소 조깅속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아이에게는 무리한 속도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닫고 속도를 좀 더 낮추었다.


4km가 넘어가고 시골집들 사이를 뛰었다. 각 집마다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고 먹음직스럽게 감들이 달려있었다. 힐링이 별게 아니라 이것이 힐링이었다. 내 손을 잡고서 걷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한 걸음씩 뛰고 있는 첫째가 이런 느낌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꾸준히 같은 속도로 달리며 앞선 주자들을 하나씩 제치고 있었기 때문에 승부욕 있는 첫째가 걸을 리는 없었다.


5.5km가 넘어가는데 아직 결승점은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 트랙 한 바퀴만 더 돌면 끝나야 할 달리기인데 끝이 나는 느낌이 없자 아이는 당황하였다. 5.8km쯤 되니 길건너에 처음 출발한 운동장이 보였다. 최초 우리가 세운 목표가 5.9km를 40분 안에 들어가기였는데 워치로 5.9km가 될 때인 운동장 가는 오르막에서 시간을 보니까 39분 20초였다.

"아빠, 5.9km 왔는데 왜 안 끝나?"

"거리가 잘 못 되었나 봐. 일단 우리가 약속한 5.9km는 지났는데 이제 걸을래?"

"아니, 끝까지 뛰어 볼래."


그렇게 200m 정도 더 뛰어가서 우리는 운동장으로 진입하였다.

"자, 이제는 전속력으로 결승점까지 뛰어봐~"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 결승점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총길이 약 6.3km의 달리기가 끝났다. 기록칩이 없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내 시계로 확인하였을 때 42분 10초 정도로 통과하였다.


물한병과 간식을 받고 완주메달은 아이들만 준다고 해서 하나만 받았다. 아이에게 잔디밭에 앉아서 간식 먹고 있으라고 하고 나눠주는 어묵탕과 두부를 받아왔다. 초코파이를 먹고 있던 아이가 이제 막 자리에 앉은 내가 한마디 하였다.

"아빠, 이제는 천국이야!"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 느끼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 힘든 시간을 보낸 후의 달콤한 휴식의 맛을 알아버린 첫째였다.


하프마라톤 선수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시점이 되자 10km를 뛰고 온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고 어묵탕 줄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10km와 하프 참가자들은 메달에 청도반시까지 한 상자씩 받아 들고 레이스 중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신나게 나누고 있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환복을 하고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으로 오니 우리처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엉켜 안내요원이 여럿 있는데도 나가는데 30분이 걸렸다.


다음 대회를 오게 된다면 10km를 참가하여 완주메달과 공식기록도 남기고 반시도 받아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차도 꼭 입구에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1시간을 운전하여 울산으로 복귀하면서 옆자리에서 지친 모습으로 잠이 든 첫째가 많이 기특했다. 올해 초 창녕여행 때 내년에 창녕마라톤 10km를 같이 뛰기로 약속을 했는데 조금만 연습하면 10km도 문제없을 첫째임을 확인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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