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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01. 2021

너는 남들보다 잘나지 않았다

노르딕의 평등주의와 영화 '소울'에 대한 단상

*영화 <소울>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영화라면 아주 재미없는 영화일 것이다. 주제도 불명확하고, 무의미한 사건들의 연속에다, 우연찮은 기회와 우스꽝스러운 인연들이 얽히고설킨, 어쩌다 보니 시작하여 어쩌다 보니 끝나는 이야기. 그 와중에 소중한 것들을 찾고, 가슴 아파하고, 은은하거나 치열한 감정들을 삭이고 또 꺼내놓으며 하릴없이 점점 녹아가는 촛농 같은 것. 개중에 상념이 많은 타입의 나 같은 인간들은 아마도 더욱이, 그 무작위의 가능성과 팽배한 불평등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며 느리게 한숨을 내쉬곤 하는 것이다.


노르딕 사회를 아우르는 가치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이 “다른 사람보다 너 자신이 특별하거나 잘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라”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들보다 네가 가진 게 많다고 혹은 아름답다고 해서 잘난척하지 말라는 일차원적인 의미를 넘어, 아무리 소유하고 사치할 수 있다 할지라도, 타고난 것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인생은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를 도출할 수 있기도 하다. 북유럽 사회의 행동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Janteloven (영어: The Law of Jante; 한국어: 얀테의 법칙)에 대한 설명을 아래 곁들인다.


Janteloven. 사진 출처는 Wikepedia, 번역은 본인.

이 10가지의 법칙을 번역한다면 이 정도쯤이 아닐까 싶다:

1. 네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지 마라.

2. 네가 남들만큼 대단하다고 생각지 마라.

3. 네가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지 마라.

4. 네가 남들보다 낫다고 상상하지 마라.

5. 네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너 스스로가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여기지 마라.

7. 네가 어떤 것이든 잘한다고 생각지 마라.

8. 남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구도 너를 위하리라 (혹은 걱정하리라) 생각지 마라.

10. 네가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마라.





결국 "너는 남들보다 잘나지 않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얀테의 법칙은 겸손과 도덕을 넘어 거기서 거기인 그저 그런 인생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듯하기도 하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Joe가 다니는 단골 미용실의 주인장 Dez는 어릴 때 수의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미용학교의 등록금이 수의대보다 훨씬 저렴해서 전문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주인공은 한 평생 열렬히 재즈음악을 사랑해왔는데, 피아노로 재즈를 연주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굳게 믿는다. 소울 22번의 아이 같은 질문 덕분에 미용사의 인생에 대해 처음 듣는 그는 당혹감을 담은 눈으로 자문하는 듯하다. 수의사가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어쩌다 미용사가 되어 십수 년을 그 자리에서 살아온 거야?


Dez와 주인공 Joe. 사진 출처: screenrant.com/soul-jamie-foxx-barbershop-scene-important-black-culture


영화 ‘소울’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고, 각자에게 부여된 가능성과 목적을 최대한으로 이룰 수 있다는 가정에 물음표를 던진다. 사후와 사전 세계를 오가며 주인공이 마주한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생전 꿈을 좇으며 들었던 거절의 "No"들로 가득하다. 이제 마침내 본인이 그렇게도 확신했던 그 ‘인생의 목적’을 이룰 기회를 앞두고 끝나버린 인생이 너무나 아쉽게 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인생은 이렇게 보잘것없지 않았는데? 코앞까지 왔던 그 꿈의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은 완성인데 말이야. 이렇게 종친 인생은 실패작이잖아.


그런데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특별하거나 눈부신 순간이 아니다. 모든 인생은 각자 타당하고 당연한 몫의 고뇌와 난관으로 채워져 있다. 요즘 주옥같은 박명수의 명언들이 뒤늦게 뼈저리게 와 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크 맨슨이 그의 책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uck> (한국어판 제목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지만 느낌을 살린다면 <ㅈ까라 마인드의 절묘한 기술> 정도로 부르고 싶다)을 통해 누누이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것이다. 누구나 아직 현실화되지 못했을 뿐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가정은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쓸데없는 실패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요즘 꽂혀있는 박명수 어록 짤. 언젠가 별그램에서 보았고 구글로 찾은 사진이다.


현시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심리적 불안감은 사회적으로 기인한 것도 맞다. 계속 터질 것이라는 버블로 가득 찬 주거 시장, 이전 세대에 비해 더뎌진 경제 성장 (혹은 더 이상 경제 성장에 대해 기대를 걸 수 없다는 낙담), 낮은 고용률, 정치적 양극화, 몇 초면 손 끝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선정적이고 바이럴(viral)한 이야기들 (매일매일 달라지는 가장 놀랄만한 사건, 가장 충격적인 죽음, 가장 소름 돋는 썰, 가장 귀여운 고양이…) 등의 구조적 요소들이 일상의 질감 자체를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그 날, 그 주, 그 해의 하이라이트를 쉽게 전시하고 소비할 수 있는 세상에서 본인의 일상과 모습이 시시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문제들은 기나긴 인류 역사상 이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들이 언젠가 한 번쯤은 고뇌했던 문제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 각자는 큰 그림을 보았을 때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인생은 불확실함과 불공정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지금 한 순간의 결정이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따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챙기기 위해 덕질을 하고, 레트리버와 진저 고양이가 공생하는 영상을 보고 흐뭇해하며,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다. 인생에서 그 이상의 궁극적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아니 그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듯 하지만 현실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다.


언젠가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한다. 먼 훗날 미래에 현재를 살면서 마주하는 선택과 결과들을 점으로 좇으면, 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듯이 인생의 굴곡과 궤적이 아름답게 그려질 것이라는 낙관적 관망 말이다. 되려 나는 인생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제멋대로의 리듬을 가지고 있고, 굳이 관련 없는 일들이 모여 더욱 무의미한 결과를 낳으며, 권선징악이나 인과관계의 존재 자체가 불투명한 그런 이야기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한 인생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면 관객들은 '아주 뒤죽박죽이면서 감정의 농도가 제멋대로인 이상한 영화'라는 불평을 내놓게 마련일 것이다. 훗날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생각은 군계일학과 같은 인생을 꿈꾸는 자들에게 선사하는 달콤한 영감 한 스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수많은 닭들로 태어나 닭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 닭들이 학을 만든다. 닭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 자체로 무의미하지 않다는 긍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학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공존할 수 있는 가치이다. 그렇게 매일을 산다. 그저 그런 삶을 감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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