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사람들 종특 2탄: 스키와 오두막집, 부활절에 대하여.
노르웨이어 문화와 정서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동사가 있다. 바로 "å kose seg". 한 마디로 번역하기 까다로운데, "스스로 아늑함을 느끼다" 혹은 "아늑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동사의 명사는 kos (아늑함), 그리고 형용사 형태가 "koselig" 이다. 발음을 정직하게 하면 [코-셀리], 현지 사람들이 말하듯이 하면 [쿠-셸리] 혹은 [쿠-슐리] 정도가 되겠다.
영어의 "cozy"와 비슷하긴 하지만 koselig가 함축하는 의미가 훨씬 깊고 넓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귀여운 고양이의 볼과 턱을 긁어주면 들을 수 있는 골골송의 포근함,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며 느끼는 편안함과 즐거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시한 일상을 보내는 아늑함, 혼자서 햇빛을 받으며 즐기는 나른한 오후의 느낌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다. Koselig가 최상의 행복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그 정서 자체가 노르웨이 문화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런 아늑함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늑함에 대한 애정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가장 처음 배운 단어 중 하나이자 가장 그 쓰임이 넓은 단어가 바로 koselig이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무얼 했던지 상관 없이 대체로 긍정적인 거라면 "oh, så koselig" (아 진짜 아늑하고 좋았겠다) 라고 대답하면 "ja, det var veldig koselig" (응, 엄청 아늑하고 좋았어) 라는 류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해가 나는 휴일에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기르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그런 조용한 아늑함도 koselig, 추운 겨울에 따뜻한 양말 신고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그 안에서 까먹는 귤도 koselig, 주말에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뒹굴 거려도 koselig,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트리 아래에 놓인 선물을 풀어보는 따뜻함과 즐거움도 "oh, så koselig" 한 시간인 것이다. 친구와 작은 카페에 가서 커피 두 잔과 디저트를 신나게 주문하고 나서 그 메뉴가 나올 때, 그걸 주는 직원이 유달리 친절하다면 우리를 보고, "Kos dere masse!" (두 분 아늑하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카페에서 손님들을 응대할 때 그랬듯이!
그런 아늑함과 포근함은 정적이고 잔잔한 듯 하다. 그러나 노르웨이 사람들은 하루종일 잔잔함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바쁘고 활동적인 생활 가운데 찾는 편안함을 아주 중요시한다. 어떻게 보면 소확행과도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떨 때 노르웨이 사람들이 그 아늑함을 찾는지 살펴보자.
"노르웨이인들은 스키를 신은 채로 태어난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나 스키를 좋아하고 잘 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반드시 배우는 운동 중 하나로 가족끼리 자주, 겨울만 되면 주구장창, 어떤 사람들은 여름에도 도로에서 바퀴 달린 스키를 탄다. 여기서 말하는 스키는 경사로가 아닌 평지에서, 그리고 야외에서 타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를 일컫는다. 이 크로스 컨트리 스키는 과연 노르웨이 사람들의 정체성의 일부이다.
경사로에서 타는 슬라롬이나 알파인 스키보다 스키 자체가 얇고, 옆에서 보면 살짝 아치형으로 발이 있는 가운데가 들려있다. 스키 신발의 앞코가 스키에 연결되어 있지만 뒤꿈치는 떨어진다. 한 쪽 발에 힘을 주어 스키 가운데를 누르면 미끄러지 않는데, 그런 와중에 다른 발을 미끄러지듯 앞으로 뻗어 나아간다. 그래서 손에 쥐고 있는 스키 폴이 큰 지지대 역할을 하여 팔 운동도 많이 된다. 가볍게 뛰듯이 타고, 약간의 오르막을 만나면 V자로 스키를 만들어 찍으면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ㅅ(시옷)자를 만들어 속도를 조절하면서 내려온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스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대단하다. 한국에서 올림픽 효자종목 선수들이 유명하듯, 노르웨이에서는 스키 선수들이 그렇다. 웬만한 스포츠 의류 및 브랜드 광고를 모두 하고, 그 중 전설적이었던 사람들은 그들 이름을 내건 스포츠 브랜드가 있다. 우리 시아버님은 겨울에 하루종일 그거 보는 게 삶의 낙이실 정도...
스키는 개인 운동이기도 하지만 보통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그룹 활동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함께 운동을 하는 그 자체로도 가히 koselig 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먹는 게 보다 더 koselig하다. 특히 우리 시댁은 핫초코를 미리 만들어 보온병에 가지고 가는데, 추운 와중에 깔개를 깔고 둘러 앉아 그거 마시면 정말 맛있다.
3-4월 경에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으로 스키 타러 가면 보통 귤 혹은 오렌지, 그리고 초콜렛인 Kvikk Lunsj를 함께 먹는다. 이 초콜렛은 영어로 Quick lunch, 그러니까 "빨리 먹는 점심"이라는 브랜드인데, 등산이나 스키를 탈 때는 무조건 가지고 가는 초콜렛이다. 이거 킷캣이랑 비슷하게 과자가 들어 있는 초콜렛인데, 노르웨이 사람들 화나게 하려면 "Kvikk lunsj보다 킷캣이 훨씬 나은 거 같아" 라고 하면 된다. 그만큼 널리 사랑받는 간식.
휴가철이나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주로 각자의 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두막집, Hytte 에 간다. 발음은 [희떼] 와 [희따]의 중간 정도이다. 그런 별장들은 보통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산이나 숲 속에 있고, 젊은 사람들도 아이를 가질 때 쯤이 되면 으레 근교에 hytte를 장만하고는 한다.
보통 '별장'하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저택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전통적으로 노르웨이식 오두막집에는 전기나 수도 시설이 없다. 그래서 마시고 씻을 물을 가져가서 그 때 그 때 끓여서 써야 하고, 여름이라도 꽤나 춥기 때문에 도착하면 무조건 장작불부터 피운다. 날씨가 추울 때라면 지난 번에 적었듯이 울로 몇 겹 제대로 껴입을 준비를 단단히 해서 가야 한다.
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오두막집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Hytte에서 하는 경험 전체가 koselig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와 문명에서 벗어나, 직접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산업 혁명 이전의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갖고 가는 것. 물론 요즘에는 hytte들이 많이 현대화되어 전기와 수도시설은 물론, 심지어 난방 시설까지 갖추어진 집들이 많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아주 오래 된 오두막집을 그렇게 개조 및 보수하여 입맛에 맞게 쓰기도 한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찐노르웨이인들에 따르면 그런 현대화 된 오두막집은 진정한 hytte가 아니다. 어차피 다른 집에 가서 뜨신 물에 샤워하고 앉아서 TV를 볼 것이면 굳이 뭐하러 hytte에 가냐는 것. 그저 hytte라면 고요한 아침에 새소리와 햇빛 때문에 눈을 떠 물을 주전자에 끓이는 맛이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항상 오래걸리는 장작불 피우기도 제 손으로 하고, 가끔은 주변에서 마른 나무를 주워오고, 물이 모자라면 근처 흐르는 시냇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그게 바로 진정한 hytte의 경험. 날씨가 따뜻하면 근처 강에서 종종 수영을 하러 가기도 한다.
Hytte는 그래서 일년 내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면서 사용료를 받기도 한다. 가족끼리가 아니라 친구들끼리라도 삼삼오오 모여 hytte로 여행을 떠나 오붓하게 놀다 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hyttetur라고 한다. 여러 명이서 갈 때는 아무래도 보다 현대화 된 곳으로 가지만, 연인들 같은 경우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는 오래된 hytte를 일부러 찾아 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쉬는 때만 되면 hytte로 놀러간다는 데서 눈치챌 수 있겠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명절이나 휴가에 굉장히 진심이다. 그것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한다"는 모토가 잘 반영된 여러가지 시스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보통 누구나 여름에 3주 간 유급 휴가를 신청할 수 있고, 그렇게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 보다 장려하기 위해서, 매 달 내는 세금을 나라에서 알아서 조금씩 떼어서 모았다가 휴가 비용 (feriepenger)으로 6월에 다시 돌려 준다.
명절과 휴가에 대해 아주 진심인 부분이 잘 드러나는 예시가 몇가지 있는데, 오늘은 부활절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국교가 루터복음교이기 때문에 매년 3-4월에 찾아오는 부활절 (Påske, [포-스께]) 기간은 국경일이다. 올해는 부활절이 4월 3일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1일부터 5일까지 쉬었다.
3-4월은 긴 겨울이 끝나고 햇빛이 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활절을 대표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다. 앞서 말했듯 오렌지와 Kvikk Lunsj를 가지고 스키를 타러 가는 것도 여러 전통 중 하나이고, 노란색이 나는 판타와 같은 탄산 음료인 Solo도 많이 마신다. 뿐만 아니라 초콜렛이나 사탕같은 단 것들을 많이 먹고, 또 아몬드로 만들어진 마지팬 (영어로 marzipan; 노르웨이어로 marsipan)이 들어있는 초콜렛을 많이 먹는다.
빼놓을 수 없는 전통 중 하나가 바로 달걀과 토끼. 부활절 토끼(Påskeharen, [포-스께하렌])는 달걀을 숨기는 게 취미이다. 우리 시댁같은 경우, 부활절에 시아버님이 아직도 부활절 토끼 분장을 하고 재미있는 목소리로 부활절 달걀을 숨겨놨으니 우리더러 찾으라고 말해주신다. 그럼 다들 신나서 여기저기 찾아보는 것. 이렇게 물건 찾기 게임, 스캐빈저 헌트(scavenger hunt)를 하는 것이 별난 전통으로,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힌트를 따라가면 부활절 달걀이 나온다.
이것을 påskeeggjakt [포-스께에그약트], 즉, 부활절 달걀 찾기 놀이라고 부른다. 계란이라고 해서 정말 계란일 필요는 없고, 보통 커다란 계란 모양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용기 안에 여러가지 초콜릿과 사탕, 젤리 등을 넣어 준비한다. 이렇게 소소한 재미를 공유하는 것 또한 koselig의 정서를 반영하는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포영화나 범죄/추리영화,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읽는 것도 중요한 전통이다. 이런 현상을 Påskekrim [포-스께크림]이라고 말하는데, TV에서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상영하고 서점에서는 미스테리한 범죄 소설들을 påske 특집으로 세일해서 판다. 한국에서 여름에 납량특집을 하는 것과 비슷한데, 왜 여기서는 봄에 그런 걸 하는지 잘은 알 수 없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23년도에 출간된 한 추리소설이 워낙 베스트 셀러였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인데, 정작 그 소설을 쓴 당사자들은 이미 부활절과 추리소설에 대한 연관성이 존재했고 그래서 책이 잘 팔린 거라고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부활절 말고도 사람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절과 전통이 많이 있다. 성탄절은 당연하거니와, 다음주에 다가오는 5월 17일 헌법제정일이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져 다음에 쓰기로 했다. 5월 17일이 워낙 큰 명절이라서 가족들과 함께 모일 예정이다. 여기는 지금 10인 이상 집합 금지라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진은 며칠 전 시어머니와의 문자 내용이다. 이번 주말에 간다고, 함께 시간 보내기가 기대된다고 말씀드리니 역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koselig하고 좋겠구나. 너희들 오는 것 따뜻하게 환영한단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당연하게 여겼던 행복과 koselig의 느낌이 낯설고 유난히 기대가 된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 다음주에 헌법제정일을 함께 보낸 후 그 특별한 kos에 대해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