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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미로 Mar 18. 2021

지옥만 아니면 돼

2021.03.14  [여운 작가]

‘저승’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신과 함께’이다.


‘신과 함께’를 보면서

사후세계를 간접 체험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저런 과정을 거치겠지.?


물론 다 믿지는 않지만

저렇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때는 흥미진진하게

봤었는데 막상 내가

심판을 받는다고 상상하니

오싹하고 두려워진다.


보면서 놀랐던 것은

지옥이 쓸데없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살인이나 범죄 등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만 지옥에

가는 줄 알았더니,

 

게으름으로

죄를 판가름하는

나태 지옥이 있다니.


내가 만약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 이유는

‘나태함‘ 때문일 것이다.


나태 지옥에 간 사람들은

벌로 계속 돌아가는

거대한 봉을 피해

무한하게 달려야 한다.


달리지 않으면

봉에 깔려서 죽는다.

너무 끔찍한 벌이다.



3년 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태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요즘, 다시

나태 지옥에 갈 가능성이

높아진 거 같다.


지옥에 가서 뛰느니

여기서 열심히

뛰는 게 낫겠다.


또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당장은 나태 지옥에

들어갈 확률이 높지만,

아직 살아갈 날은 많으니까

천국에 갈 기대를 걸어본다.

 


천국은 누구나 원하면서

가고 싶은 곳이다.


그 누구도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천국에 가게

된다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을 돕는 데 앞장서서

봉사를 많이 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많이 해서

천국에 갔을 것이다.


천국에 가게 되면

보고 싶었던 우리 가족들을

볼 수 있고 내 친구들도

마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지옥과는 다르게

평온한 느낌이 든다.


아마 나에게 재판이

내려진다면 '환생'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너무 나쁘게도, 착하게도

살지 않은 딱 중간.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 같다.


환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로는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100년 동안 나로

살았으면 그거로 됐다.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을 못할 것 같다.


원하는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고르자면,

첫 번째로 엄마의 엄마로

환생하고 싶다.


엄마의 딸로 살아봤으니

이번엔 내가 엄마의 엄마로

살아보고 싶다.

단, 엄마의 허락도 있어야겠다.


나는 천국이든 환생이든

아무렴 좋다.

지옥만 아니면.


천국에 가기 위한

나의 목표는 ‘착하게 살자.’

이 결과는 저승에

가서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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