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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Feb 01. 2024

잊지는 않을 이별들에게

최근에는 사회의 빠른 변화를 고려해서 20년을 한 세대라고 보기도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세대를 한 세대라고 친다면 한 세대는 대략 30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90세라 할 때 첫 30년을 배움의 때, 두 번째 삼십 년을 섬김의 때, 세 번째 삼십 년을 나눔의 때로 사는 것을 권유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에 남겨두고 삶의 주기에 따라 마음을 세우는 데 제법 큰 기준을 삼아왔다.


첫 30년 배움의 때를 보내고 비로소 사회인이 되어 두 번째 30년을 보냈다. 섬김의 때라는 거창한 표현은 부담스러우니 직업인의 때라고 해야겠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해마다 만나고 해마다 이별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매듭 하나씩이 생겼다. 아이와 아이의 부모님들이 함께 자리 잡은 매듭이었다. 해마다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이지만 해가 쌓일수록 몇 가지의 형태로 각각의 매듭들이 분류되어 갔다. 오른쪽으로 묶인 매듭, 왼쪽으로 묶인 매듭, 두 가닥의 매듭, 세 가닥의 매듭, 흘러내리는 매듭, 거친 매듭....

가끔 세상을 달리하고 일찍 별이 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사연들이 들어오면 눈물 빛깔이 섞이기도 했다.


조금 예민하게 아이들의 삶의 무게를 바라보며 때론 거들어주며 지내다가 드디어 30년을 채우는 해가 되었다. 세 번째의 30년을 맞이하기 위해서 두 번째의 삼십 년을 접었다. 아니, 접은 듯만 했다.

명예퇴직을 하고 나서 시간강사와 기간제교사로 여러 차례, 여러 날, 여러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짧은 기간 동안 심한 부적응행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조언도 하며 밀도 있는 행동지원을 하나 둘 수행할 때마다 지난 삼십 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확인 도장을 받는 듯한 작은 기쁨이 있었다.


퇴직을 하던 해에 세 번째 삼십 년의 때를 지내고 계시던 친정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셨고, 그다음 해에 시어머니께서 별이 되셨고,  친정아버지가 기력을 잃어가시는 중에도 최대한의 힘을 챙겨 하루하루를 지내고 계시는 것을 보고 있다.


분주했던 시기에 우리 가족의 든든한 동반이 되어주었던 강아지 두 마리가 차례차례 곁을 떠나갔고, 엄마와 아빠의 무릎을 떠난 아들과 딸이 가끔 서툴 지만 대부분 기특한 도움닫기로 두 번째 삼십 년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는 중에 있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일과 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하는 퇴직 후의 삼 년을 보내면서 이젠 지나온 시간들을 한 발 떨어져 들여다보며 다듬어 갈 수도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머릿속에 천천히 미당 서정주의 시가 떠올랐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내가 가끔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한결같이 계속해서 흘러왔던 어느 시간과 어느 지점, 내가 떠나 온 어떤 시기의 일들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별이지만 이별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꾸만 자꾸만 나는 나의 모든 때와의 조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은 아주 영 이별한 것들일 테니 미련이 없다. 잃었지만 잊지는 않을  아주 영 이별하지 못할 가는 세월과 오는 세월의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기로 한다.


너도 나도 다 이별일 테지만 망각이 아닌 이별들,  잃었지만 잊지 않은 친구와 가족과 나의 학생들과 영 이별한 것은 아닌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과  같이 되어 한 두 철 전 이야기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잃었고, 잃게 되겠지만 영 이별이 아닐 모든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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