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 지 Feb 08. 2024

엄마가, 엄마에게

지난가을부터 드디어 자유롭게 요양병원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또다시 코로나 확진이 되는 바람에 바깥 외출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가을이 가고 그저  겨울이 되었다. 몇 달 동안 가끔 엄마를 찾아가서 병에서 엄마 얼굴을 보고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는 게 전부인 시간을 보냈. 좋아하시던 간식 몇 가지를 사다 드리면 행복해하셨는데 먹는 것을 조절 못하셔서 자꾸만 식을 드시는 바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간식을 중지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라서 귤 몇 개를 까서 나누어 먹는 게 전부인  면회시간이었다.


"아이구! 어떻게 알고 여길 왔어?"


 거의 같은 스타일로 손질된 흰머리에 야윈 얼굴색으로 병상에 누워계신 어르신들이 다 비슷해 보여서 병실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엄마를 찾아 앞에 서서 인사하는 나를 보고 누워있던 엄마가 일어나며 말씀하셨다.


"엄마, 힘드신데 잘 지내주고 계시네!  정말 고마워요. 내가 누구지? 내 이름 기억나?"


내 물음에 엄마는 그냥 엄마 말씀만 하셨다.

"아유~ 참 예뻐졌네. 얼굴이 아주 좋아졌어!"


"엄마 닮았는데 그럼!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 지루하고 힘드시지? 식사는 잘하셔?"

"여기서 밥 다 나와. 다리가 아파서  걷지도 못해 난..."

"약도 잘 챙겨드시는 거지?  잘 드시고 운동을 하셔야 하는데 다리가 자꾸 아파서 큰일이네! 근데 엄마, 내가 누구냐니까?"

"나는 나를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이 먼데까지 나를 보러 오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정말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이번에도 대답을 하는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대답 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슬쩍 웃음이 나왔.


"아휴! 엄마! 자꾸 말 돌리지 말고, 응? 내가 누구냐구요~~~ 엄마, 엄마가 내가 누군지 얼른 기억하시면 좋겠다. 응? 엄마~~~"

"나는.... 우리 엄마가 나를 산에 버리고 가 버려서 엄마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 엄마는 왜 어린 나를 버리고 가버렸나 몰라..."


역시나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하고 엄마는 내 눈을 피하면서 잘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스스로 종료하신 뒤 최근 엄마의 기억에 남아있는 엄마의 엄마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셨다. 


병원 입원 초기에는 우리 삼 남매에 대해 원망과 애정과 축복을 돌아가며 말씀하셨었다. 일 년 정도가 지난 다음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축복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두세 달 간격으로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그다음 일곱 남매와 살던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 이야기를 하셨다.

그다음은 엄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와 하나뿐이었던 고모께서 돌아가시던 6.25 시절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지금은  엄마를 혼자 버려두고 산으로 올라가셨다는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신다. 그 엄마가 그 후에 어떻게 되셨는지 소식을 모른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곤 한다.


"에고고, 우리 엄마! 잘 기억해 봐요~ 외할머니는  큰 외삼촌댁에서 잘 사시다가 돌아가셨잖아. 그전에는 우리 집에서 엄마랑 우리랑 같이 사신 적도 있고... 기억해 봐요!"

"엄마가? 엄마가 우리 집에서 사셨다고? 우리 엄마는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렸는지 소식을 몰라."

"엄마!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나랑 같이 갔었거든. 잘 기억해 봐요"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버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


이번에도 지난번과 비슷한 이야기로 이어져갔다. 미세하게 뒤틀린 채로 엄마의 일방적인 기억에 따라서 앞뒤가 맞추어지지 않게 전개가 되는 이야기. 그러나 그 사실과 다르게 전개되는 엄마의 이야기들이란 게 어쩌면 엄마가 엄마의 기억 속에서 스스로  수 없었던 의문시작점과 그로 인해 생긴 상처를 스스로 찾아내직면하려 애쓰는 중에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병원 입원 후부터 줄곧 엄마가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가며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것으로 차례차례 인연정리해 오셨던 것 같다.  

엄마가 기억하는 모든 인연들에 대해 좋았던 것,  섭섭했던 것, 화가 났던 것들을 하나하나 말씀해 주시고는 잊지 않으시고 축복의 말로 마무리를 하셨었다. 우리에게 대신 기억해 주기를 당부하시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엄마의 기억 속 인연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차례차례 이별을 하시던 중 만난 가장 슬픈 지점은 바로 여기,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하고 계시는  지점이다. 그동안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그 엄마를 향한 원망을 지금 어린아이처럼 반복하시고는 눈물을 흘리곤 하신다.


"엄마! 엄마! 이제는 엄마가 외할머니를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 그 시절에 말이야, 전쟁 났지,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시누이에 남편까지 죄다 돌아가셨지, 마을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어린 딸 손 잡고 피난길을 떠났지만 어디 멀리 갈 수도 없이 멈춘  가깝지만 낯선 마을에 들어선 새댁이 말이야, 어두운 밤 산밑에서 슬픈 생각이 드실 수도 있었겠네 뭐. 어린  딸을 깜깜한 혼자 두고 산에 올라가셨던 그 할머니도 참 힘드셨겠다. 불쌍하네, 울 외할머니... 엄마. 엄마, 그 할머니 다시 산에서 내려오셔서 엄마 손 잡고 씩씩하게 재혼하셨어. 그 후로 여섯 남매 씀풍씀풍 더 낳으시고 팔십 살 넘게 사셨잖아. 그만 무서워하시고, 엄마가 외할머니께 힘들어도 잘 살아내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느냐고 말씀 한마디 해 드리면 좋겠다. 울 엄마 말이야, 그런 강하고 책임감 있는 엄마한테서 자라셔서는 우리 삼 남매 죽을 지경에도 안 버리고 고생해서  잘 키워주셨잖아! 우리 엄마 최고다!"


"어여 집에 가! 집에 가면 전화하고..."


내 잔소리가 좀 귀찮아지셨는지 엄마가 피곤해 눕고 싶다는 말씀을 그렇게 하셨다.


전화를 드려도 받지 못하는 엄마지만, 내가 누구인지도 기억 못 하겠다말씀하시는 엄마지만, 밖에 오래 있으면 힘이 드니까 어서 집에 가서 잘 도착했다고 전화 한 통 하라는 그 말씀 한 마디가 세상에 더없이 기쁜 '오늘의 작별인사'가 되었다.


엄마는 정말 힘들었겠다.

엄마의 엄마가 엄마를 버린 것만 같던 그 순간의 기억이 엄마의 모든 기억을 막아버려서 슬프고 외롭고 무서웠겠다.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는...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얼른 빼 주고 찢어지고 베인 상처에는 약을 발라주고 삔 다리에 붕대도 감아주고 그랬는데.

그리고 아픈 사람이라도 만나면 손가락질하지 않고 '고생 많았다. 대견하다' 칭찬해 주는 그런 엄마였는데... 굶는 이웃 있으면 우리 집 쌀독에서 쌀 한 바가지를 듬뿍 퍼내서 가져다주고 그랬었는데....


우리 엄마, 이제 조금 더 기억을 추스르고 기력을 챙겨서 엄마의 엄마를 다독여드릴 시간을 찾으신다면 좋겠다.


엄마가 그 엄마의 등을 두드리고 안아주면서 "아이고, 우리 엄니! 천지간에 의지할 데 없이 어린 딸 손잡고 고향을 떠나와서 혈혈단신 버려졌던   산에서 울다가 내려와서 평생 동안 나 지켜주시느라 고생 많았어유~! 고마워유~!"


그리 인사해 드리면 좋겠다.


남아있는 모든 날들 내리내리 웃으시기만 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잊지는 않을 이별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