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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Nov 13. 2023

며느리의 첫 번째 상담

정신과에 찾아간 며느리, 물고 뜯으며 맛보기 좋은 자극적인 소재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시'자 문화에 익숙할 이들은 이쯤 되면 머릿속에 진부한 플롯 하나 정도는 그려지게 마련이다. 막장 시가, 혹은 막장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정신병 걸리게 했나 보군. 그렇고 그런, 판에 박힌 스토리. 이 친숙한 클리셰의 풍경 속에 나, 지인이가 오도카니 서있다.


얼마 전 읽은 심리학 책에서 일컫기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되새김'을 자주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저항하는 자들의 특성이라던데. 나는 무척 저항적인가 보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그저 '받아들임'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 덕에 나는 병원 예약 후 진료실에 앉은 그 순간까지 되새기고 되새기며 생각의 타래를 풀어보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되새김의 결론을 입 밖으로 꺼내어 의사와 공유해야 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정신의학과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 한 표면적 원인은 그 일 이후 시시때때로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거나, 영희씨와 관련한 단상이라도 떠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쪼여오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그리고 머리가 띵-하는 독특한 느낌. 나는 내 고통을 이 정도 거친 언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음이 답답했다. 이러하여 내가 진료를 받으러 온 것임을, 명징한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고 자꾸만 물음표를 붙였다. 그 왜, 가슴이 쪼여온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물음표를 문장마다 붙이며 상대의 이해 여부를 가늠해 보았다.


이어 줄곧 떠올려 온 생각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내 상태에 대해 '영희씨 때문이야 빼액!' 거리며 마음을 해결해 달라고 병원 문턱을 넘은 것은 아니었다. 시어머니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됐다, 를 넘어선 차원의 응어리가 있었다. 이런 일,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대응이 나올진대, 나처럼 이런 식의 반응-이라 함은 눈물바람으로 대표되는 우울감-이 발현되는 것은 건강한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을 담담히 말했다.


그러자 의사의 눈이 반짝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녀 쪽에서 그 일에 대해, 영희씨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보기를 권유했다. 구구절절 말해야 하는 것인지 멋쩍어하며 말하기 주저하는 나에게 의사는 빼놓지 말고 이야기하기를 권했다. 나는 크게 한숨 한 번 내지르고 그게 말이죠, 했으나 눈물에 말문이 턱 막혔다.


2주를 기다려 온 내 소중한 상담시간, 의사와의 값진 1분 1초가 눈물바람에 허투루 지나가는 것에 나의 뇌는 경보 알람을 울렸다. 그러나 아랑곳없이 내 눈물샘은 미쳐 날뛰고 있는 듯했다. 나는 흡사 동물이 내는 것 같은 꺽꺽 소리를 중간중간 내어가며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말들을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사건들부터,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지난 몇 년간의 영희씨의 말과 행동들을 간략하나 구체적으로. 상대가 이 소리 짖음에 가까운 말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의사의 손가락이 제법 바빠졌다. 그녀의 손놀림을 보며 나는 그것이 마치 전쟁터에서 전해진 모스부호를 해석하는 일 같다고 느꼈다. 나는 울먹이면서도 안도했다. 내 말이 그녀에게 가닿고 있구나. 그녀의 타자 치는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결 편한 마음으로 울음을 삼켜가며 말을 이어갔다. 중간중간 그녀는 남편의 가족 관계, 나의 가족 관계, 그리고 결혼 생활 등을 짧게 묻기도 했다. 그녀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자 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의사로서 도와야 할 단계 하나를 내 스스로 이미 해결해 왔음을 말해주었다. 내가 인지적으로 나에 대해, 이 사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음을 그래서 앞으로가 훨씬 수월할 것임을, 그녀는 희망찬 언어로 주장했다. 묘하게도 모범생이 되어 칭찬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의사를 의사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낯간지러워 한 번도 '선생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번복한다. 첫 상담 이후 내게 의사는 무조건 의사'선생님'이다.


다정한 공감이나 '에구 이를 어째요'하는 식의 연민은 내게 필요 없었다. 다행히도 내가 만난 의사 선생님은 딱 나만큼 건조한 사람이었고, 전문가다운 안목과 식견으로 내 마음을 움직였다.


선생님은 영희씨에 대해 내게 설명하던 도중 한쪽 손바닥을 허리춤 이-만치 아래로 내렸다. 시어머니가 여러모로 이 아래에 있는 분 맞아요,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목소리.

그런데요 지인씨, 우리가 살다 보면 여-어기 이 아래쯤에 있는 이런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되거든요? 그런데 지인씨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나는 매가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랬다. 나는 저만치 상식의 궤도를 벗어나는 사람을 내 바운더리 안에 들여가며 관계 맺어본 경험이 없었다. 말하자면, 영희씨는 지인이 인생의 미친 사람들-이라는 드라마의 첫 화 주인공쯤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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