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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Nov 28. 2023

아버님, 저 우울증

피해의식은 덤이에요

첫 상담을 마치며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약이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며, 영희씨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는 나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일상의 나는 누가 봐도 멀쩡했다. 그 일이 불쑥 떠오를 때를 빼고는 동료들과 활기차게 웃고 떠들었고 업무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으며 남편과 아이와도 평온한 일상을 보냈으니까. 처음 병원을 들어설 때만 해도 이 정도 일로, 이 정도 증상으로 내원하는 것이 맞는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처방전을 손에 쥐고 약국으로 들어서는 순간에야 실감이 났다. 전문가의 눈에 약물 처방이 필요한 환자로 판명 났음이.


선생님은 내게 예언했다. 대화해 본 바로 짐작하건대 지인씨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종국에는 이 약을 끊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내게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볼 것을 권했다.


상담비용은 내 예상을 크게 웃돌았는데, 10만 원이 넘어가려나 했던 회당 45분짜리 상담은 실은 20만 원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다음 상담을 예약하려면 선결제를 해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나는 병원 로비에 걸려있던 선생님의 이력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으려나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그 이름도 찬란한 샤대. 학부와 그 이후의 전문의 혹은 수련의 명칭도 복잡한 각종 이력의 어두에는 모두 서울대학교가 붙어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기꺼이 지불하겠어. 나는 뼛속까지 학벌주의자 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다음날부터 매일 내 아침은 항우울제 복용으로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로 인해 급기야 우울증 약까지 먹게 된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면서.


처음에는 별다른 차도가 없나 싶었지만 역시나 과학은 위대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알약 하나가 눈물샘을 꾹 잠갔다. 불쑥불쑥 떠오르던 영희씨의 잔상도 조금은 흐려졌다. 그녀의 말과 고함소리가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긴 했어도 그때마다 전처럼 두근 거리는 일은 확연히 덜해졌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약을 먹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의 안부를 챙길 일이 생겨 전화를 걸었다. 그 일이 있고서 한 달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고 첫 통화였다.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불안 불안하게 이어진 일상적인 통화였건만, 불행히도 그 끝무렵에 아버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지인아 속상한 일, 슬픈 일은 다 잊고 살아보자.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말에 웃음기 머금어가며 아유 그럼요, 넉살 좋게 넘어갔을 테다. 아버님이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찾았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무엇보다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틀에 박힌 말을 덧붙인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영희씨가 그 행복에 훼방 놓는 것부터 막아 주세요.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아 보았다. 그는 이렇다 할 죄가 없다. 그럼에도 제삼자인 양 한 발 뒤에서 꼿꼿한 소리만 하는 아버님이 원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잊자는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어떻게 내게 아무 일 없는 듯 다 잊자고 할 수가 있는지. 지금껏 사과 한 마디 전해 듣지 못했는걸. 아버님은 그저 별 뜻 없이 '좋은 게 좋은' 차원에서 한 말일지 몰라도 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퉁쳐서 잊자고 하는 듯 들려 목이 콱 메었다. 팩트만 입에 올리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저희 둘은 잘 지내요, 걱정 마세요. 나와 남편 우리 둘은 영희씨가 벌인 그 참극 이후 오히려 더 단단해져 나의 회복에, 그리고 이 가정의 유지와 행복을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것이 팩트였다.

 


서울대 명패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전문가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나는 내가 항우울제를 먹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FM스러운 내가 그려둔 이상적인 자아상에 항우울제는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약을 먹는 '환자'라는 사실에 점차 매몰되어 피해의식으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나는 '이 지경'인데 아버님은 감히 내게 어찌 그런 말씀을 할 수가 있는지. 상대가 내뱉은 말의 무게를 몇 곱절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있자니 피해의식의 실체를 절절히 느꼈다. 그럼에도 한 번 놓쳐버린 생각의 고삐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진실로 피해자이기도 했으니까.


마음이 어지러운 며칠이 지나고,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잊을 수 없으니 잊자는 말씀은 하지 마시라고. 지난여름, 영희씨가 완두콩을 가지고 길길이 날뛸 때에도 아버님은 내게 지난 일은 잊자고 하셨다.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그때 그 말씀대로 잊고 넘어갔더니 결국 내게 돌아온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끼리 잊자고 하면 없던 일이 되기나 하는지. 그에게 열심히 물으며 답을 구했다. 나는 이번에도 팩트를 전하기로 한다. 그날 이후 당신의 며느리는 엉망진창이 되어 정신과에 드나들고 있으며 매일 아침 약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나는 이제 소중한 나를 해치는 존재를 참지 않을 것임을, 한 자 한 자에 다짐을 꾹꾹 담았다.


약 기운 덕인지 피해의식 덕인지 나는 그렇게 거침없이 지옥문을 열어젖혔다. 그 문을 열고 향하는 곳이 또 다른 지옥일지, 천국일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연옥쯤 될는지는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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