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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익허브 Sep 02. 2024

“공포를 넘어선 분노” 인류애 박살나는 딥페이크 성범죄

미션78. 딥페이크 성범죄 끝까지 추적해 제대로 처벌하라

공익허브는 매주 월요일 ‘미션 100’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변화 10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텔레그램을 악용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했다. 출처: telecomreviewafrica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텔레그램에는 불법합성물 제작 프로그램(봇)을 탑재한 복수의 단체방이 존재하는데 그중엔 이용자 수만 각각 22만명, 44만명에 달하는 방도 있다고 합니다. 단체방 참가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내려 받은 여성들의 얼굴 사진을 나체 이미지와 합성해 ‘성범죄물’로 만들어 공유하고 있었는데요. 충격적인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학생, 군인, 교사, 간호사… 미성년자까지 불법합성물 피해


텔레그램 채널에서는 지역•학교•직업군 등으로 세분화해 ‘지인’을 특정하고 불법합성물을 제작·유포하는 범죄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단체방 참가자들끼리 지인의 신상을 공유해 서로 아는 사람을 찾은 다음, 별도의 대화방으로 이동해 불법합성물을 만드는 방식이었죠. 이렇게 제작한 성범죄물은 반복적으로 여러 개의 대화방으로 유포됐고요. 이 과정에서 전국 주요 대학의 학생들부터 군인•교사•간호사•운동선수 등 특정 직역에 종사하는 여성들, 심지어 중•고등학생까지 범죄의 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텔레그램 채널에 만연한 딥페이크 성범죄. 출처: 한겨레




피해자가 왜 더 억압받나, 가해자는 왜 그토록 당당한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성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 사회에는 이런 통념이 작동했습니다. “범죄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여성이 더 조심해야 한다”.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말 것, 짧은 옷을 입지 말 것, ‘정숙하게’ 행동할 것… 여성들이 옷차림과 행동에 관한 불필요한 간섭과 왜곡된 해석 속에서 통행의 자유마저 방해를 받는 동안, 성범죄 ‘가해’ 행위를 막기 위한 일련의 통제와 교육은 미진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요?


한국 사회는 성범죄 피해자를 옥죄는 낡은 관습에 갇혀 있다. 출처: 경향신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 규정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말합니다. 국내 성범죄 처벌 규정은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당시 제32장 ‘정조에 관한 죄’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법이 보호해야 하는 가치가 ‘여성의 정조’로 규정됐던 겁니다. 이로 인해 ‘정조가 없다고 간주하는’ 여성은 성범죄 피해를 입어도 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42년 만인 1995년 ‘정조에 관한 죄’는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됐습니다. 여성계의 노력으로 성범죄의 개념과 범위가 확대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됐지만, 우리 사회의 의식 속에 뿌리 박힌 ‘정조’의 그림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뭇 여성을 옥죄는 낡은 관념은 성범죄 피해자가 손가락질을 받고,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경시하는 끔찍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됐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남성들. 출처: 에브리타임·한국경제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서도 한국 사회의 이런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요. 여성들이 스스로의 SNS를 ‘검열’하는 사이, 한 대학생 커뮤니티에선 “지금 불안해서 텔레그램 방을 지울까 고민하는 애들 필독”이라며 가해자들에게 행동 지침을 전하는 글이 게시됐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여성들을 향해 “호들갑 지겹다”거나 “딥페이크도 노동인데 네 얼굴로는 안 한다”는 식의 조롱을 던지는 남성들이 버젓이 존재하고요.



텔레그램 수사 난항에 ‘셀프 구제’ 나선 여성들


그렇다고 텔레그램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수사가 원활한 것도 아닙니다.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뒀기 때문에 한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대화 내용이나 범죄 증거를 확보하려면 텔레그램 측의 협조가 필요한데, 지난 2020년 일어났던 ‘N번방’ 사건 당시에도 텔레그램은 수사기관의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고 해요. 피해자들의 불법 촬영물 삭제를 요청해도 묵묵부답이었고요.


수사기관의 더딘 대응에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들이 직접 텔레그램 대화방에 들어가서 증거물을 수집하며 가해자를 추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속적으로 피해 사례를 제보 받고, 피해 지역•학교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도 SNS에서 활동하는 여성 유저들이 맡고 있어요.


텔레그램은 범죄 수단으로 전락했다. 출처: NPR




중요한 건 정부 차원의 성범죄 근절 의지… 텔레그램에 법적 대응한 국가 있어


그럼 계속해서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개개인이 떠안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텔레그램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법적인 대응을 한 국가들이 있거든요. 2022년 브라질 정부는 텔레그램이 가짜뉴스 관련 수사에 협조하지 않자, 구글과 애플 앱스토어에서 텔레그램 앱을 삭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자국민의 텔레그램 이용을 차단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한 거예요. 하루아침에 ‘셧다운’을 당한 텔레그램은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고 브라질 정부의 협조 요청에 응했습니다. 2023년 독일에서는 텔레그램이 경찰 수사에 응답하지 않자, 내무부 장관이 나선 끝에 독일 정부가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기도 했죠.


이미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요. 이에 정부는 텔레그램 등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과 협의체를 구성하고, 신속한 영상 삭제 차단 조치와 자율적인 규제를 강력히 요청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 솜방망이 처벌 비웃는 가해자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딥페이크 성범죄를 차단하는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허술한 법망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법’이라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을 개정했지만, 처벌 수위가 낮아 범죄를 막기에는 부족하다고 해요. 그마저 실제 법정에서는 범죄 전력, 연령, 반성 여부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피해의 심각성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아울러 불법합성물을 시청•소지한 경우에 관해선 처벌할 기준이 없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도 현행법의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솜방망이 처벌을 비웃기라도 하듯, 딥페이크 성범죄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여전히 성착취물 제작과 유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자극적인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요. 가해자들의 범죄 행위를 멈추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성 착취영상물 제작자, 유포자, 소지자의 신상공개 및 처벌 강화 △보호관찰, 교육의무 부여 △전자장치부착의무 부과 등의 보다 강력한 규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성범죄 향한 사회적 인식 재정립하자


강도 높은 법과 제도를 마련한 다음에도 우리에겐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성범죄를 ‘우연히 일어난 일’이나 ‘한순간의 실수’로 치부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는 세태를 바꾸는 일입니다. 특히 딥페이크 성착취물 공유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중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이 마치 ‘놀이’처럼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탄식합니다. 



“가해자에겐 한순간 장난이지만 피해자들은 인생 자체가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성범죄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출처: onfido



미비한 법제, 비뚤어진 성 관념, 성 인권 교육의 부재, 인권 감수성 결핍… 이 모든 것이 쌓여 만들어진 잘못된 통념은 범죄피해자를 향한 숱한 2차 가해를 양산합니다. 성범죄 가해자에게 ‘왜 그랬냐’ 묻는 대신 피해자에게 ‘왜 당했냐’ 추궁하는 잘못된 관습을 이제는 뿌리 뽑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성범죄가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말살하는 비인간적 행위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범죄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무거운 책임이 주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인식의 대전환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포함한 각종 성범죄를 타파하는 첫걸음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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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세계일보. 24-08-28. [[단독] “예술로 여기고 만들 수도 있어”… 딥페이크 ‘솜방망이법’ 만들어진 이유].
연합뉴스. 24-08-28. [‘딥페이크 범죄 엄벌’ 강조한 법원… 양형기준 손질 지적도].
조선일보. 24-08-28. [아는 여성 ‘음란물 합성’ 징역 2년… “딥페이크, 장난 아닌 중범죄”].
동아일보. 24-08-28. [방심위, 텔레그램 등 SNS와 국제협의체 마련… 딥페이크 성범죄 잡는다].
한겨레. 24-08-27. [딥페이크 ‘셀프 구제’ 여성들… “방치하면 더 악독한 수법 나올 것”].
한국경제. 24-08-27. [딥페이크 사건에 온 나라 발칵… “호들갑 지겹다” 충격 반응].
경향신문. 24-08-27. [‘텔레그램’ 대표 체포, 한국도 ‘플랫폼 익명 범죄’ 척결 나서야].
연합뉴스. 24-08-26. [중·고교생까지 피해… ‘텔레그램 딥페이크’ 광범위 확산 공포].
한겨레. 24-08-26. [[단독] 공무원증 사진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군 내부자 연루 가능성].
아주경제. 24-08-26. [‘N번방 결정적 제보’ 박지현 “딥페이크 성범죄에 수많은 여성 불안… 국가적 재난 선포하라”].
한겨레. 24-08-22. [[단독] ‘○○○ 능욕방’ 딥페이크, 겹지인 노렸다… 지역별·대학별·미성년까지].
한겨레. 24-08-22. [[단독] 딥페이크 텔레방에 22만명… 입장하니 “좋아하는 여자 사진 보내라”].
프레시안. 20-04-07. [‘정조의 침해’에서 ‘n번방 성착취’까지, ‘보통 여성’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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