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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LEE Mar 17. 2022

유바바가 된 기분

이미 관계가 끝난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되새기고 있자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가 된 기분이었다. 그 애의 이름으로 SNS를 검색해 볼 것도 아닌데. 나 혼자 기억하고 있어 봐야 아련하게 그립기나 하지. 생각을 떨쳐 보려고 해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게 꼭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말대로 그 애를 참 좋아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부정 탈까 봐 조심스러웠다.


힘들어하던 나에게 선배가 그랬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래요." 그래, 그 말도 들어 봤다. 그런데 내가 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직 그 애 덕분에 행복했던 감정, 가슴 벅찬 순간들, 즐거웠던 것들이 기억 한 켠에 남아 있는데.


며칠 전만 해도, 그 애와 관련된 무엇이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울적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우리는 끝났구나. 이제는 그때만큼 울적한 기분은 아니지만 씁쓸하다. 이런 감정들을 얼른 털어버리고 그 애를 만나기 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을 잊는다는 건 도대체 뭘까. 아련하게 기억하고 있던 두어 명의 이름 뒤에 그 애의 이름까지 추가됐다. 다시 부를 수 없는 이름들. 언젠가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그 애의 이름도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가 오겠지. 그리고 그 애의 기억 속에서 나도 점점 바래져 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슬픈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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