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레즈비언이다. 동시에 기혼 여성인데, 위장결혼을 한 것은 아니다. 남성과 결혼해서 자식과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여성을 레즈비언이라 부르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부터 엄마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엄마의 여자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내가 본격적으로 여성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맺으면서부터였다.
"자기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는 오전 10시가 되면 동네 목욕탕으로 향한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놀이터에 가면 늘 친구들이 있었던 어린시절처럼, 목욕탕은 엄마의 놀이터이자 쉼터가 되었다. 목욕 바구니는 따로 챙길 필요 없이 탈의실 선반에 놓여있지만, 엄마는 빈손으로 목욕하러 가는 일이 없다. 양손에는 음식과 뜨개질 가방이 한가득이다. 종종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갈 때면 어린 시절 ‘이모’라고 부르던 이들이 나를 반겨주기도 하고 일면식도 없는 여성이 두 팔 벌려 맞이해주는 날도 있다. 신기한 건 그들 전부 내 이름부터 나이, 학교, 성격, 좋아하는 음식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내일 봐~”
목욕탕에 모인 사람들은 맨얼굴과 맨몸으로 마주 앉아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고작 며칠 떨어져있었을 뿐이지만 대화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목욕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대화의 참여자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우나에 앉아서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가만히 앉아 있던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대화에 녹아든다. 한 차례 대화가 끝나면 다같이 늦은 점심을 나누어 먹고, 다시 때를 불리며 떠들고, 서로 등을 밀어준다. 그렇게 ‘다음에 또 봐요’가 ‘담에 또 봐’가 되고 금세 ‘자기 내일 봐’가 된다.
“어우 지지배! 니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아!”
목욕탕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맺기도 한다. 엄마의 목욕탕 인연은 미용실로, 대형마트로, 여행으로, 계모임으로 뻗어나갔다. 각별한 인연들이 생겨나면서 목욕탕은 엄마에게 더욱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J는 엄마의 삶에 깊게 스며들었다.
J와 엄마는 작년 초 목욕탕에서 만났다. 통하는 게 많았던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목욕탕 밖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J는 동네에서 작은 소품가게를 운영하는데, 뜨개질이 취미인 엄마가 만든 모자나 가방을 판매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목욕탕에서 소품가게로 둘의 공간은 확장되었다. 둘은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데, 엄마는 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매 끼니를 함께하는 것은 물론 강아지 산책과 취미생활, 차량, 자산 정보까지 공유하는 둘은 가족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눈다. 엄마는 J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무엇이든 두 개를 사서 J와 나누고, 나에게 J와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는다. J는 정말 귀찮은 애라고 틱틱대는 엄마를 볼 때면 나는 조용히 웃고 만다.
“자기가 만든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잖아. 나랑 같이 살자. 응?”
J와 함께할 때와 집안에서 엄마의 모습은 딴판이다. 아빠와는 일상이나 감정의 공유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 반면, J와 함께 있을 때면 수다쟁이가 따로 없다. 수십 년 간 가족에 헌신하고 가사노동에 몰두하던 엄마는 J를 만나고 나서야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로부터 서서히 자유로워졌다. 집보다 더 편안한 공간,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얻어낸 소득, 그리고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여자의 존재는 그의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J만큼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그의 삶에 파고든 이가 있었나? 엄마의 미래에 가족보다는 J와 목욕탕 친구들이 있었으면 하고 자꾸 바라게 된다.
| 인연이 시작되는 목욕탕
엄마와 J의 만남처럼 동네 목욕탕은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기 좋은 곳이다. 남성의 침입이 없는 여탕 안에서 여성들은 서로를 향한 경계를 쉽게 허물고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다. 목욕탕에서 우연히 시작된 인연은 아주 각별한 관계로 발전되기도 하는데, 그 관계는 너무도 특별하고 깊어서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고,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 단계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이렇듯 집이라 부르는 공간에도 자기만의 방이 없고, 집이 그저 일터가 되어버린 엄마 또래의 여성들에게 동네 목욕탕은 쉼터이자 놀이공간이다. 목욕탕은 공간을 잃어버린 여성들에게 따뜻함과 새로운 만남을 제공하는 아지트가 되고 있다.
한편, 엄마와 J를 레즈비언이라 칭하는 것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목욕탕 레즈비언’들은 남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서로를 애정하고 있지만, 결국 목욕탕을 나오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비록 가부장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을지라도, 엄마의 레즈비어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하려는 시도가 더 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도, 엄마도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만 있다면 그도 J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ㅡ
추신. 엄마에게 새로운 인연을 찾아주고 싶다면 목욕탕을 추천해주는 것이 어떨까. 앞으로 목욕탕에서 더 많은 레즈비언이 탄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