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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아트리체 Nov 18. 2021

350만 원으로 결혼하기

이과생과 초 계획형 인간의 결혼 준비기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하우스메이트 메리는 이탈리아 작은 섬의 해변가에서 결혼하는 것이 로망이라고 했다. 프랑스 유학시절 만난 러시아 친구 이나는 예쁜 성에서 결혼하는 것이 자기의 꿈이라고 했다. 생긴 것도 공주같이 이쁜 러시아 친구가 성에서 결혼하는 모습과 자유분방한 메리가 해변가에서 결혼하는 모습은 퍽 어울리게 느껴졌다. 다들 나는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로망이 없는 게 나의 로망이라고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식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여러 문화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뭐 달리 말하면 남의 잔치에 가는 것은 완전 대환영, 내가 꾸리는 잔치는 피하고 싶은 게으름이다. 특히나 가장 친한 친구와 이탈리아 언니가 결혼식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부지런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는 필요로 하는 것만 하기로 했다. 수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만) 이과생인 승태와 초 계획형 인간인 나는 리스트와 예산표 정리를 시작으로 추려나갔다. 먼저 어디에서 결혼할 것인가는 이미 정해졌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논제였다. 우리는 간단하고 쓸모 있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제일 먼저 결혼 동의서, 앞으로 서로 바라는 점과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는 것. 같이 살아갈 미래를 그려보고 어떤 점이 서로 좋아서 결혼하는지 되새겨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사실 이 결혼 동의서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섹션별로 나눠지는데 우선 삶의 비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서로에게 바라는 점, 양육, 경제, 건강, 양가 가족 문제 등 항목에 따라 내용을 적고 서로 따를 것을 서명했다. 

우리 결혼 동의서의 제일 첫 장


두 번째로 중요한 것 바로 옷! 여기에 가장 많은 지출을 했다. 이번 결혼식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행사 때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구하기로 했다. 우리끼리는 혹시 영국 여왕이 초대할 수 있으니 그때 입고 갈 옷을 미리 사놓자고 했었다. 우선 신랑 옷은 펭귄 정장이 아닌 신랑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정장으로 샀다. 네덜란드에서는 결혼할 때 주로 펭귄 정장을 입는다. 승태도 박사과정 졸업할 때 입었는데 다른 중요한 행사에도 그렇게 입고 갈 배짱이 없다며 사양했다. 대신 브리티쉬 스타일의 정장을 고집했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그놈의 브리티쉬 스타일이 뭔지 모르겠다. 아무튼, 신랑 옷은 헤이그에 있는 작은 정장 테일러 숍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원단의 맞춤 정장으로 120만 원을 지출했고 내 옷은 45만 원을 주고 한국 브랜드의 투피스 정장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결혼식에 필요한 반지는 이탈리아에 갔을 때 아주 작은 공방에서 맞췄다. 아무 세공도 없는 깔끔한 금반지로 안에다가 우리만의 문구를 새겨 넣었다. 결혼식 반지라고 생각해서 잔뜩 긴장하고 들어갔지만 로즈골드 반지에 각인까지 75만 원에 맞출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결혼할 때 행운의 의미로 진주를 선물한다며 공방에서 진주 목걸이도 선물로 주셨다 (이런 러키!!). 진주 구슬을 꿰어서 보여주면서 어떤 디자인으로 만들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그 자리에서 직접 제단 해서 만들었다. 


나의 짧은 목 길이에 맞게 제단 된 목걸이


사진 촬영도 우리가 하려고 했는데 식도 간단하게 하니까 우리가 기념할 만한 사진을 좀 남겨두자 해서 포토그래퍼를 예약했다. 결혼식 날이 아닌 그 주 주말로 잡았고 스냅숏처럼 촬영해주는 포토그래퍼를 섭외했는데 총 30장, 2시간의 사진 촬영을 하고 26만 원을 썼다. 이 사진 촬영이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대만족. 인터넷으로 맞추는 결혼 사진첩까지 해서 총 40만 원을 썼다. 


사진 촬영하러 갔던 집 근처 공원 결혼하기 전에도 자주 갔던 곳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널린 게 꽃이라 목요장에 가서 아무 부케나 살까 했으나 재미로 한번 만들어 보자 해서 일주일 전에 부케에 쓸 꽃을 주문했다. 칼라 30송이와 유칼립투스 그리고 secret plum이라는 작은 꽃을 믹스해서 5만 원에 샀다. 당일날 아침에 꽃을 받아와서 둘이서 꽃 상투를 잡고 어찌어찌 묶었더니 제법 부케같이 만들어졌다. 남은 꽃으로는 화관도 만들었다.

우리가 같이 만든 부케


그 외에 결혼식 끝나고 밥값 20만 원, 힐이 없어서 산 구두 20만 원, 웨딩베일과 헤어스프레이, 화장품 등 10만 원, 시청에 쓴 돈 20만 원까지 해서 총 355만 원을 썼다.


당일 날까지도 진짜 결혼하는 건가? 우리 지금 어디 놀러 가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었다. 같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함께하려고 하는 모습에 서로 감동받았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 사는 것처럼 어설펐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 웨딩이었다. 

이렇게 준비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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