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지만 엉성하고 소소해서 좋았던 우리의 결혼
이탈리아도 한국처럼 결혼을 크게 한다. 결혼식은 주로 신부집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모든 하객이 심부 집에 모여 신부가 집에서 나오면 환영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축하해준다. 그 때 신랑이 신부집으로 보낸 마차나 멋진 차가 집앞에 도착하면 신부는 그 차를 타고 성당에 도착한다. 결혼식을 한 후 장소를 옮겨 예약한 식당에서 아페르티보 타임이라고 간단하게 식전주와 안주를 먹으며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신랑 신부까지 예약한 식당에 돌아오면 코스 저녁을 먹고는 그다음 날 아침까지 파티를 연다. 뭐 중간중간 가수도 오고 폭죽도 하고 케이트 컷팅식도 있고 하지만 간단하게 요약해서 그렇다. 이탈리아 언니도 제일 간단하게 결혼해서 이렇게 결혼했다. 이런 기대가 있었을테지만 이탈리아 식구들에게 우리는 간단하게 결혼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감사하게도 너네가 제일 마음 편하고 좋은 대로 하라고 해주셨다. 결혼이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한국과는 다르게 이탈리아에서의 결혼은 무조건 신부가 원하는 대로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내가 행복해하는지 물어보셨단다.
한국에서 처음에 결혼하려고 생각했을 때에도 시청에서 서류만 하려고 했었다. 엄마가 "내가 뿌려놓은 돈이 얼만데" 라며 어깃장을 부릴 때도 "엄마, 어차피 엄마가 뿌린 돈이니까 엄마가 결혼 한번 더 하는 건 어때"라고 했다가 눈으로 쌍욕을 맞았다. 하지만 근 3년 동안 우리 엄마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뿌려놓은 돈이 얼만데"라는 말도 들리지 않고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고 간단하게 하는 결혼식을 지지해주셨다.
"그래 너희가 좋다면 엄마 아빠도 좋아. 형식이 뭐가 중요하겠니,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중요한 거지. 우리 딸, 사위가 얼마나 공신하고 생각한 후에 한 결정이겠어. 서로 마음 맞는 것만큼 큰 복도 없다. 너희들 하던 대로 하는 게 맞아. 누구보다 현명한 판단이고 누구보다 똑똑한 사위라 바랄 게 없어. 누구보다 알차고 영리한 결혼식인걸. 아주 잘하고 있다 아무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계획대로 해라. 잘 사는 게 중요하지 식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처럼만 예쁘게 살면 된다. 늘 응원하고 무지무지 사랑한다."
양가 가족의 지지에 힘입어 우리끼리 준비하는 셀프웨딩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네덜란드 시청에서 결혼하기로 한 후 결혼 사무관과 만나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는지, 부부의 결혼관이 어떤지 등을 상의할 시간을 먼저 갖는다. 우리 사무관님은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언제 결혼하기로 결심했는지, 결혼에 대해서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그리고는 어떻게 결혼이 진행되는지 설명하고 우리가 원한다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기에게 메일로 각자 보내달라고 하셨다. 또 양가 부모님 모두 못 참석하신다고 하자 짧게나마 비디오 메시지를 받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해서 부모님께 약 1분가량의 축하메세지를 부탁했다. 거의 2시간을 이야기했는데 결혼 전에 함께 생각해보는 결혼의 의미라 참 신선하고 결혼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결혼 사무관님과 함께 계획한 우리의 결혼식은 이러하다.
1. 증인의 신분 확인
2. 신부 입장 (행진곡은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 A te _Jovanotti)
3. 결혼 사무관님의 네덜란드 결혼법 소개 및 간단한 예비부부 소개
4. 양가 부모님의 비디오 메시지
5. 결혼 사무관의 예비부부 편지 낭독
6. 혼인 서약 및 반지 교환
7. 신랑, 신부 그리고 증인의 혼인 서약서 서명 (노래 나에게 넌 너에게 난_ 자전거 탄 풍경)
네덜란드 결혼에서는 증인이 가장 중요하다. 결혼 사무관님에 의하면 혹시 서류가 분실되거나 했을 시 증인이 두 사람이 부부임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시청이나 성당에서 결혼한 후에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로 된 저녁을 먹고 또 파티도 한다. 우리의 네덜란드 결혼식에는 신랑과 신부, 딱 증인 2명 함께 하기로 했다. 사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고는 딱 한 부부뿐이라 다른 사람을 더 부를 것도 없었다. 대만에서 온 친구 부부 중 아내는 나의 증인으로 남편은 승태의 증인으로 서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 후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헤이그의 베트남 쌀 국숫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 당일 증인 커플과 함께 델프트에서 헤이그로 가는 기차를 탔다. 다들 차려입고 부케에 노트북까지 바리바리 들고 탔다. 기차타고 나는 10분 내내 서로 기차와 안 어울리게 너무 차려입은 거 아니냐며 증인들과 서로를 놀렸다. 시청에 도착하자 승태는 줌을 연결하고 대만 친구들은 비디오 녹화와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연결하며 준비를 척척해나갔다. 나는 시청에서 나온 결혼 도우미 분을 따라 신부 입장에 맞춰 들어갈 수 있도록 밖에서 대기했다. 우리가 고른 신부 입장곡이 나오고 내가 입장하면서 우리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시간으로 오후 다섯 시에 결혼이라 한국에는 새벽 1시라서 동생이나 부모님께 비디오로 보내드릴 테니 자라고 했지만 웨딩홀로 들어서 보니 가족들과 한국 친구 모두 줌에 들어와 있었다. 내 동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45분 내내 모두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우리의 결혼식에 함께 해 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탈리아 가족들은 결혼식 내내 오디오가 안 들렸고 퀄리티가 너무 안 좋아서 나는 슬픈 찐빵처럼 보이고 승테는 휴지조각을 양복 주머니에 꽂고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결혼식 후 대만 친구가 찍은 비디오로 한국어와 이탈리아어 자막을 달아 가족들에게 보내주었다. 부모님들 모두 네덜란드도 이탈리아나 한국처럼 주례가 길구나 했었는데 이제 무슨 내용인지 알았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의 결혼식을 정말 뜻깊게 보셨다고 했다. 서로에게 전하는 말이며 부모님의 축사까지 있을게 다 있는 행복한 결혼식이었단다.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정말 우리 같은, 소소하고 감성적인 결혼을 했다. 오랫동안 돌려볼 결혼식 비디오도 있고 결혼식을 기념할 만한 사진도 있고 앞으로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결혼 동의서도 생긴, 다시 하라고 해도 할 만한 그런 우리만의 네덜란드식 결혼식이었다.
이번 결혼식이 끝이냐고?
아니다. 한국에서는 가족과 친척들을 모아 함께 밥을 먹을 먹고 이탈리아에서는 조촐하게 가족 미사를 올리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 네덜란드식 결혼식이 양가 가족 모두에게 감동을 줘서 다음번에도 믿고 맡기신단다. 물론 또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결혼식이 될 예정이다. 결혼만 세 번 한 부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