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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가 Aug 27. 2023

사랑 이야기

完 사랑의 이름


전주행 KTX를 타기 위해 용산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시간은 오전 4시였다. 방금 막 예매한 7시 열차까지도 3시간이 남아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잠깐 엎드려 잠이라도 청해야할까 아니면 PC방에 들어가 아무 생각없이 게임이나할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하고 묻는 여자친구의 전화는 주변이 시끄러웠다. 

"너는 어디야? 이 시간에 어디가느라 밖이야?"

"용산역왔어. 너 지금 어디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여자친구는 새벽 4시에 용산역으로 날 만나러 왔다. 여자친구에게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녀는 내게 다가와 꼭 껴안아 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었다.

"일은 네가 있지"

"아...... 장례식장은 잘 다녀왔어"

"그거 말고"

"지금 바로 출장가는거 괜찮아. 어차피 오늘은 내려가서 바로 쉴거야"

"또"

"또 뭐가 더 있어?"

"너 표정만 봐도 알아. 장례식장이랑 출장도 있지만 그냥 많이 힘들어보여. 세상 모든 걱정 네가 다 안고있는 것 처럼. 걱정 돼 죽겠어. 오늘은 얼굴을 꼭 보고 내려보내야겠다 싶더라구"


여자친구는 내 눈을 통해 마음을 읽으려는듯 내 눈을 한참동안 쳐다봐주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여도 그냥 나를 계속 쳐다봐주었다. "내가 너를 다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넌 이미 충분히 날 잘 알고있어" 내 어깨에 올라와있는 여자친구의 팔을 조심스레 내려주며 말했다.

"나 안아줘"

"방금 안았잖아"


피곤해 보이는 여자친구를 이번엔 내가 위로해주듯 안아주었다. 

"있잖아. 내가 사랑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와주는 건 일도아니지만,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사랑받고 싶을 때가 있어"

"나도 항상 고마워"

"고마워 라는 말도 좋지만, 이런 상황에선 사랑해 라는 말이 좀 더 듣기 좋을 거 같아" 내 어깨위로 얼굴을 기대며 여자친구가 말했다. 


사랑해 라는 말은 어떤 기분이 들 때 나오는 말일까 생각했다. 이렇게 나를 걱정해서 새벽 첫 차를 타고 달려와준 상대에게 해주는 말일까. 나는 사랑해 라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해하지 못한 감정을 아무런 감정없이 뱉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각자가 알고있는 사랑은 모두 다른이름이었다. 삼촌의 사랑은 기다림이었고, 숙모의 사랑은 공감이었다. 외삼촌은 표현에 약했지만 외숙모는 그것을 먼저 알아차려주었다. 그렇기에 외삼촌에게 숙모는 천생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친구에게 사랑은 표현이었다. 나는 아직 나의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주영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은 너무나 유약하고 불안정하다고 믿어왔다. 텅 빈 내 마음에는 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줄 것이 없으므로 상대는 실망할 것이고 이런 나를 상대는 금방 떠나갈 것이라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너무 어려운 사람이 있어야했다. 사랑이 너무 어려운 두 사람이 만나면 이것을 같이 이해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가 줄 것은 없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면 떨어질 일은 없겠다고 믿었다. 그렇게라도 붙어있는 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제서야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자친구를 안고 있으며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내 사랑의 이름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내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 너한테 외삼촌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했었구나" 

"응 퇴근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연락없길래 내가 전화했었는데 너가 얘기해줬었어"

"그랬었구나. 나도... 많이 사랑해" 내가 말했다. 






어머니와 연락을 끊기 시작했던 삼 년 전 그날 오후, 나와 어머니는 크게 다투었었다. 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보며 참아왔던 마음들을 어머니는 전혀 알아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사랑은 돈이었다. 조부모님으로부터 충분히 물질적으로 채움받지 못해 힘들었던 슬픔을 자식에게는 꼭 채워주겠다고 다짐하셨었던 어머니였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늘 먼저 알아차리고 채워주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내 이야기를 들어줄 공간과 여력은 없었다. 어릴적부터 어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이야기는 늘 내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그 이야기는 머리와 마음 사이를 몇 바퀴 돌다가 사라졌다. 나는 경청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말은 언제고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것을 귀담아 듣고 한 톨도 빠짐없이 마음속에 잘 쌓아두었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고 믿었다. 


헤어짐이 두려웠던 이유는 그 사람과 서로 주고 받으며 차곡차곡 쌓아온 우리 말들의 무게가 안타까워서였다. 그 말들은 쉽게 나올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으며 오랜 신뢰와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심스레 꺼낸 말들이었다. 그렇게 한 주먹의 모래들로 쌓아올린 모래성을 부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아꼈다. 함부로 내 말을 주지 않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고 했던가. 영원히 쌓아올릴 수 있는 곳에 모래를 쌓고 싶었다. 그리고 어렵게 찾은 그 자리에 조심스레 내 모래를 꺼내어 놓을 때, 두손으로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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