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부작용과 내게 맞는 약 찾기
첫 내원일 면담 후 나는 난생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 혹시 몰라서 그 당시 내가 먹고 있던 신경과 두통약을 들고 가서 같이 먹어도 괜찮은지 확인도 받았다. 선생님은 하루 한 번만 약을 써보자고 하셨다. 잠자기 한 시간 전 먹는 몇 알의 약. 그게 내가 먹게 될 첫 우울증 약이었다. 첫 약은 몸에 잘 맞는지도 봐야 하니 일주일 치였다.
처방을 받았다곤 하지만 사실 정신과에서는 약을 병원 내에서 조제해 주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 빼고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갖고 갈 일은 없었다. 면담실에서 나와 다시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내 이름이 불리고 약을 받으러 간다.
약을 조제해 주는 선생님이 며칠 치 약을 먹는지 내 눈앞에서 세어 주고 다시 약 봉투에 담아준다. 무슨 무슨 약을 먹는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좀 답답했다. 약 봉투에도 약 이름이나 약마다 있을 수 있는 부작용 같은 게 쓰여 있지 않았다. 혹 다른 병원과 달리 정신과에서는 각각의 약이 무슨 약인지 설명해주면 먹는 사람이 골라 먹거나 잘 안 먹을까 봐 우려하는 걸까? 어쨌든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약이니 나는 약 이름을 알고 싶었다. 이게 어떤 약인지 한 번 더 묻자 약의 정식 명칭은 아니고 약 종류를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분노 조절제, 항우울제 이런 식으로. (그런데 몸 다른 곳이 아파서 다른 병원에 갔을 때, 그곳에서 다른 약 뭐 먹는지 꼭 알아오라고 할 때는 전화하면 알려주시긴 했다)
지인은 몸에 잘 맞는 약, 마음에 잘 맞는 정신과 선생님을 찾기까지 총 여덟 곳의 병원을 들렀다고 했다. 나는 현재까지 처음 간 병원에서 계속 약을 타 먹고 있다. 다행히 약이 큰 부작용 없이 잘 듣는 중이다.
다만 내가 첫 2주 동안 먹은 약과 현재 먹고 있는 약은 다르다. 중간에 한 번의 변경을 거쳤다.
처음으로 전날 밤 우울증 치료약을 먹고 잠들었던 다음날 아침에 나는 눈을 뜨자마자 극심한 울렁거림과 구토감을 느꼈다. 지인에게 카톡을 했다. ‘정신과 약 처음 먹고 나면 원래 이렇게 울렁거려? 나 지금 토할 거 같아.’ 지인에게서 답이 왔다. ‘응, 처음에는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지인은 친절하게 팁도 주었다. ‘식욕 변화나 수면 시간이나 울렁거리는 느낌, 하루 중 기분이 어떤지 이런 거 수첩에 적어 놔. 면담할 때마다 도움 많이 된다. 맞는 약도 빨리 찾을 수 있고.’ 일기랑은 또 다른 결의 기록이 필요한 모양이다. 단순히 약만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고 약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물론 무기력증이 심한 우울증 환자들로서는 약을 제시간에 매일 챙겨 먹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일이지만 병원에 간다고 해서 내 몫이 다 끝난 건 아니었다. 계속 나를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사실 우울증이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들 자기 자신을 세심히 지켜보는 일을 ‘애정’해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행히 둘째 날 아침에는 울렁거림이 반으로 줄어들었고 사나흘 뒤로는 구역감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러나 한 가지 부작용은 꿋꿋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는데 바로 심한 졸음이었다. 온종일 공부하고도 또 공부해야 했던 야자 시간, 체력이 달려 졸릴 때처럼 바로 책상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잠이라는 액체로 가득 채운 수조 안에 사는 금붕어가 된 기분이었다. 걸을 때도 먹을 때도 몽롱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복용 첫 주는 하필 내 생리 기간과 겹쳤고, 가끔 생리 기간에 졸음이 심해질 때가 있었기 때문에 이게 약 부작용인지 생리 때문에 몸이 축나서 나오는 증상인 건지 판가름할 수가 없었다. 복용 2주 차에도 졸음 연못에 빠진 금붕어 느낌이 나서 약 부작용임을 알게 되었다.
약 때문에 너무 졸리다고, 하루 종일 졸리다고 세 번째 내원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얘기를 하자 의사 선생님은 ‘흐음, 그래요..?’ 하더니 약을 바꿔주셨다. 다행히 그 약은 울렁거림이나 졸음도 없고 지금까지 몸에 잘 받고 있다. 참, 복용 첫 주부터 부작용인 걸 알게 된 다른 증상이 있었는데 바로 눈에 띄는 식욕 저하였다. 나는 원래 잘 먹는 편인데 가족 중에 가장 입이 짧은 구성원과 비슷할 정도로 식욕이 줄어들었고 밥 먹기가 힘들어졌다. 억지로 밥을 씹어삼키는 수준이었다. 이 증상도 약을 바꾸니까 바로 사라졌다.
약을 먹은 첫 주부터 우울증 치유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다만 내 경우 꾸준히 정신과 약을 먹으며 별다른 큰 사건이 없는 이상 내면적으로 ‘삽질’하는 빈도와 깊이가 줄어들고 많이 얕아진 것 같다. 평상시 느끼는 불안도 조금은 멀어진 것 같다.
일주일씩 약을 먹으며 경과를 보던 시간을 지나 현재는 2주에 한 번씩 정신과에 내원하고 있다. 처음으로 2주 치 약을 처방받았을 때 나는 대기실에 앉아 이 약이 내 약이 맞는가 보다-하며 다소 안도감을 느꼈다.
(이미지는 저작권 무료 사이트에서 약을 검색해서 찾은 것으로, 제가 먹는 실제 약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