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a, <The Greatest>
‘좋아하던 것의 흔적을 찾아봐.’
아는 언니가 했던 말이다. 언니는 내게 그 말을 했던 사실도 잊고 있었지만 내게는 꽤 특별한 어구로 남아 있다. 그 말을 들은 당시 나는 자신을 대학원 생활의 낙오자, 망가진 일상을 복구할 수 없는 사람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좋아하던 것은 물론 잘하던 것도 못 하게 되었던 참이라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내게 보인 위력을 실감하곤 한다. 날아갈 듯 즐겁지 않더라도 좋아하던 것을 하던 나를 따라하는 것만으로 뭔가 얻을 수 있었다. 오늘 할 이야기는 그리 해서 얻은 일종의 계기에 대한 것이다.
1. Sia, <The Greatest>_진실을 보여준 충격음
혼자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한다. 여럿이 가도 즐겁지만 혼자 가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즐거움이 있다. 우울증을 잘 모르던 내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게 된 것도 코인 노래방 부스 안에서였다. 내 안이 텅텅 비는 것만 어렴풋이 느꼈지, 내가 아픈지는 잘 모르던 시기의 일이다. 대부분의 일에 감흥이 없고 가슴이 헛헛했다. 일상의 감각들이 내게 끝까지 다가오지 않고 한 발 비껴가는 것 같았다. 나와 생활 사이에 불투명한 막이 하나 끼어있어 감정이 느껴지려다 마는 듯했다. 그런 날들이 쭉 이어져서 위화감을 느끼던 차였다. 하여튼 그날도 다시 학교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들어가야 했다. 학교로 가기 전에 짤막하게라도 기분 전환을 하고자 코인 노래방에 들어갔다. 가서 몇 곡만 부르고 나오자. 노래를 부르면 즐거웠으니까, 기운이 나길 바랐다.
자주 부르던 노래를 몇 곡 따라 불렀다. 신나지 않았다. 외려 멍하고 밍밍했다. 기운이 없으니 흥도 안 났나 보다. 인기곡 목록을 한두 페이지 넘기다가, 무심코 시아(Sia)의 신곡이 듣고 싶어졌다. 그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올랜도 성소수자 클럽 총격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만든 노래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가사는커녕 기본 음정도 모르는 노래여서 평소라면 누르지 않았을 텐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The Greatest>. 번호를 꾹꾹 입력했다. 화면에 두 줄씩 뜨는 가사를 찬찬히 읽었다. 가사가 많이 반복되어서 따라부를 수 있겠다 싶었다. 곡이 흘러감에 따라 화면 속 하얀 글자가 부지런히 다른 색으로 물들었지만 나는 따라 부를 수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Don’t give up I won’t give up. I got stamina. 울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이러지. 애절한 가사에 눈시울 붉어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풍선 터진 소리에 놀란 아이 마냥 펑펑 울어제꼈다. 마이크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처음 들은 노래는 내게 뭔가의 충격음 같았다. 커다란 가시에 가슴을 찔린 것처럼 울었다. 생에 대한 의지가 가득한 가사 한 줄 한 줄 접할수록 명치가 너무 아파서 이상했다. (감정의 표출 대신 몸이 대신 말해주어 생기는 통증을 앞으로 숱하게 맞이할 미래는 아직 모르던 때였다.)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닌가. 처음 본 노래 가사에 이럴 수도 있나. 믿기지 않아서 같은 곡을 실험하듯 한 번 더 틀었고, 또 오열했다. 노래 안의 모든 가사가 날 울렸다. I got stamina. 가장 많이 반복되는 가사. 거기서 제일 많이 울었다. 울고 나니까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 아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