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a, <The Greatest>
그전까지는 내가 아픈 줄 몰랐다. 바보스럽게도 그랬다. 그때까지 나는 아직 내 일은 잘하고 있었다. 사실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있었지만…. 아무튼 날이 갈수록 일상이 점점 버거워졌으나 일에 지장 없으면 된다고 여겼다. 내 능력치를 웃도는 공부에 치여서 제대로 못 자고 제때 안 먹으니 뭐, 기운 없는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옷 소매 한쪽을 울적함과 허무함으로 물들인 채 지낸 적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러니 버티다 보면 또 지나갈 거라고 믿었다. 고작 옷이 젖는 거라 해도 번지는 물에 몸까지 축축하니 불쾌하고 체온이 떨어진다는, 단순한 이치는 생각도 못 했다. 사실은, 소매 정도가 아니라 적어도 팔 두 쪽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빠트리고 산 건데 몰랐다. 더 심한 것도 버텼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전에도 죽고 싶었지만 지금 멀쩡히 잘 살아있잖아. 할 일 하다 보면 이것도 지나갈 거야. 요컨대 나는 나 자신보다는 ‘마땅히’ 내야 할 성과를 최후의 요새 지키듯 수성(守城)하는 사람이었다.
저번에도 버텨봤으니 이번에도 괜찮다. 이 잘못된 판단은 반복된 우울의 역사로 인해 굳어졌다.
대학교 3학년 즈음, 나는 외적으로 가장 평온했지만 내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허무함을 느꼈다. 죽어야겠다 같은 적극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만약 언젠가 죽는다면 너무 큰 죄는 짓지 않은 지금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사라지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 상태가 혼자 보기에도 정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 과거를 찬찬히 돌아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의 어느 날, 이유 없이 불안해져서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 훌쩍훌쩍 울었던 기억이 났다. 사춘기 호르몬의 작용인 줄 알고 그냥 넘어갔다. 중학생 때, 진로를 예체능으로 잡고 싶었는데 불확실한 미래를 헤치고 나갈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그런데 성적이 내 욕심만큼, 주변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는데 지금 잡고 있는 일도 잘 해내지 못한다니.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내 몸 둘 바’가 없다고 느꼈다. 삶은 이미 주어진 것인데도, 솔직하지 못하고 뛰어나지도 못한 나는 삶을 살아낼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교복 아래 팔을 할퀴고 물기 시작했다. 단소나 리코더같이 책상 위에 있어도 문제없고 적당히 단단한 물건으로 팔을 때렸다. 날붙이는 너무 무서웠고 금방 티가 날 것 같아서 싫었다. 언제 어떻게 자해를 그만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짓거리는 끝이 났다. 그래서 그것도 그저 지나갔다. 더이상 안 하니까 됐다고 여기며.
고등학생 때는 죽고 싶다기보다는 딱 죽을 것 같았다. 하루에 열 몇 시간을 공부하고도 죄책감이 들게 하는 세상 안에 있었으니까. 대학을 못 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수학 성적이 나를 아주 괴롭게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울었고 등교할 때쯤이면 뱃속에 물고기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것 같이 배가 부글거렸다. 부엌칼을 보고 날이 예쁘게 반짝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친구에게 말하는 순간 왠지 서러워져서 눈물이 터졌다. 가끔 차도에 뛰어들고 싶은 동시에 너무 무서워서 횡단보도 앞에서 울먹였다. 근데 내 세상이 하도 좁아서, 고등학생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주변 아이들도 갑자기 울고 소리 지르고 난리 나는 경험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도 친구가 위로해주고 나면 또 금세 웃으면서 놀았다. 매일 울지 않으니 괜찮은 게 아닌가? 입시만 끝나면 이런 날도 다 사라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그것도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결국 자신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사람이 갖게 된,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된 방치의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우울감, 불안감, 압박감에 대한 반응은 점점 구체화되고 더 극단적인 형태의 충동으로 나타났으나 때마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살면서 어떻게 웃기만 해. 힘든 시기도 있는 거지. 그러나 괜찮아진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나를 옥죄던 상황도 조금 풀어져서 음울한 감정들이 없어진 척 약해져 어딘가로 숨어 들어간 것이었다. 거기까진 볼 수 없었던 대학교 3학년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냥 내가 원래 이런 인간인가보다. 타고나길 주기적으로 짙은 우울이 돌아오는 사람인가 보다. 막상 죽을 것 같아도 지나가면 어떻게든 사나 봐. 무던히 지내면 또 지나가겠지. 그렇게 대학교 3학년의 우울도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무던히. 그렇게 지나왔다고 믿었다. 사실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에게 막말하고 자기 몸을 상처 입히고 차에 뛰어들고 싶단 생각까지 했는데 무던함 따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실은 괴로웠다. 아파했고 무서워했다. 내가 기억하는 무던함이란 한바탕 고통이 지나간 다음 어쩔 수 없이 나를 추스르던 태도였을 뿐이다. 한창 괴로울 때를 지워주는 망각은 나를 살게 했지만 계속 비슷한 실수를 하게 만들었다. 과정은 좋을 대로 잊어먹고 결과만 남겨서 나는 버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무엇을 버티는지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