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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온 Jan 08. 2024

몽마르뜨 공동묘지

몽마르뜨 언덕에 가려다 도착한 곳

길치냐고 묻는 말엔 길치는 아니지만 지도를 부러 보지 않는다고 답한다. 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길은 모르고 걷는 길이며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말에 백 번 동의한다. 무계획은 천성이자 고질병이다.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 파리에 살러 오면서도 에펠탑을 직접 보기 전까지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이 붙어있는 줄 알았을 정도니까. 


사설이 많은 이 여자는 지금 파리의 공동묘지 한복판에 서 있다. 눈 앞에 펼쳐진 수백, 아니 수천 개는 되어 보이는 각양각색의 관과 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 한 점 없는 공동묘지의 스산함에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나 어쩌다가 혼자 공동묘지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게 된 거지. 그 시작은 1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나는 공강을 맞아 오전 내 빨래를 돌리고, 홀로 파리 나들이하기로 했다.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들과 친해지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지 오래였던 나는 끝내주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몽마르뜨 언덕을 떠올렸다. 낭만이 가득한 곳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마침 아직 가본 적 없고. 그래 오늘은 몽마르뜨다! 그렇게 쉽게 행선지를 정했다. 


구글맵에 ‘몽마르뜨 언덕’을 치니 소요 시간은 1시간 정도. 파리 주민이 아닌 파리 외곽 주민에게는 1시간이면 가까운 거리였다. 이정도면 양호하지. 날이 덥다는 예보에 한국에서는 입지도 않던 크롭티를 꺼내 입었다. 어제 사둔 납작 복숭아가 담긴 비닐을 손목에 달랑달랑 들고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 갈아타 내려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걸었다. 유명 관광지라면서 사람이 별로 없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몽마르뜨 입구에 다다랐다. 들어가니 나를 반기는 건 거대하고 독특한 관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마르뜨 언덕의 입구에는 관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언덕’이니까 이 관들을 지나쳐 위로 올라가면 내가 아는 그 몽마르뜨가 나오겠지! 인터넷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혼자서 마구 오해했다. 그래서 겁도 없이 공동묘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가 파인 옷을 입고 올 곳은 아닌 것 같아 괜히 배를 가리고 걸었다.


그리하여 이 여자는 지금 파리의 공동묘지 한복판에 서 있다. 끝까지 올라가면 나올 줄 알았던 성당과 언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갈수록 묘지만 늘어났다. 저 멀리 장례식도 하고 있다. 미치겠네. 괜히 추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입술을 꽉 깨물고 걷다 미로 같은 공동묘지에 갇힌 느낌이 들쯤 그제야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구글맵 리뷰에 한국인들이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몽마르뜨 언덕을 검색해서 가면 공동묘지가 나온다고, 우리가 몽마르뜨라고 부르는 그곳을 가려면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검색해야 한다고. 


그래... 이래야 모험담이 생기지. 이래야 재밌어지지. 관광지 하나를 찾아가는데도 에피소드가 생긴다고 헛웃음 치며 보이지 않는 출구를 찾아 나섰다. 




나중에 찾아보니 몽마르뜨 공동묘지도 관광지라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대신 묘를 타고 흐르는 음기에 압도당해 혼자 공포영화 한 편 찍었다. 대낮에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무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무서운 와중에도 무덤을 열심히 구경했는데, 몽마르뜨 공동묘지에 있는 관들 중 단 하나도 똑같이 생긴 관이 없었다. 우리나라와 완전히 달랐다. 관에 대고 이런 형용사를 붙여도 될지 모르겠으나 한 명 한 명의 묘가 아름다웠다. 모두가 개성 있게 묘를 ‘꾸며’놓은 것이다. 고인의 모습을 조각해 둔다거나, 관 자체가 찾아오는 이가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기도실이거나, 고인이 사랑했던 것들로 꾸며 뒀다. 봉긋한 묘만 봐왔던 나에게는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묘는 어느 음악가의 무덤이었다. 파란빛의 무덤에는 그의 얼굴 사진과 음표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 속으로는 차도처럼 생긴 두 개의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기타 그림이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 기타와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관 모서리를 따라서는 꽃길이 나 있었다. 핏줄 같은 푸른빛을 띠던 그 관이, 겁이 나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그 관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처음 보는 파리의 관, 처음에는 무서웠고 나중에는 흥미를 느꼈지만 결국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보고도 고인의 삶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관들은 결국 무덤의 주인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까.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리운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 세웠을 테니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이런 생각까지 하게 하는 파리의 관은 정말 신비로웠다. 그래서 이곳에 서 있으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옅어지는 듯했다. 


여행자와 버스커가 몰리고 커플들은 웨딩사진을 찍고 사람들은 자유로이 누워있으며 노을이 아름답게 진다는 몽마르뜨 언덕. 생기 넘치는 그곳에 가려다 도착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자들의 공간이었지만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었다. 죽은 이가 어떤 종교를 가졌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았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어떤 얼굴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새겨넣은 남은 이들의 마음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음악가의 묘 (좌) , 쇼팽의 묘 (우)

이날 이후 프랑스의 묘지 문화에 관심이 생겨 자발적으로 또 다른 유명한 공동묘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쇼팽의 묘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던 어느 여성분의 모습도, 오스카 와일드의 묘 밑에 놓인 어느 팬의 쪽지도, 프랑스 메트로(대중교통)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의 묘지 밑에는 꽃 대신 기차표들이 놓여있던 것들도 모두 인상 깊게 남아있다. 


어릴 적부터 묘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을뿐더러 죽고 나서 내 몸을 뉠 묘를 가지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특색 있는 파리의 묘지를 보니 확 와 닿았다. 인간이 왜 묘비를 세우고, 공간을 확보해 죽은 이를 기릴 곳을 만드는지.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 커다란 세상에 온전히 그를 떠올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남겨진 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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