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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온 Nov 16. 2024

가을 소진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글쓰기와 닮아있다.

매년 가을마다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가을 소진.


가을은 시작과 동시에 소멸하니까. 손 쓸 틈도 없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다 써서 소진된 거라고 괜히 큰소리치고 싶다. 후회 없이 만끽한 하루는 끝나는 게 아쉽지 않은 것처럼 잔인하리만큼 짧은 가을을 잘 보내주려면 그 시간을 잘 보내는 수밖에 없다.


가을을 소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을’이 목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가을에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가을 그 자체를 하기. 그래서 단풍 구경이나 전어 먹기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프랑스어에 플라뇌르(Flâneur)라는 단어가 있다. 목적지 없이 산책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플라뇌르를 ‘열정적인 관찰자’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거리를 배회하는 게 아니라 눈앞의 풍경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의미를 찾는 사람. 가을 소진은 한마디로 플라뇌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자주 가을을 소진하는 곳은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부지가 넓고 건물이 낮으며 나무가 많다. 느리게 산책하며 풍경을 관찰하기에 최고의 장소다. 단풍과 같은 ‘붉을 단(丹)’ 자를 쓰는 단청도 가을과 퍽 잘 어울린다. 그러나 창경궁의 하이라이트는 연못 춘당지다. 넓은 연못을 둘러싼 단풍나무들이 물에 반사되며 만들어내는 경치는 매번 봐도 믿기지 않는다. 물론 가을을 보내기 위해 꼭 멀리 갈 필요는 없다. 감사하게도 나무는 어디에나 있고, 가을 햇살은 유독 모두에게 공평하다.


붉게 물든 나뭇잎을 보던 중 문득 단풍이 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뭇잎에 들어 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파괴되면서 양이 줄게 되고, 결국 나뭇잎의 녹색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대신 종전에는 녹색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른 색의 색소가 더 두드러져 나뭇잎이 다양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날씨의 변화로 인해 나뭇잎 속에 새로운 색소라도 생기는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니. 물드는 게 아니라 물이 빠지는 게 단풍이라니! 봄과 여름을 지나는 내내 가을의 색도 거기에 함께 있다. 보이지 않아도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된다. 별은 낮에도 떠 있다는 사실. 초승달의 비어 있는 부분까지도 실은 달이라는 사실. 지구의 그림자가 졌을 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한다.


빼곡하게 물든 한가을도 좋지만 사실 초록 잎과 단풍잎이 섞여 있는 초가을의 나무에 더 마음을 빼앗긴다. 가을 나무는 몰래 온 손님처럼 비밀스러워서 대부분 자고 일어나면 색이 전부 변해있지만, 가끔 그 변화의 순간을 목격할 때가 있다. 한 나무, 심지어는 하나의 가지에서 난 잎인데도 어떤 건 푸르고 어떤 건 붉다. 게다가 붉기에도 차이가 있어서 나무 하나가 몇 개의 색을 품고 있는지 셀 수도 없다. 그런 나무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과도기도 근사해서 좋겠다….”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의 과도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어느 곳의 근사치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견딜 수 없이 괴롭다. 괜히 아름답기만 한 가을의 과도기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글쓰기와 닮아있다. 글쓰기는 나를 소진하는 일. 보이지 않을 때의 나를 끄집어 보여내야 하는 일. 과정은 또 어떠한가. 음절 하나하나 직접 적어야 문장이 되고, 그걸 또 여러 차례 지우고 고쳐야 글이 된다는 점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나의 과도기를 견디는 일이다. 소진과 인내를 반복하며 한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엽록소가 전부 다 빠져나간 가을의 잎처럼 얼굴이 시뻘게져 있다.


작문과 소진. 쓰다(write)와 쓰다(spend)가 같은 모양을 공유하는 건 우연일까? 그러고 보니 괴로울 때도 쓰다(bitter)고 하지. 그래서 글쓰기가 괴로운 건가. 거리를 걸으며 가을을 소진하다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들은 대개 글감이 된다.


지난 몇 년간 가을을 보내며 깨달은 비밀이 있다. 잘 보낸 시간은 오히려 소진되지 않는다는 것. 후회 없이 이별하고 싶어서 매번 열정적으로 관찰했던 매해 가을이 내 기억 속에 그 어떤 계절보다도 짙게 남아있다. 보이진 않아도. 분명히 존재한다.


소진하면 할수록 오래 남는 가을의 아이러니가 글쓰기에도 적용될까? 답을 알게 될 때까지 우선 계속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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