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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늘 Oct 07. 2022

아이와 나의 바다

  1학년 아이들을 보다 보면 나를 돌아보는 나날이 꽤 생긴다.

  얼마 전에 우리 반 아이가 쉬는 시간에 나에게 와서는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며칠 전에 티비에서 봤는데요, 어떤 애는 학교 공부가 너무 쉬워서 중학교도 빨리 가고 고등학교도 빨리 가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대요. 그런데 저도 학교 공부가 너무 쉬워요. 저도 이 아이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는 '그 아이는 정말 정말 똑똑한 건데, 너는 사실 그 정도는 아니란다.'라는 사악하고 현실적인 일침이 생각났지만 아이에게 당연히 이 말을 할 수는 없으니 그렇구나, 하는 수긍과 이 이야기에 관한 몇 마디 정도로 대화가 끝났던 것 같다.


  아이들은 나한테 항상 어떠한 말이든 하고 싶어 하니 그런 말 중 하나라고 머리 한 편으로 잊히게 둘 수 있었지만 나는 이 말이 계속 생각이 났다. 나 또한 내가 주인공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고, 그때 나는 정말 나는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뭐든지 시작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적이 별로 없었다. 공부든, 그림이든, 피아노든, 뭐든 시작하면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아이들 사이에서 평균 이상은 했고, 뭐든지 잘한다는 것은 나의 자부심이자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모든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듯, 나는 자연스레 공부 쪽으로만 나아가기 시작했고 피아노나 그림은 당연히 그 분야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다른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나는 한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수학도 세상에는 참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중학교 이후로 내신 이상의 수학은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꿈의 크기도 줄어들긴 했지만 사람들이 커가면서 점차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듯 나 또한 그런 과정을 지나간 것뿐이었다.


  나는 시작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빠르지만 꾸준하진 않다. 그래프로 나타내면 직선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그래프가 아닌 처음에는 급격한 기울기를 가지지만 점점 완만해지는 곡선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시작할 때 속도보다는 꾸준한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주변을 통해 많이 느꼈다. 무엇이든 꾸준한 사람은 꾸준히 했던 분야에서 작은 것이든 뭐라도 성취해서 나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작은 성취와 성장의 기쁨을 느끼면서 자신의 분야를 하나 둘 만들어간다.


  우리 반에는 나에게 학교 수업이 쉽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지만 수학이 싫다고 맨날 활동지를 구겨서 버리는 아이도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책상도 깨끗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자기가 아는 내용은 발표도 열심히 하는 남자아이인데, 유독 그림이나 수학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준 종이의 7할은 구겨버린다. 그 모습을 보면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엄청 큰데 다른 아이들만큼 안되어 속상해진 마음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은 잘 하지만 나중에 놓아버리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지금은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네가 더 대단한 거고 이기는 거라고 알려주고 싶지만 아이가 이걸 느끼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린 날 내 안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우연히 아이유의 노래를 들었다. 때마침 흘러나온 노래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아이와 나의 바다'여서 더욱 그 아이 생각이 났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다 커서도 가지면 조금 곤란할 수 있지만 아이일 때는 이 생각을 온전히 누렸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가물지 않는 바다를 갖고 꿈의 배를 끝도 없이 둥둥 띄워놓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어릴 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의 바다가 빠르게 마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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