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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Jan 24. 2022

브런치 vs 나

처음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을 땐 누구보다 야심 찼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글을 써 올리고 싶었지만

무리한 계획의 말로를 알기에 나름대로 현실적이라 생각되는 선에서 계획을 세웠더랬다.

그렇게 내가 바라는 나와 나를 잘 아는 내가 이리저리 타협을 보아 도달한 결론은


'일주일에 한 번, 한 꼭지씩'.


무리 없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딱 한 달이 조금 넘을 때 까지는.


그리고 시작된 브런치와 나의 눈치게임.


1 라운드

글이 한 주, 두 주 밀리기 시작할 무렵.

누구 하나 채근하는 이는 없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에 브런치에 들어와 보니 알림이 하나 도착해있다.

'꿈처럼, 마법처럼'. 달콤한 워딩과 수줍은 이모티콘으로 브런치는 내게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며 말을 걸어왔다. 좋게 타이르는 듯한 말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게으름뱅이가 아니었다.



2 라운드

그렇게 또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먼지가 쌓였을 나의 브런치에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또 알림이 와있다.

'생각보다 집요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전보다 조금은 단호해진 말투.

지난번 '꿈', '마법'과 같은 단어 대신 '꾸준함'과 '재능'이라는 조금 더 현실적인 단어로

나의 게으름을 꼬집는 듯했다.

이모티콘도 웃고 있긴 하지만 입만 웃고 있는 것이.. 전에 수줍게 웃던 표정과는 느낌이 달랐다.

조금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내 손가락을 움직이기엔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3 라운드 (K.O)

두 달이 지나갔다.

'이젠 포기했겠지?'

설마 하며 들어온 브런치에 또 하나의 알림이 도착해있다.

이쯤 되면 따끔한 충고의 말이나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으면 작가 자격이 박탈될 거라는 협박성(?) 글을 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마주친 예상 밖의 첫 마디.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 라니..

내 글을 기다린다는 말 만큼 나를 글 쓰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기다림에 지친듯 늘어진 문장 끝 마침표 두 개가 쿵쿵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안에서 게으른 내가 말했다.

'내가 졌다..'


이 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 꼭지 씩, 어떤 때에는 그보다 자주 글을 쓰고 있다.

약 100일에 걸친 브런치와 나의 눈치게임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은 글 쓰는 나 vs 게으른 나의 싸움이었지만..ㅋㅋ)

브런치의 집요한 알림 덕에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음에 기쁨과 감사를 표하며.


+)

과연 글을 쓰지 않는 작가에게 브런치는 언제까지 알림을 보내올 것인가..

궁금하지만 직접 확인해 볼 일은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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