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을 보다가 스물두 살 무렵 떠났던 유럽여행이 떠올랐다. '진정한 청춘'이라면 꼭 떠난다는 유럽배낭여행을 위해 꼬박 1년을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을 몽땅 투자했다. 이 여행에 지난 1년 간의 노력과 시간이 담겨있다는 생각에 되도록 많은 걸 느끼고 남겨오겠노라 아주 굳게 마음을 먹었더랬다.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온갖 랜드마크를 도장깨기 하듯 부지런히 찍고 다녔다. 몸이 힘들어도 어느 하나 놓칠세라 눈에 불을 켜고 여행을 강행했다. 유명한 명화 앞에서는 그 어떤 '느낌'을 느끼기 위해 감탄할만한 구석을 찾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크게 관심도 없는 건축에 대한 설명을 1시간 넘게 듣고, 취향도 아닌 음식을 미식으로 여기며 맛있게 먹기도 했다. 그때는 그래야만 이 여행이 의미 있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도 더 지난 지금. 내게 그때 떠난 여행의 의미는 직접 본 모나리자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아닌 어릴 적 그 모든 일을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과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 나눌 평생의 추억팔이 소재가 생겼다는 것에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부족한 건 아닌지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모두가 좋아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해서 내가 좋아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의미를 억지로 꾸며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부끄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 나도 의미에 대한 집착을 가졌고, 여전히 습관처럼 의미를 찾지만 뭐든지 지나고 보면 무의미한 것은 없었다. 아마도 의미라는 것은 찾는 게 아니라 남겨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