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불라불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Nov 07. 2022

닭다리는 사양합니다

이게 왜 여기 나와있지?


   1992년 봄, 나는 작대기 하나를 달고 있는 까까머리 이등병이었다. 6주간의 신병 훈련에 이어 수송 부대의 후반기 교육까지 받는 바람에, 2월에 입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대自隊에 배치된 것은 5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것은 다른 신병들보다 한 달 보름 이상 늦은 것이어서 하늘 같은 선임들의 구박을 독차지하기에 딱 좋은 구실이 되었다. 동기들은 이미 쫄따구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왜 미적거리다가 이제야 왔냐는 것이었다. 전입 첫날부터 수시로 반복되는 생트집이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 뜻과 상관없이 국방부가 결정한 일이라고 항변했다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미운털이 저절로 빠지게 하려면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보초도 열심히 섰고, 청소도 열심히 했으며, 얼차려도 그저 ‘열심히’ 받았다.


   다행히도 부대가 있는 곳이 최전방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긴장감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이등병들에게 있어 최전방이란, 부대의 위치와 관계없이 자신이 복무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과 마주하는 군사적 긴장감보다 고참과 마주하는 내무반적 긴장감이 몇십 배는 더 크다는 뜻이다.


   함부로 숨을 쉬어서도 안 되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지뢰를 밟고 선 것 같은 불안함이 이어지던 날들, 그날들의 어디쯤에선가 그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광복절을 며칠 앞둔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뜻밖에도 전역병戰役兵 두 사람이 부대를 찾아왔다.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들린 것이라고 했다.

   위병소에서 연락을 받은 고참들 몇몇은 맨발로 달려 나갔고, 곧 보고를 받은 대대장이 그들과 함께 내무반으로 들어섰다. 이미 일 년 전에 제대를 했다고 하니 내겐 모두가 낯선 얼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반가웠던 것은, 그들이 들고 온 선물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치킨이었다.

   사회의 먹거리, 이른바 사제私製 음식을 구경한지도 벌써 육 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군대 매점 PX는 나 같은 졸병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신병 휴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들이 내무반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것이 어떤 브랜드의 무슨 치킨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니, 내가 군견軍犬보다 뛰어난 후각을 가지게 되다니. 스스로 감탄하던 참이었다. 내무반장이 나를 불렀다.

   “막내야.”

   “네! 이병! 임! 진! 우!”

   큰소리의 대답과 함께 총알처럼 달려갔다. 내무반장이 봉지 꾸러미를 내밀었다. 눈물겹도록 달콤한 향기가 내 코 바로 아래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식기 보관함 밑에 넣어둬라. 저녁 식사 마치고 다 같이 먹자.”

   “네! 알겠습니다!”


   그것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기운이 두 손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닭과 나 사이에는 얇은 종이밖에 없어요. 브룩 쉴즈가 속삭이는 듯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기분 좋은 부드러움이 팔꿈치까지 전해졌다. 나는 콧구멍의 평수를 최대한 넓혔다. 치킨이 내뿜는 향기는 한 점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각오로, 그 치명적인 구수함을 모두 빨아들였다. 머리가 어질했다.


   “빨리빨리 안 걸어? 이게 빠져 가지고…”

   침상 끝에 앉은 바로 윗고참 서 일병이 복화술을 했다. 두 눈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마터면 출입문에 부딪힐 뻔했다.

   

   내무반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식기 보관함 앞에 똑바로 섰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유혹의 페로몬이 콧구멍을 또다시 간지럽혔다. 보관함의 문을 열고 쪼그려 앉았다. 가로로 걸쳐 있는 선반에다 꾸러미를 올렸다. 스캔이라도 하듯 눈에서 발사된 레이저는 봉지를 찬찬히 훑었다.

   

   처갓집 양념 통닭.


   정확하게 여섯 박스. 내무반 스물한 명에다 전역병 두 사람, 그리고 대대장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넷. 그것을 여섯으로 나누면 얄짤없이 딱 떨어지는 숫자, 바로 넷! 네 사람 앞에 치킨 한 박스. 계산은 섰다.

   결코 적은 물량은 아니지만 결국은 속도전이란 말인가? 속도라면 자신 있다. 91년도 대명관大皿館 짜장면 빨리 먹기 대회 일등이 과연 누구였던가? 입대 반 년 만에 드디어, 내가 드디어 사제 치킨을 먹는구나.

   짧은 이별은 재회의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보관함의 문을 힘겹게 닫았다.       


   내무반에서는 전역병들과 고참, 대대장까지 한데 어우러져 지난날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놀랄 것도 없는데 허리를 젖혀가며 웃었다. 고작해야 때린 이야기, 맞은 이야기, 훈련 때 딴짓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빨리 밥을 먹으러 가면 좋겠다, 빨리 밥을 먹고 얼른 치킨을 먹으면 좋겠다, 한 입에 두 개를 먹었으면 좋겠다, 콜라가 있으면 더 좋겠다.


   시간이 벌써 여섯 시가 넘었는데 식사하러 가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의 대화는 이제 유격 훈련 1일 차의 에피소드를 꺼내고 있었다. 삼박 사일의 스토리에다 행군까지 마치려면 족히 한 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때 난데없이 작은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진우야.”

   “누, 누구세요?”

   “한 조각 정도는 먹어도 괜찮을 거야. 여섯 상자 중에 겨우 한 조각일 뿐이니까. 그 정도는 먹어도 돼. 걱정 마.”

   “누구시냐니까요?”

   “그건 알 필요 없고, 그냥 딱 한 조각, 한 조각만 먹어봐. 아무도 모른다니까.”

   “한 조각만요? 그, 그래도 될까요?”

   “그럼 그럼. 한 조각 먹는다고 해서 절대로 표 나지 않아. 제발 날 믿어봐.”


   서 일병과 또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랫도리를 슬쩍 가리켰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뜻이었다. 서 일병이 고개를 까딱했다. 딴짓하지 말고 곧장 돌아오라는 엄포까지, 그 간단한 고갯짓에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았다.


   내무반 끝, 출입문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밖으로 나와 다시 문을 닫았다. 보관함 앞에 섰다. 이번엔 무릎부터 꿇었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갇혀 있느라 답답했다는 듯 유혹의 향기가 한꺼번에 화악 몰려나왔다. 지금이야말로 속도가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한 개를 꺼내서 얼른 입에 넣고 씹어 삼킨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둘러 내무반으로 들어가는 거다.


   결심은 단호했다. 오른손을 뻗었다.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내침 김에 자신감을 더 동원했다. 엄지와 검지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고무줄로 묶였던 상자의 한 귀퉁이는, 정체불명의 손가락 커플이 침입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허락해 주었다. 곧 미끄덩한 것이 만져졌다. 이것을 사회에서 양념이라고 부른다지? 흐뭇했다. 엄지와 검지가 힘을 모았다. 우선 손가락 끝에 닿는 것 하나를 꽉 집었다. 무엇인가 제대로 걸린 것 같았다. 월척이다.


   상자가 작은 몸부림을 쳤지만 냉정하게 뿌리치고는 팔을 거둬들였다. 무게감이 충분히 느껴졌다. 아니 이것은? 그저 작은 조각 하나였어도 기꺼이 만족했을 텐데, 지금 내 눈앞에서 엄지와 검지가 추앙하고 있는 것은 무려 손흥민 허벅지만큼 크고 굵직한, 닭다리였던 것이다. 붉은 양념 옷을 곱게 두르고 땅콩 가루가 골고루 뿌려진 닭다리, 그런 닭다리를 지금 내가 들고 있다니. 아아, 이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이란 말인가?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말을 하라고 해도 말을 꺼내지 못할 장면이었다.


   그런데 순간의 감동이 기다림의 갈증을 넘어섰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당장 입에 넣을 생각을 잊었다. 홈쇼핑의 음식 모델들이 제대로 쭈욱 뽑아 올린 킹크랩의 속살을 곧장 먹어치우지 않고 손에 들고서 이리저리 쳐다보는 것처럼, 나 또한 닭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쳐다보며 감탄부터 하고 있었다.

   아아, 네가 진정 닭, 닭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닭다리인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대감마님. 내 너를 어이 잊고 살았단 말이냐? 소녀 역시 그렇사옵니다. 내 너를 기쁨으로 취할 것이니 너무 부끄러워말라. 소녀, 그저 광영光榮이옵니다, 대감마님. 허허허, 호호호.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로 내무반의 온기가 후욱 밀려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군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들려왔다. 나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어? 아직 유격 훈련이 안 끝났을 텐데? 지금 나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스스로의 가늠에 이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하는 타인의 질문 아닌 질문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차마 일어서지도 못하고 천천히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닭다리를 든 채였다. 누군가의 군화가 보이고, 누군가의 무릎이 보이고, 누군가의 허리띠가 보이고, 누군가의 가슴팍이 보이고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그 맨 처음 누군가는 바로 대대장이었다. 그 뒤로 서 일병과 내무 반장이 서 있었다. 꼼짝도 못 하고 얼어붙은 듯 멈춘 것은 그 공간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일초가 십 년 같았다. 백 년이 지난 뒤에 대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막내야, 너 여기서 뭐하니?”


   차라리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면, 그날 밤의 얼차려는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떠한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그때의 내 머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처갓집의 페로몬에 정신을 잃었던 탓인지, 혀와 입술이 제멋대로 작당을 한 것인지, 나도 모르는 희한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 이게 왜 여기 나와 있지?”


   대대장을 비롯, 스무 명이 넘는 군인들 앞에서 닭다리를 든 채로 무릎을 꿇고 앉은 내무반 막내가 내지른 한마디. 정확하게 열 글자. 바로 그것이었다.

   어. 이. 게. 왜. 여. 기. 나. 와. 있. 지.




   취침 점호를 마친 뒤, 침구를 펴고 누웠는데 서일병이 옆구리를 툭 쳤다. 또 복화술을 했다.

   “취사장으로 따라와!”

  

   군대의 낮은 저녁 열 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군대의 밤은 확실히 낮보다 덥다. 그날, 저녁 열 시부터 시작된 더운 낮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닭다리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내와 아들은 나와 함께 치킨을 먹더라도 선호 부위에 대한 다툼이 일어나는 법이 전혀 없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지 몇 해 전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왜 닭다리를 안 먹어요?”


   설명을 한다 해도 아들은 좀처럼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답 대신 그냥, 이라며 웃어주었다. 아들이 닭다리 하나를 들고 내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었다. 갑자기 허벅지 어디쯤이 찌릿해졌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비가 곧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 Image by 44amazing from Naver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아침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