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
베르나르의 책은 처음 읽었다. 오래전 <개미>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때 곤충 이름을 그대로 쓴 단도직입적인 제목과 그의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베르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름이어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이름을 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의 장편소설 <문명>으로 그를 만났다.
나는 반려견이나 특히 고양이는 관심이 없는데, 고양이가 화자인 이 책에서 고양이의 역사와 습성 등을 알게 된다. 농경시대가 되면서 곡식에 꼬이는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다는(391년). 기독교가 구교였던 로마제국이 고양이 소유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고양이를 소유했던 유대인들이 흑사병에 걸린 사람이 적었던 이유도 모르는 채. 1894년 페스트를 옮기는 균의 존재를 알게 된 후 2019년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선호하는 반려동물로 꼽힌다고 한다.
고양이는 키우는 사람을 집사로 여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한 상황의 이야기다.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칩을 동물의 뇌에 삽입해서 샴고양이 피타고라스에 이어 주인공 바스테트도 대화가 가능하다. 고양이가 지배한 세상에 쥐들의 반란이 발생한다.
소설 같은 전개인데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인용하는 인문학 서적이기도 하다. 쥐 군단의 대장은 티무르다. 몽골 제국의 복원과 함께 광대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티무르의 얘기가 나온다. 쥐들과의 대치 상태, 전쟁 시점에서 <갈리아 전쟁기>로 남아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전투 중 알레시아를 포위했던 전략도 등장한다. 쥐들의 포위망을 뚫고 고양이 지원군을 모으기 위해 열기구를 타기로 결정한 후에는 열기구의 역사가 나오는 식으로 전개된다.
고양이의 교미 이야기에 이어서 성(性)의 역사도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과의 성관계는 오로지 생식이 목적이고 아름다운 성관계는 남성 간에 가능했다는 것에 놀랐다. 중세에도 종교가 성을 지배했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유럽과 미국에서 생식 목적과 무관한 성적 쾌락이 허용되어 공공장소에서의 키스와 혼전 성관계가 가능했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그 이전부터 자유롭고 개방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동물의 지능이 높은 순으로 나열했는데 돼지가 돌고래에 이어 세 번째로 지능이 높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침팬지-돌고래-돼지-코끼리-까마귀-문어-쥐-고양이-개-개미) 식용의 목적으로만 사육되는 돼지에게 급 미안했다.
1권이 끝나갈 즈음 소설의 발단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르세 대학 실험실에서 동물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실험을 통해 인간과 접속 가능한 동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 지식을 습득한 동물들이 혼란에 빠져 점차 공격적으로 변했고 급기야 실험실을 탈출했다. 희망이 생명을 연장하는지의 실험을 위해 유리 상자 안에 물을 채우고 쥐를 빠뜨린 후 살기를 포기하고, 희망의 끈을 놓은 죽은 쥐들의 뇌에서 채취한 성분을 우울증 치료제를 만드는데 응용했단다. 그 실험에서 살아남은 쥐, 티무르는 인간에 대한 경멸이 극에 달해서 인간을 최대의 적으로 여긴다. 동물 실험의 잔인성은 어디까지 일지, 동물의 생명을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지 인간의 이기심에 돌을 던지고 싶었다. 동물에게 제3의 눈을 갖게 해서 인간과 교류한다는 것도 과학의 발전은 자꾸 자연을 거스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물들이 인공지능의 기술에 접목하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더라도 예술과 유머, 사랑의 감정은 불가능함을 인정했다. 세 개의 영역이 모두 가능한 인간은 역시 위대한 존재다. 바스테르도 고양이의 역사를 글로 남기려고 하지만, 글을 쓸 수도 없고 자판을 두드릴 수도 없어서 나탈리에게 대필을 요구하려고 한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예술의 세계를 가까이하고, 유머를 생활화하며,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단순한 독후감이 되려나?
바스테트는 도주 중 독수리의 알을 먹고 독수리의 공격에 처한 순간 쥐들이 독수에게 달려들어 위기를 막아준다. 협동과 상호 작용, 용서의 원칙이 타당함을 깨닫는 도덕적인 메시지도 있다. 세상을 점령하려는 쥐들의 번식력이 놀랍다. 3주 만에 일곱 마리를 세상에 내놓는다. 9개월 만에 한 명을 낳는 인간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숫자다. 인구 절벽에 다다른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쥐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작품을 위해 연구에 몰두했을 작가의 열정이 감동적이다. 동물들의 반란 소재가 특이했다. 그 안에 인간의 속성과 문화가 호의적으로 때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의 필력에 찬사를 보낸다. 현 세대의 문명에 놓일 책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