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외도보다는 나았다.
언제부터였나. 처음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였나. 아니면 의심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였나.
남편이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외출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은 나 스스로를 벌주고 싶어서였나. 그때는 2월이라 밤바람이 매우 거칠었다. 나가면 가슴이 해이는 추위와 아무리 봐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지 않은 남편의 모습 때문에 더욱 쓸쓸한 마음에 죽을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와 명치끝을 박박 때려도 그때뿐, 너무 아픈 마음이었다. 그래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걷기 시작했다.
이어폰 두 쪽을 끼고, 추위에 손은 주머니 속에 넣고, 마음이 힘들어 눈물이 죽죽 흘러내려도 혹여라도 나를 알아보는 동네사람들이 볼까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죽을 거 같아서...... 그래서 걸었다.
걷고, 걷는데 걷다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죽기 싫어 걷는다.
눈물이 나서 앞이 안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또 누가 알아볼까 (찌끄만 가게도 가게라고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다.)
뒷길로 후딱 숨어 주저앉아 눈물이 좀 그칠 때까지 울고 또 운다.
벌게진 눈이 이제 퉁퉁 부었다.
그래도 걷는다.
하루,
이틀,
한 달을 걸어도 남편은 그대로다.
내가 걸으러 나가며 나간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쳐다보지 않았다.
언제 오냐고 묻거나
어디냐고 묻는 연락도 없다.
두 달을 걷는다.
새벽에 잠든 남편을 두고 잠을 잘 수 없어 새벽 4시 5시... 밤을 새워서 걷는다.
걸으면 눈물이 난다.
그래도 죽기 싫어 걷는다.
나를 두고, 옆에서 핸드폰을 쳐다보며 웃으며 행복해 보이는 남편을 두고,
걸으러 나간다.
눈앞에 남편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가슴이 애여 온다.
또 눈물이 난다.
새벽이슬을 맞을 때까지 걷는다.
어느 날부터 발가락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핸드폰을 보며 웃는 남편보다 아프지는 않다.
걷는다.
운다.
걷는다.
운다.
더 이상 참기 힘든 통증이 발가락에서 느껴질 무렵 발톱 가득 피가 차있다.
(페디큐어를 받아서 피가 난 줄도 몰랐다.)
결국 이 발톱은 한 달 동안 나를 괴롭히다 빠졌다.
아프다.
그래도, 발톱이 빠지는 고통은
남편의 외도보다는 참을만했다.
매일같이 울며 걷는 그 고통의 시간보다 훨씬 더 참을만했다.
아직도 추운 밤 혼자 걸으며 울던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은 세 달째 걷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가끔만 걷는데
이젠 살고 싶지 않아서 걷지 않는다.
오늘밤 오랜만에 걸어볼까.
또 울까.